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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으로 보는 순창의 100년 전과 현재 - 금과면 / 기획연재 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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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1월 20일(수) 16:38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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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순창신문 | |
순창신문 1,000호를 맞아 100여 년 전 순창의 인구와 지명을 조사한 지지조서와 70여 년 전에 만든 순창군 지명조사철을 들여다봤다. 매주 순창읍을 시작으로 이번 주에는 금과면을 살펴본다. 1916년과 1917년 순창군 지지조서는 군산 동국사 종걸스님에게 받아온 파일로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만든 문서다.
금과면은 매우리(梅宇里)를 비롯한 수양리·발산리·내동리 등 13개 법정리에 25개 행정리를 관할한다. 1월 18일 현재 인구는 984세대 1,756명이 거주하고 있다. 1916년에는 13개리 26개 마을에 1,130세대 5,432명이 거주했다. 이후 해방이후에는 인구가 늘어 1,258가구에 7,495명이 금과면에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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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순창신문 | |
1872년 지방지도
금동면과 목과면이 표시되어 있다 남사창이 15리에 아미산 아래에 있었으며, 5개면(좌부면·오산면·풍남면·금동면·목과면)이 관할했다.
금과면 지명은 조선시대 이곳에 있었던 금동면(金洞面)과 목과면(木果面)을 합해서 한글자싹 합성했다.『여지도서』(순창)에 “금동면(金洞面)은 관아에서 20리이다. (중략) 목과동면(木果洞面)은 관아에서 22리이다.”라고 하였다.『대동지지』에는“목과(木瓜)는 남쪽으로 처음이 10리, 금동(金洞)은 남쪽으로 처음이 15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대동지지』에서도 유사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에는‘목과(木果)’로 표기자만 변하고 있다.『청구도』에서는‘목과면(木瓜面)’으로 표기되었으며, 인근에 고비면·고원면 등이 기재되어 있다.『구한국행정구역일람』에는“성현(星峴)리 중심의 14개 마을이 금동(金洞)면에 속해있고, 호치(虎峙)리 중심의 10개 마을은 목과(木果)면에 속해 있다.”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이때 면이 다시 분리된 것으로 보인다. 『신구대조』에 의하면‘금과(金果)’라는 통합 지명이 등장하고 있다. 여기서는“수양(水楊)리 중심의 금동(金洞)면과, 방축(防築)리 중심의 목과(木果)면이 합쳐져도 금과면이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면 소재지인 매우리는 고려시대 마암(磨岩)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매우’지명은 조선시대 형국상 매화꽃이 땅에 떨어진 곳, 즉 매화락지(梅花落地)라 하여 지명이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모정리(茅亭里)라 개칭하였으나 2008년에 다시 매우리(梅宇里)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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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지지조서를 보면 금과면내에 내동리는 내동마을과 연화촌마을을 담당하고 인구는 99가구에 452명이 거주했다. 동전리는 월대장리, 동전리, 만촌마을을 담당하고 77가구에 343명이 거주했다. 발산리(반산리)는 발산마을과 산수동마을로 53가구에 257명이 거주했다. 수양리는 수양리와 고산동마을을 담당하고 57가구에 283명이 거주했다. 대성리는 대각, 성현, 을장동마을을 속한 마을로 78가구에 390명이 살았다. 청룡리는 청룡마을로 86가구에 406명이 거주했다. 방성리는 방성마을과 석촌마을로 70가구에 325명이 살았다. 남계리는 남계마을과 호치마을로 82가구에 402명이 거주했다. 륵곡리는 륵곡마을과 장촌마을로 50가구에 257명이 살았다. 목동리는 릉동, 목과, 계전마을로 126가구에 608명이 살았다. 방축리는 방축마을로 164가구에 844명이 거주했다. 고례리는 고례마을과 송정마을로 81가구에 400명이 거주했다. 모정리는 모정(매우)마을로 107가구에 475명이 거주했다.
1948년 전후 금과면 내동리에는 내동과 연화마을로 113가구에 601명이 거주했다. 동전리는 만촌, 대장, 동전마을을 담당하고 102가구에 695명이 거주했다. 발산리는 산수동과 발산마을로 56가구에 359명이 거주했다. 수양리는 수양과 고산마을로 69가구에 408명이 살았다. 대성리는 대성과 대각마을로 78가구에 398명이 거주했다. 청룡리는 청룡마을과 치등마을로 93가구에 513명이 거주했다. 방성리는 방성과 석촌마을로 80가구에 531명이 살았다. 남계리는 남계와 호치마을로 96가구에 580명이 살았다. 늑곡리는 장동과 장촌마을로 64가구에 362명이 거주했다. 목동리는 이목, 운산, 일목마을로 132가구에 782명이 거주했다. 방축리는 방축마을로 금과지서가 있었으며, 162가구에 947명이 거주했다. 고례리는 고례마을과 송정마을로 96가구에54+명이 살았다. 모정리는 금과면사무에 8명의 직원이 근무했다. 금과국민학교에는 1,100명의 학생이 다녔다. 모정마을은 외모, 중모, 신모마을로 분리되었고 117가구에 741명이 거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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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실 기자 “” - Copyrights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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