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2026-04-17 | 10:02 오전

더불어민주당 전북특별자치도당 순창군수 후보

로그인 회원가입 기자방 원격
    정치/행정 교육 문화 스포츠 환경/보건복지 농업소식 종합 인물인사 칼럼 기획 특집 토론방 보도자료 지역소식 소식정보 포토 경제

전체기사

커뮤니티

독자투고

공지사항

독자마당

자유게시판

토론방

뉴스 > 특집

+크기 | -작게 | 이메일 | 프린트

지명으로 보는 순창의 100년 전과 현재 - 복흥면 / 기획연재 ⑨

2021년 02월 05일(금) 15:48 [순창신문]

 

ⓒ 순창신문



순창신문 1,000호를 맞아 100여 년 전 순창의 인구와 지명을 조사한 지지조서와 70여 년 전에 만든 순창군 지명조사철을 들여다봤다. 매주 순창읍을 시작으로 이번주에는 복흥면을 살펴본다. 1916년과 1917년 순창군 지지조서는 군산 동국사 종걸스님에게 받아온 파일로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만든 문서다.
복흥면은 정산리(鼎山里)를 비롯한 서마리·화양리 등 17개 법정리와 00개 행정리를 관할한다. 1월 29일 현재 인구는 1131세대 2204명이 거주하고 있다. 1916년에는 17개리 55개 마을에 2902세대 7137명이 거주했다. 이후 해방이후에는 인구가 늘어 1176가구에 9064명이 복흥면에 살았다.
복흥면은 백제때부터 복흥현이 이곳에 있어 지명의 유래는 매우 오래되었다. 1314년(고려 충숙왕 1)에 군 18방의 하나인 복흥방이었다가, 조선시대에 순창군에 포함되었다. 『여지도서』에 “복흥면(福興面)은 관아에서 70리이다.”라고 하였으며 복흥폐현(福興廢縣)이 ‘고려 초의 폐현(廢縣)’으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이 일대가 군현(郡縣)제가 적용되었던 고을인 것으로확인된다.『 대동지지』에는 “복흥은 서쪽으로 처음이 50리, 끝이 80리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청구도』에 복흥면 지명과 함께 동쪽에 ‘고복흥편(古福興縣)’지명이 수록되어 있어 이곳이 과거에 복흥현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1897년(고종34)‘ 방’이‘면’으로 개편되어 서마·화양·동산 등 16개 마을로 편제되었다. 1914년 쌍치면의 석보·답동·하리가 귀속되어 오늘에 이른다.


ⓒ 순창신문


▲환유첩 순창지도 내 복흥면
1878년(고종15) 5월 순창군수에 임명된 홍기주 군수가 만든 환유첩에는 하리, 구산, 석보는 상치등면으로 표시되었다. 서사창은 하치면, 상치면 복흥면이 관할했고, 55리에 외창(外倉)이 표시되어 있다.


1916년 지지조서를 보면 복흥면내에 석보리는 석보와 행동(항동)마을을 담당하고 인구는 70가구에 334명이 거주했다. 하리는 하리(사창), 창등, 중리, 상리마을을 담당하고 104가구에 523명이 거주했다. 답동리는 답동(논골), 신기(비석동), 구산마을로 77가구에 368명이 거주했다. 상송리는 외송(밧소랏), 내송(안소랏)마을을 담당하고 35가구에 228명이 거주했다. 주평리는 와룡, 구은, 신적, 용암, 율평(배정)마을로 51가구에 264명이 살았다. 정산리는 게산(삼내), 동서, 정동, 무림동마을로 128가구에 586명이 거주했다. 대방리는 갈원, 용지, 일운, 금방동마을로 95가구에 428명이 살았다. 어은리는 어은마을로 125구에 652명이 거주했다. 금월리는 금평(강대리), 칠립(유갓), 대각마을로 88가구에 470명이 살았다. 산정리는 내오(안외양간), 서정, 외오(밧외양간)마을로 84가구에 382명이 거주했다. 지선리는 명지산, 용교마을로 76가구에 402명이 살았다. 농암리는 성자동, 하농소, 상농소, 휘암마을로 62가구에 303명이 거주했다. 봉덕리는 대가(한가랏), 덕흥, 도화마을로 96가구에 421명이 살았다. 반월리는 자포곡, 월성, 봉상(벌메), 화지산마을로 107가구에 504명이 거주했다. 동산리는 안산, 궁산, 하됴동(구실)마을로 107가구에 496명이 살았다. 화양리는 양림동, 봉서마을로 47가구에 190명이 거주했다. 서마리는 옥정, 공근, 하마치, 서지, 상마치, 증산마을로 133가구에 526명이 거주했다.


ⓒ 순창신문



1955년 전후 복흥면 석보리에는 석보마을로 51가구에 279명이 거주했다. 하리는 사창, 창등, 중리, 상리마을을 담당하고 75가구에 472명이 거주했다. 답동리는 비석동, 논골, 새터, 구산마을로 103가구에 589명이 거주했다. 답동분교에는 112명의 학생이 있었다. 상송리는 내송과 외송마을로 25가구에 146명이 살았다. 주평리는 구은, 송정, 율평마을로 35가구에 201명이 거주했다. 정산리는 비거, 무림동, 정동, 동서마을로 192가구에 1164명이 거주했다. 대방리에는 갈원, 용지, 금방동마을로 50가구에 323명이 거주했다. 어은리는 어은마을로 76가구에 395명이 거주했다. 금월리는 대각, 옷갓, 강두마을로 105가구에 507명이 거주했다. 산정리는 서정, 외오, 새터마을로 50가구에 309명이 살았다. 지선리는 명지, 용교마을로 42가구에 507명이 거주했다. 농암리는 휴암, 하농소, 성자, 상농소마을로 153가구에 314명이 거주했다. 봉덕리는 대가, 도화, 덕흥마을로 64가구에 337명이 거주했다. 반월리는 월성, 자포, 벌매마을로 99가구에 613명이 살았다. 동산리는 구슬, 안산, 선앙바우마을로 83가구에 557명이 거주했다. 동산분교에 101명의 학생이 있었다. 화양리는 봉서와 양림마을로 22가구에 122명이 거주했다. 서마리에는 중산, 추령, 옥정, 서지, 하마마을로 39가구에 393명이 거주했다 .

양재실 기자  
“”
- Copyrights ⓒ순창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순창신문 기사목록  |  기사제공 : 순창신문

 

이전 페이지로

실시간 많이본 뉴스

 

더불어민주당 전북특별자치도당

최기순 순창군 장애인편의증진기술

순창군 읍·면민 협의회 4월 정

옥천5마을, 주민 화합 플리마켓

농업기술센터, 과수 화상병 원천

순창군청소년수련관, 청소년 자

“나무에 새긴 마음, 군민과 나

순창군장애인복지관, ‘2026

대한노인회 팔덕면분회, 선진지

너의 탄생을 축하해♥ 장은우

회사소개 - 조직도 - 임직원 - 윤리강령 - 편집규약 - 광고문의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 기자회원 약관 - 구독신청

 상호: 순창신문 / 사업자등록번호: 4078107159 / 주소: 전북 순창군 순창읍 옥천로 32 / 대표이사: 오은숙
mail: scn5850@naver.com / Tel: 063-653-5850 / Fax : 063-653-5849
Copyright ⓒ 순창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