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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암(廣岩)마을
광암마을은 면소재지로부터 월곡을 거쳐 제왕고개를 넘어 5.5㎞의 제일 먼 곳으로 생활권이 순창읍이다. 읍까지 4㎞밖에 안되어 초등학교 학구도 순창읍으로 되어 있다.
이 마을은 마을 형국이 행주(行舟)형이라 하여 달리는 배 안창의 마을이라 예부터 배실이라 불러왔다. 이 마을의 취락 과정은 기록이 없어 확실하지는 않지만 구전되는 바에 의하면 망상골, 서당골, 삼박골에 작은 마을들이 있었던 바, 특히 삼박골에 전씨(全氏)들이 집성을 이루었다가 임진란 이후에 이곳 배실로 모여 살게됨에 전씨들이 등왕하게 마을을 이끌어 왔다고 전한다. 남원양씨, 함평이씨들의 집성촌을 이루었고 전씨는 모두 떠나고 현재 선대묘소와 산이 남아있는 것으로 미루어 그분들의 자취가 확인된다.
이 마을은 행주형으로 동남방 복실리 뒤에 농업용저수지를 막고 마을은 재난이 없어졌다는 풍수지리설을 굳게 믿기도 한다. 저수지를 막아 마을 앞 농경직 관수가 용이하여 1997년 경지정리를 시행했다. 마을 앞에는 100여년이 되는 소나무와 박달나무숲이 있고 이곳에 아담하게 정자를 지어 마을의 안식처가 더욱 정취롭다.
태자(太子)마을
태자마을에서 1㎞쯤 있는 막상골에는 설시들이 오래 살았고, 태자보다 먼저 마을이 있었다. 지금도 3호가 살고 있으며 태자는 막상골 안골에 있는 주변 사람들이 임진란 이후에 이곳 태자마을에 취락을 이룬 것으로 전하고 있다.
이 태자마을은 인계면과 경계한 태자봉 상봉에서 왕자(王字)맥을 이루어 풍수지리학에 태자독서형(太子讀書形)으로 옛날부터 군왕지지(君王之地)로서 풍수사들이 끊이지 않는 마을이다. 전해오는 말로 이 태자마을 입구에 문턱바우(도로 확ㆍ포장공사로 없어졌음.)가 있었는데 이 바위를 넘어서는 혈토(血土)가 묻어나면 안된다고 반드시 하마(下馬)하여 신발을 들고 기어서 마을 앞을 지났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으며, 풍수지리학으로는 도인인 홍성문 대사께서도 이 마을 앞을 지날 때에는 반드시 군왕의 예를 갖추어 사배의 절을 하고 지났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이 마을에서 남쪽으로 1㎞지점의 막상골에는 청소년 심신수련장을 건립코자 대지정지작업을 하다가 회사가 부도가 나서 중단되어 있다. 마을 앞은 순태선 도로(순창-태인)가 1996년에 아스팔트 포장이 되어 회문산 관광객들의 통행차량이 많다.
현재 태자마을은 총가구 24호, 인구 70명이 기거하고 막상골에 3호, 안골에 1호가 살고 있어 옛마을의 명맥을 보이고 있다.
이 마을 앞들은 1997년 경지정리 작업이 착수되어 산중이지만 교통과 농사짓기가 좋은 안락한 마을이다. 이곳에서 팔덕면사무소까지는 5㎞로, 마을 앞에서 월곡을 지나 용산리-산동-장안-덕진-(금과면 고례)-방축으로 이어지는 군도로(방축-율북선)가 개설되어 교통오지란 말이 옛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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