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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으로 보는 순창의 100년 전과 현재 - 쌍치면 / 기획연재 ⑩

2021년 02월 10일(수) 14:48 [순창신문]

 

ⓒ 순창신문



순창신문 1,000호를 맞아 100여 년 전 순창의 인구와 지명을 조사한 지지조서와 70여 년 전에 만든 순창군 지명조사철을 들여다봤다. 매주 순창읍을 시작으로 이번주에는 쌍치면을 살펴본다. 1916년과 1917년 순창군 지지조서는 군산 동국사 종걸스님에게 받아온 파일로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만든 문서다.
쌍치면은 쌍계리를 비롯한 방산리·종곡리 등 19개 리 34마을을 관할하고 있다. 2월 8일 현재 인구는 1052세대 1989명이 거주하고 있다. 1916년에는 19개리 56개 마을에 1563세대 7664명이 거주했다. 이후 해방이후에는 인구가 늘어 1424가구에 7444명이 쌍치면에 살았다. 쌍치면은 삼국시대 도실군에 속했으며, 고려시대 상치등방·하치등방으로 편제되면서 군방(郡坊)이 설치되어 지명의역사가 오래된 곳이다. 『여지도서』(순창)에“상치등면(上置等面)은 관아에서 60리이다. 하치등면(下置等面)은 관아에서 80리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대동지지』에는“상치등(上置等)은 본래 치등소(置等所)였다. 서쪽으로 처음은 30리 끝은 60리이다. 하치등(下置等)은 서쪽으로 처음은 50리 끝은 90리이다.”라고 하였다. 『해동지도』에서 하치등면과 상치등면이 묘사되어 있고 두 면의 중간에 용광사(龍光寺)가 그려져 있다. 상치등면에는 인근의 도로 상태를 표현한 주기가 수록되어있다.『 청구도』에서도 상하로 분화된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상치는 태인과 접경을 이루는 북쪽에 표기되고, 하치는 같은 면관내의 복흥(福興)과 맞닿은 남쪽에 표기되고 있다. 『신구대조』에는 운암(雲岩)리 등의 하치등면과 시산(詩山)리등의 상치등면이 통합되어 쌍치면이 되었다고 수록되어있다. 면 소재지인 쌍계리는 반계리와 금계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임진왜란 때 은행나무 말뚝을 꽂아놓은 것이 싹이 터 은행열매가 열렸다 하여 삽실이라 부르다가 이후에 추령천 가까이 있는 마을을 금계, 아랫마을을 반계라 불렀고, 1914년 두 마을을 합하여 쌍계라 칭하였다.


ⓒ 순창신문



▲환유첩 순창지도 내 쌍치면
1878년(고종15) 5월 순창군수에 임명된 홍기주 군수가 만든 환유첩에는 상치면과 하치면으로 표시되어 있다. 하리, 구산, 석보는 상치등면으로, 서사창은 하치면, 상치면 복흥면이 관할했고, 55리에 외창(外倉)이 표시되어 있다.

1916년 지지조서를 보면 쌍치면내에 방산리는 운흥(개운리)과 방산마을을 담당하고 인구는 85가구에 402명이 거주했다. 적곡리는 적곡(북실), 장재, 가운마을을 담당하고 81가구에 393명이 거주했다. 신성리는 신성과 오도(오도곡)마을로 51가구에 248명이 거주했다. 탕곡리는 두지와 탕곡마을을 담당하고 21가구에 118명이 거주했다. 중안리는 중안과 용계마을로 34가구에 160명이 살았다. 둔전리는 어암, 점암(메억바우), 둔전, 봉선동마을로 60가구에 388명이 거주했다. 도고리는 신평, 도고(도고미), 산수동마을로 57가구에 266명이 살았다. 시산리는 용암, 시산, 마항마을로 52구에 261명이 거주했다. 옥산리는 옥산, 무동, 상처, 만수동마을로 149가구에 660명이 살았다. 종암리는 농암(농바우), 기곡(터실), 종현(북재)마을로 90가구에 495명이 거주했다. 학선리는 부정, 오룡, 입신(외양실), 율리, 승어마을로 122가구에 658명이 살았다. 금평리는 금정, 보평(봇뜰), 석현(돌고지)마을로 111가구에 513명이 거주했다. 쌍계리는 금계(웃삽실), 반계(아래삽실)마을로 90가구에 529명이 살았다. 금성리는 내동, 피노마을로 153가구에 708명이 거주했다. 오봉리는 오동(먹우실), 봉서(삼압), 곡골, 배재마을로 65가구에 282명이 살았다. 용전리는 운용(먹산리), 신동마을로 108가구에 526명이 거주했다. 운암는 운교, 구암(하천리), 내산마을로 81가구에 416명이 거주했다. 전암리는 전배, 삼암, 회룡(오리동)마을로 70가구에 283명이 거주했다. 양신리는 양산, 상신(피치), 장발리로 83가구에 358명이 살았다.

ⓒ 순창신문



1955년 전후 쌍치면 방산리는 운흥(개운리)과 방산마을을 담당하고 인구는 71가구에 301명이 거주했다. 적곡리는 적곡(북실), 장재동, 가운마을을 담당하고 63가구에 356명이 거주했다. 신성리는 신성과 오도(오도실)마을로 35가구에 165명이 거주했다. 1958년에 신설한 방산분교에는 55명의 학생들이 다녔다. 탕곡리는 두지동과 탕곡(암곡)마을을 담당하고 28가구에 157명이 거주했다. 중안리는 중안과 칠형리마을로 12가구에 52명이 살았다. 둔전리는 어암, 점암, 둔전, 송정자, 사기점마을로 61가구에 424명이 거주했다. 도고리는 신평, 도고(도고미), 산수동마을로 57가구에 254명이 살았다. 시산리는 용암, 시산, 마항마을로 60구에 388명이 거주했다. 1933년에 세운 시산국민학교에 305명의 학생이 있었다. 옥산리는 옥산, 무동실, 상서, 만수동, 사리실마을로 95가구에 482명이 살았다. 종암리는 농바우, 터실, 종현, 홀기미마을로 59가구에 332명이 거주했다. 학선리는 외양실, 국동, 율리(밤실), 승어실, 오룡촌, 부정, 덕산마을로 102가구에 540명이 살았다. 금평리는 금정, 석현, 보평마을로 126가구에 682명이 거주했다. 쌍계리는 금계(쌍계), 새터마을로 151가구에 790명이 살았다. 1909년에 세운 쌍치국민학교에 423명의 학생이 있었다. 금성리는 사동, 상촌, 피노, 내동마을로 145가구에 758명이 거주했다. 오봉리는 오봉, 봉서(삼장), 곡골, 먹우실마을로 76가구에 383명이 살았다. 용전리는 용전(큰동네)와 운용(작은동네)마을로 92가구에 508명이 거주했다. 운암리는 운교, 구암, 안산마을로 73가구에 332명이 거주했다. 전암리는 전야리(전배미), 삼암(석동바우), 오리동(오리골)마을로 46가구에 197명이 거주했다. 양신리는 양산(양산촌), 장발리, 피치(피재)마을로 68가구에 368명이 살았다.

양재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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