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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 너 참 대단하다! / 산문 / 초등부 최우수상

옥천초 6 이시우

2021년 07월 14일(수) 10:29 [순창신문]

 

ⓒ 순창신문



속담을 많이 쓰지 않는 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다’ 라는 속담이 떠오른다.
아! 체험학습을 가는데 비가 오는 이런 슬픈 일이 어딨을까!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도 비가 만히 내리진 않아서 원래대로 체험을 진행하게 되었다.
휴~ 다행이다. 자 그럼, 섬진강을 따라 첫 번째 코스 장군목을 향해 출발!
장군목에 도착하니 바닥이 축축하다. 그래도 신이 난다. 게다가 현수교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보였는데 섬진강과 장군목에 무척 잘 어울렸다. 이곳 장군목은 장구목이라고도 한다. 이유는 전통 악기 장구의 볼록 들어가 있는 목과 같이 생겨서, 그리고 멀리서 봤을 때 거북이의 목처럼 생겨서라고 한다.
난 내가 장군목이라 알고 있던 곳은 장구목이란 이름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장군목에는 많은 바위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그 바위들도 멋졌지만, 장군목에는 아주 멋진 바위가 있었으니 바로 요강바위다.
내가 알고 있던 6 · 25전쟁 때 요강바위에 몸을 숨겨 목숨을 건졌다는 일화 때문에 실제로 보러 간다는 것이 더욱 기대되었다. 하지만 요강바위로 가는 길은 아주 험난했고, 넘어질까 봐 무서웠다. 게다가 내 앞에 있던 친구가 물에 빠져 넘어지는 바람에 더욱 무서웠다. 그렇게 힘들게 도착한 요강바위는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처럼 너무 신기했다.
‘어떻게 바위가 저렇게 되어 있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만큼 아주 깊숙이 파여 있었다. 요강바위속에 몸을 숨긴 사람은 누군가가 나올 수 있게 도와준 게 아닐까? 또 요강바위는 전설도 있는데, 깊숙한 요강바위 안에 들어가 빌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니 마을 주민분들이 이 바위를 아낀다고한 것이 이해가 간다.
나였어도 마을의 자랑거리인 요강바위를 아꼈을 것이다. 이렇게 신비롭고 멋진 요강바위를 아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장군목도 요강바위 덕분에 내 머릿속에 오랫동안 남아 있을 것 같다.
장군목 구경이 끝난 후, 버스에 올라 동계 구미마을로 향햇다. 가는 길에 용궐산이 있었지만 시간이 없어 가보지 못하고 차창 밖으로만 조금 보았다. 참으로 아쉬웠다. 다음에는 꼭! 용궐산도 들러 구경을 하고 가야겠다.
그리고 구미마을에 도착했다. 역시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처럼 빵과 음료를 먹으니 구미마을에 대해서 공부 할 준비가 되었다! 그리고 해설사 선생님이 구미마을이 뭔지 알아 맞춰보라 하셨다. 나와 친구들은 아홉 개의 아름다운 것이 있는 마을? 젤리 마을? 구미호 마을? 등의 아주 기발한 오답만 생각해 냈다.
그런데 진짜 구미마을의 뜻은 거북이 꼬리라는 뜻이었다.
왜냐하면 옛날에 거북이 동상이 구미마을과 절 사이에 있었는데 그 동상의 꼬리가 향하는 쪽이 잘 된다고 사시는 스님들은 다를 자키네 쪽으로 꼬리를 향하게 하고 싶어서 싸움이 일어났고, 그래서 규칙을 정했는데 아침엔 구미마을 쪽, 저녁엔 절 쪽으로 거북이 꼬리를 향하게 했다고 한다. 그런데 구미마을 쪽만 잘 되자, 한 스님이 거북이의 머리를 잘라, 산으로 던져버려사 그 다음에 마을은 그럭저럭 살아갔지만 절은 망해버렸다고 한다. 그러한 얘기 때문에 거북이 꼬리라는 뜻의 구미마을이 되었다 한다.
뜻 설명을 들은 뒤 바로 앞에 있던 비석을 보러 갔다. 그 비석은 바로 이 씨 할머니를 기린 비석 열부이씨려였다. 이씨 할머니는 옛날 고려시대 때 분이신데, 할머니는 양씨가문의 양수생과 결혼하셨다고 한다. 양수생은 과거급제를 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고려말기 때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가는 그 혼란스러운 시기에 권력 싸움에 휘말리셔서 누명을 쓰시고 희생되셨다고 한다. 그 일이 일어나고 난 뒤 이씨 할머니는 이곳 순창 구미마을로 오셔서 지내셨다고 한다.
근데 이 이씨 할머니에게서 찾을 수 있는 놀라운 점이 있으니, 재혼을 안 하신 것이다. 옛날 고려 시대 때는 남편이 먼저 죽으면 재혼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씨 할머니께서는 그러지 않으시고 어린 아들을 키우시며 구미마을에서 머무르셨다고 한다. 우리는 이씨 할머니가 지으시고 사셨던 기와집을 가보았는데 그곳에는 남원 양씨종중문서 일괄을 보관하던 곳이 있었다.
남원 양씨종중문서 일괄은 홍패 2매와 교지 5매로 구성되어있다. 물론 그 안에는 이씨 할머니의 남편 양수생의 홍패도 포함되어 있다. 이 많은 홍패와 교지가 한 가문에서 나왔다는 것이 참 대단하다. 그런데 그 홍패와 교지를 도둑 맞았었다고 한다. 다행히 되찾아서 그 소중한 홍패와 교지를 지키기 위해 국립 전주 박물관에 보관한다고 한다.
구미마을에 가서 이씨 할머니에 대해 살펴보니 여자의 대단함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다음에는 순창의 다른 멋진 여인들에 대해서 알아보아야 겠다.
다시 버스에 올라 채계산으로 출발했다. 해설사 선생님이 채계산은 4가지 이름으로 불린다고 말씀해 주셨다. 첫 번빼, 산의 모습이 그림처럼 아름다워 화산. 두 번째, 바위들이 책을 쌓아놓은 모습 같아서 책여산. 세 번째, 비녀를 꽂은 부인의 모습처럼 보여서 채계산, 네 번째, 적성에 있는 산이라하여 적서산. 이 산은 참 이름이 많고 다른 이름들도 좋지만 화산아라 불러보고 싶다. 왜냐 정말 산의 모습이 이 세상에서 제일 그림을 잘 그리는 화가가 그린 그림같이 아름다워 보인데다, 안 그래도 예쁜데 빨간색의 멋있는 출렁다리가 보는 즐거움을 배가시켜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채계산이란 이름이 더욱 익숙해져 버려서 채계산이라 많이 부를 것 같긴 하다. 그리고나서 열심히 계단을 걸었다. 그 계단에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적혀 있던 게 아직도 기억난다. 나도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라는 속담처럼 무릎은 다쳐서 힘들어도 한 걸음, 한 걸음 열심히 계단을 올랐다. 그 계단에 붙어있는 재밌고 유익한 여러 문장들을 읽는 것도 올라가는데 꽤 도움이 되었다. 계단을 다 오르니 출렁다리가 보였다. 난 저번에도 한 번 와 보았는데 무섭지 않았기 때문에 긴장하지 않고 한 번씩 아래도 봐주면서 빠른 걸음으로 걸어 나갔다. 그런데! 비가 와서 그런지 바닥이 미끌미끌했다.
결국 조심성이 없는 나는 그냥 빨리 가다가 쿵! 넘어지고 말았다. 그래서 그 뒤로 겁을 먹고 친구들의 도움을 받으며 떨며 갔던 것 같다. 근데 어떤 친구들은 막 흔들기도 했기 때문에 더욱 무서웠다. 지금이라도 변명을 하자면 출렁다리를 미끌미끌하게 한 비의 탓이라고 하겠다. 지난번엔 분명 잘 갔었는데... ..., 아무튼 그러한 소동을 겪은 뒤 나는 얌전히 아래로 내려왔다, 그래도 회문산, 강천산과 더불어 순창의 3대 명산이라 불리는 채계산을 가보니 즐거웠다.
다음에 비 안 올 때 또 와야지! 산에서 내려와 버스에 타는데 오랜만에 좀 걸었다고 다리 힘이 풀렸는지 다리가 걷기를 힘들어했다. 긴장해 다리에 힘을 꽉! 주고 걸어 그런다 보다. 그러고 나서 학교로 돌아와 맛있는 밥을 먹으니 다리에도 힘이 생긴다. 역시 한국인은 밥을 하루 세끼 꼭! 챙겨 먹어 줘야 한다. 밥 덕분에 다시 힘차게 향가유원지로 출발했다.
이곳 향가터널은 일제강점기 때 전라도에서 많이 나오는 쌀을 일본으로 가져가지 위해 철길을 만들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되면서 그냥 완성되지 못한 채로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향가터널로 만들면서 섬진강 자전거길로 자리잡았다고 한다.
향가터널 입구에는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는 일본 순사와 슬픈 표정을 하고있는 우리나라 사람이 동상으로 표현되어 있었다. 일본 순사의 표정을 보니 화가 끓어오르고 우리나라 사람을 보니 마음이 아프다. 김구 선생께서 독립하지 못하고 사는 나라의 국민 중 제일 높은 사람 보다, 독립한 나라의 거지가 되는게 더 낫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러니 우리의 조상분들 덕분에 독립한 나라에서 살고있는 우리는 감사해야 되는 것 같다.
그리고 터널 안에 들어가 보았다. 안은 완전 시원했고, 순창의 옛 모습 사진과 순창 학생들이 그린 그림같은 많은 볼거리가 있어 좋았다. 나와 친구들은 그림에서 우리 학교 학생들이 그린 금을 찾으며 신나게 놀았다.
또 안에 있는 벤치에 안에 쉬면서 즐겁게 터널을 걸었다. 이 터널을 일제강점기 때를 한 번 더 생각하게 해주며 자전거를 타고 온 사람들에게는 시원한 휴식공간을 만들어 주는 장점이 넘쳐나는 좋은 터널인 듯 하다.
향가터널을 지나 터널 옆에 있는 향가 목교로 향했다. 이 향가목교도 향가터널처럼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옥출산의 옥을 일본으로 가져가기 위해 만든 다리라고 한다.
남원에서 순창을 거쳐 여수로 이어지는 광주선 철교를 만든다고 한 일이지만 이것도 해방이 되면서 그냥 그대로 있다가 터널과 함께 자전거길로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그 다리에서 나는 친구들과 뛰어놀며 재밌게 지나갔다. 다음에 올 때는 밤에 와보고 싶다. 왜냐 LED 파노라마 조명이 설치되어 야간관광명소가 되었다고하니 말이다.
아! 드디어 볼거리가 많고 이야기가 넘쳐나는 순창탐방을 마쳤다! 너무 신나는 여행이었던 듯 하다. 그냥 조금만 곳으로만, 평범한 곳으로만 알았던 순창이 참 대단하게 느껴진다. “순창! 몰라줘서 미안. 너 진짜 대단하구나!”

순창신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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