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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아이콘 양복규 전주 동암고 이사장을 만나다

소아마비에 지독한 가난 극복“위대한 사람”
강인함과 무한한 사랑으로 세상에 우뚝 서다
동계면 관전리 동쪽 바위 옆 출생으로‘동암’

2021년 11월 04일(목) 10:18 [순창신문]

 

ⓒ 순창신문



양복규 전주 동암고등학교 이사장의 업적을 눈으로 보고 들어보니 그저 감탄이 절로 나올 뿐 그 어떤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지독하게 어려웠던 환경을 극복하고 그만한 일을 하기란 여간해서는 가능할 것 같지도 않고 설령 할 수 있다 해도 그 삶이 얼마나 고단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면 그 위대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하물며 소아마비로 두 다리를 휠체어에 의지해야만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어떻게 그런 업적을 쌓을 수 있었는지 기적이라는 말 밖에는 생각나지 않았다. 양복규라는 한 사람을 통해 본 인간의 본성은 강인함이었고, 위대함이었고, 무한한 사랑이었다.
<편집자주>

◈ 순창 동계면 관전리 출신 양복규 전주 동암고 이사장
동암고 이사장과 전북 장애인체육회 부회장으로 이름이 알려진 양복규 이사장은 현재 전주시 완산구 필달로 416번지에서 ‘동아당 한약방’을 운영하고 있는 83세의 지역 원로다. 휠체어가 없으면 한 발짝도 떼기 힘든 장애인이다.
지금으로부터 650여 년 전 고려말 혼란기에 그의 조상은 동계면 구미리에 터를 잡았고, 그는 동계면 관전리에서 태어났다.
관전리는 동계중고등학교 옆 마을로 지금은 양완규 씨가 살고 있는 집으로, 그가 태어난 생가다. 부친은 체력이 허약해 붓 몇자루 씩을 들고 다니면서 파는 돈으로 생계를 해결하려 했으나, 그것으로 생계를 꾸릴리 만무했다. 양 이사장은 어린시절을 떠올리며 “꼭 죽고 싶을 만큼 지옥의 생활을 했으며, 지옥을 경험해보지 않아 비교할 수 없음이 안타까운 일”이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부친은 양 이사장이 태어난 지 11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고, 모친은 동계면 창주리 출신으로 15세 때 부친에게 시집와 4남매를 낳아 기르면서 낮에는 논밭일, 밤에는 길쌈으로 생계를 꾸렸다.

◈ 소아마비와 한약공부
양 이사장은 5세 되던 해 소아마비에 걸려 왼쪽 발을 사용하지 못했는데, 굶기를 밥 먹듯 한 집안 형편에 약 한 번 써보지 못해 다른 한 쪽도 무력증으로 못쓰게 되면서 양팔과 두 무릎으로 기어다니는 신세가 됐다.
당시 1개월 이상을 앓다가 겨우 목숨만 건진 이사장은 “불행한 운명의 소아마비로 평생동안 편안 생활을 못하고 부끄럽고 죄지은 것 같은 심정을 갖게 됐다”며“사람을 만나야 할 때도 만나야할 지 여부를 놓고 망서린 적이 많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지금은 사람을 만날 바에는 쾌활한 태도로 당당하게 만나고 있다며 그는 웃었다.
이사장은 같은 마을에서 한약방을 하던 임용락 선생에게서 수년간 한의학을 배웠다. 당시 임 선생은 근방의 명의로 돈 없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치료해주는 등 자선사업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런 인품으로 주민들이 추천해 의원도 지냈다.
이사장은 그런 명의가 동계 소재지인 현포로 가지 않고 어떻게 이사장 마을로 이사와 이사장의 구세주가 됐는지, 하늘의 도움이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고 한다.
불편한 몸으로 같은 마을을 오가는 일도 힘든데, 멀리 떨어진 마을이었으면 한방공부를 어찌 할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 순창신문


약초밭이었던 효자동 전북장애인복지관 등의 부지


그렇게 가까스로 배운 한방공부를 활용해 평생 동안의 생계유지는 물론 전주 ‘동암고등학교’와 사회복지법인인 ‘전북장애인복지관’, ‘동암재활원’, ‘동암복지체육관·수영장’,‘ 동암재활보호작업장’, ‘동암차돌학교’를 건립해 운영하고 있다. 동암차돌학교는 재활 초·중·고생 130여 명이 기본교육을 받고 있다.
비장애인도 하기 힘든 업적을 이룬 것에 대해 이사장은 “기적이라 생각한다”는 말로 대신했다.
두 다리 역할을 두 무릎이 하고 있어도 그는 나무도 잘 오르고, 두 팔로 수영도 잘한다. 학문을 익혀야 했던 10여 세 시절 같은 마을의 양근수 씨 부친에게서 글을 배우기 위해 팔과 무릎으로 기어서 눈길을 밟고 가 글을 배웠다. 특히 양근수 씨 누나는 이사장을 자주 업어다 주었다며 그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다.


◈ ‘동암(東岩)’은 호, 전주로 나온 지 8년 만에 집과 한약방 마련
‘동암(東岩)’은 양 이사장의 호로, 이사장 할아버지의 사촌 형제인 재종증조부가 집 동쪽 바위 옆에서 태어났다 해서 ‘장차 호를 동암으로 하라’는 말을 듣고 이를 기억해 고등학교 이름을 동암고로 지었다.
이사장은 지난 1961년 23세의 나이로 가족 몰래 전주로 나가 풍남문 남창당 한약방 근처에서 약방을 열어 손님은 많았지만 무허가로 고발돼 고초도 겪었다. 그러다 이사를 조건으로 풀려나 이사를 한 곳에서 주인댁 딸인 박순자 씨를 만나 결혼을 하니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1967년은 이사장이 한약업사 시험에 합격해 처음으로 당당하게 영업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고, 1968년에는 전주 전동에 생의 처음으로 집을 장만했다. 집 마련과 동시에 약방까지 문을 열어 전주로 나온 지 8년 만에 그는 집과 차와 한약방을 갖는 기쁨을 맛봤다.

ⓒ 순창신문


▲양복규 동암학원 이사장이 기증해 건립된 전북장에인복지관과 재활센터 등


◈ “양과 같이 순한 마음으로”
전주비전대와 인접해있는 ‘전북장애인복지관’ 등은 이사장이 10500평의 땅을 구입해 기부했기 때문에 건립될 수 있었다. 전주시 효자동 2가 1215번지 일대의 이곳은 땅값만 해도 1000억 원대를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972년에 매입한 이 부지는 당시는 약초밭이었다.


ⓒ 순창신문



▲전북 장애인복지관 등의 부지 희사 후 건물이 들어서는 것을 둘러보는 양복규 이사장의 젊었을 때 모습으로, 이 사진은 전북장애인복지관 복도에 걸려있다.


장애인의 삶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이사장은 행정이 부지가 없어 장애인복지관을 지을 수 없다는 말을 듣고 기꺼이 부지를 희사했다. 전북장애인복지관 건물 바로 앞에는 ‘양 같이 순한 마음’이라고 새겨진 표지석이 눈길을 끌었다. 바로 양 이사장이 어떤 마음 가짐으로 세상을 사는지를 금방 알 수 있었다.


ⓒ 순창신문


▲ 동암고전경

◈ 동암고 설립“인성이 진정한 실력”
1981년 3월 개교한 동암고등학교는 1975년부터 3년 간의 부지 매입을 시작으로 1978년 학교 설립에 박차를 가해 설립된 학교다.
올해로 개교 40주년을 맞은 동암고의 교육 방향은 ‘인성’이다. 교육이념은 ‘인간 중심 교육을 통해 인간다운 삶과 바람직한 가치관 함양’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동암고의 교육 목표는 ‘예의 바르고 긍지있는 예절인’이며 ‘창의적 사고를 지닌 창조인’, ‘겸양지덕과 능력을 겸비한 봉사인’이다. 동암고는 “인성이 진정한 실력”이라고 가르친다.
동암고 입학생들은 입학시에 ‘천자문’한 권을 선물로 받는다. 이사장이 직접 쓴 천자문 글씨를 복사해 정성스럽게 엮은 책이다. 학생들은 입학과 동시에 지금은 일선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 한자를 익히게 된다. 한자를 가르치지 않아 다른 외국어에 대한 접근이나 지식이 취약할 수 있다는 교육 전문가들의 지적을 고려하면 동암고 입학생들은 타 학교 입학생들보다 앞선 실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특히 동암고 학생들은 매년 5월 8일에는 마음껏 부모에 대한 효도를 할 수 있다. 동암고의 개교기념일은 당초 5월 24일인데 8일 어버이날로 옮겼기 때문이다. 경로 효친 사상이 강한 양 이사장의 뜻에 따라 효행이 강조되고, 경로효친 사상을 기본으로 효를 중요시한 데서 나온 것이다.
또 매년 추석 2주 전에는 조상의 묘를 정리하는 ‘벌초의 날’이 정해져 학생들은 부모를 따라 벌초 현장에 갈 수 있고, 교사 등 직원들은 맘편히 조상의 묘를 돌볼 수 있다.
뿐 만 아니라 3학년 학생들은 수능 이후 ‘성년례’의식을 통해 성년이 될 수 있고, 학생들은 ‘가승교육’을 통해 조상에 대한 뿌리를 알 수 있다.
동암고는 이사장의 교육 이념에 따라 자연 친화적인 교내 분위기와 교내 둘레길, 2인실의 쾌적한 기숙사, 깔끔하게 정리된 교내 식당, 넓은 음악실 등을 자랑으로 꼽는다.

◈ 박정희 형수인 조 여사와의 만남
양 이사장이 당시 박 정권의 가족을 알게 되는 계기는 이러했다. 지난 1977년 순창 출신의 정규남 씨가 내무부에 근무하다가 전북도청 부지사로 부임하면서 정 부지사의 아내가 평소 알고 지내던 박 대통령의 형수이며, 김종필 전 총재의 처모인 조 여사를 이사장에게 소개한 일이 있었다.
어느 날은 조 여사가 이사장의 약방을 보기 위해 전주에 내려왔고, 그 소문으로 이사장의 명성은 서울까지 퍼졌다. 이사장은 이로 인해 한동안 서울 금용호텔까지 가서 환자를 돌보는 등 유명세를 떨쳤다. 그러다 동암고를 설립하면서 일이 많아 서울 출장은 그만두고 동아당 한약방에서만 진료를 했다. 이사장은 지금도 한약방 일을 소홀히 하지 않고 있다. 아무리 바쁜일이 생겨도 시간을 정해놓고 한약방 업무를 하고 있다.

◈ 양 이사장에게 어머니는...
동암고 교문을 지나 몇 발자국을 걷다 보면 본건물 진입 전 왼쪽 화단에 쏟아지는 햇빛을 받고 서있는 ‘모성애’상이, 오른쪽에는 ‘호피석’이 눈길을 끈다.
모성애 상은 이사장이 모진 고생을 한 어머니를 생각하며 세운 석상이고, 호피석은 순창 동계면에서만 수집된다는 호피 모양의 돌로, 동암고 남학생들이 호랑이처럼 강인하고 장엄한 대장부로 출세할 것을 바라는 마음으로 이사장이 학교에 기증한 것이다.
이사장은 모친에 대해 “어머니께서는 먹을 것이 없어 굶더라도 댓가가 없는 것은 절대로 받지도 먹지도 않으셨다”며 “어머니의 가르침으로 지금도 찬 물 한 모금도 공짜는 없다는 것을 철칙으로 삼고 있다”고 밝혔다.
7세~8세 정도 되던 해쯤 하루는 이사장을 업고 골목을 나갔는데 동네 사람들이 고구마와 옥수수 등을 들고 와 건네는데 어머니는 “‘밥을 배부르게 먹었다’며 ‘손을 뻗어 절대 받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던 적이 있다”고 이사장은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렸다.
어머니의 엄한 교육은 흔들릴 수 있는 어떤 상황에서도 원칙을 지킬 수 있는 재산이 됐다. 모진 가난 속에서도 세상사는 올바른 이치를 가르쳐 준 어머니에 대한 애정은 자신으로 인해 그 삶이 더욱 힘들었을 것을 생각하는 양 이사장의 마음으로, 지금 어느 순간도 잊을 수 없는 애뜻한 마음으로 자리잡고 있다.


ⓒ 순창신문


▲ 양복규 동암학원 이사장이 꿈에도 잊지 못하는 어머니에 대한 애정을 담아 동암고 건물 앞 화단에 조성해놓은 '모성애'상 앞에서 학생들이 포즈를 취한 모습.

이건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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