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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읽기 / 김 진

인생을 바꾸는 한 권의 책의 힘

2021년 03월 25일(목) 15:26 [순창신문]

 

ⓒ 순창신문



쇼펜하우어가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세상에 내놓은 것은 1819년. 1788년에 지구별에 도착했으니 그가 31세의 일이다. 그는 25세에 <충족근거율의 네 가지 뿌리에 대하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이를 기반으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구상하고 집필했다. 이후의 삶은 이 책을 보완, 증보, 확산, 심화시키는 데 바쳐졌다. 처음 그의 책이 나왔을 때 이 책에 주목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750부의 초판은 거의 팔리지 않았고 출판한 지 6년이 지났을 때 600부 정도가 팔려나갔다고 한다. 쇼펜하우어는 생리학, 해부학, 언어학, 천문학, 중국 철학, 텔레파시, 마술 등 폭넓은 지식을 공부했다. 56세에 쇼펜하우어는 50개의 장을 추가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제2판을 출간했다. 그의 나이 60세가 되어서야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고 독일의 대표적인 철학자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는 자신의 사상을 이해하고 싶은 독자라면 반드시 두 번을 꼼꼼하게 읽어야만 비로소 이 책이 이해 가능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야 전체적인 일관성을 조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그렇다. 필자 또한 늘 선지식과 선경험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바 우리가 처음 무언가를 보고 듣고 읽는 것, 그 자체가 선지식과 선경험으로 작동한다. 그래서 다시 보고 다시 듣고 다시 읽게 되면 비로소 그것을 이해하는 보폭이 자연스러워지게 된다. 쇼펜하우어가 자신의 독자에게 첫 번째로 요구하는 것 또한 '다시 읽기'다.
그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한 사상 체계는 언제나 건축학적 관계를 가진다. 즉 한 부분이 다른 부분을 떠받치지만, 후자는 전자를 떠받치지 않으며, 결국 초석은 다른 것들로부터 떠받쳐지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떠받치고, 꼭대기는 아무것도 떠받치지 않으면서 모든 것으로부터 떠받쳐지는 그런 관계를 가진다."
그는 자신의 '고유한 사상'은 플라톤, 칸트, 우파니샤드 철학이라는 세 가지 초석으로 지어진 '건축학적 체계'이므로 반드시 플라톤과 칸트와 우파니샤드 철학을 먼저 공부할 것을 제안한다. 그는 '세계는 표상이다"라고 말한다. 그가 말한 '표상'은 칸트의 현상, 플라톤의 가상, 베단타의 마야와 비교된다. 쇼펜하우어의 '의지'는 칸트의 물자체, 플라톤의 이데아,에 해당한다. 그러나 물론 그의 해석은 완전히 다른 방향을 지시한다. 쇼펜하우어의 선지식은 칸트와 플라톤과 우파니샤드 철학이다.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면 쇼펜하우어가 어떻게 선지식을 재료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의지와 표상의 세계를 펼쳐나가는지 훨씬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드러난 세계 현실은 '우리에게 드러난 것' 즉 '표상'이다. 그런데 이 표상의 실질적인 근거는 '의지'에 있다. 나의 의지가 나의 삶의 표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의지는 맹목적 삶에의 충동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나는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생존하고자 하는 의지에 사로잡힌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이렇게 '삶에의 맹목적 충동'으로서의 의지를 갖고 있다. 따라서 쇼펜하우어는 바로 이러한 '의지의 완전한 부정과 폐기'를 주장한다. 나를 버려라. 나의 삶에의 맹목적인 충동인 의지를 폐기하라. 삶은 끝없는 고통의 연속이다. 그는 이렇게 모든 존재가 드러나는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사실 의지가 객관화되는 과정에서 발현하는 것이며 이것들이 고통으로 드러나게 된다고 보았다. 의지가 자신을 실현하려는 삶의 현장에는 고통이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즉 고통이 모든 삶의 근본이다. 나와 너는 분리되어 있고 나의 맹목적인 삶에의 충동은 타자와의 경쟁을 필연적으로 요구한다. 그 와중에서 우리는 고통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바로 이 개체화의 원리에서 벗어나는 것. 그것이 바로 쇼펜하우어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동고同苦'이다. '나'라는 개체성의 환상에서 벗어나면 타자의 고통에 연민을 느끼게 되고 이를 위해서는 개체성으로서의 삶에의 의지를 소멸시켜야 한다. 나 자신에서 벗어나면 내가 곧 세계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두 번째로 쇼펜하우어가 독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이 책의 '서론부터 읽어야 한다는 것.'
이것은 25세에 쓴 그의 박사학위 논문 <충족근거율의 네 가지 뿌리에 대하여>를 말한다. 충족근거율이란 '어떤 것이 존재한다면 그렇게 존재할 수밖에 없도록 규정하는 필요 충분한 조건', '모든 학문, 인식 체계의 기조', 그리고 '그 자체로 확실한 진리'를 뜻한다. 말하자면 '어떤 것이 바로 그것이도록 규정하는 근거, 원인 또는 이유를 드러내는 것.'
우리는 날마다 '경험'을 통하여 세상을 파악한다. 이 세상은 현상, 관념, 표상으로서의 세계다. 이 세계는 주체와 객체가 뒤섞여 존재한다. 어떤 것도 그 자체로 존재하거나 독립적일 수 없다. 우리에게 모든 객체는 주체에 드러난 객체, 즉 주체의 객체다. 이 근본적인 사실에서 쇼펜하우어는 생성, 인식, 존재, 행위의 네 가지 충족근거율을 제시한다.
생성의 충족근거율은 '어떤 존재 사물도 충분한 근거 없이는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
인식의 충족근거율은 '판단의 논리적 근거에 관한' 것이다. 존재의 충족근거율은 '공간과 시간의 모든 부분은 다른 것들과의 관계 속에 있으며 서로를 규정하고 제약하는 특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행위의 충족근거율은 '심리적 영역에서의 동기'에 관한 것이다. 즉 인간이란 동기에 따라 행동한다는 '동기의 법칙'이다.
쇼펜하우어는 이러한 충족근거율이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는 조건이라고 생각했고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는 이 충족근거율에 의한 현상적 세계, 표상적 세계,라고 보았다. 표상은 시간, 공간, 인과성이라는 형식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주체와 객체의 상호의존성을 전제로 한다. 경험의 실재성이란 인과성의 법칙에 근거를 두고 있다. 쇼펜하우어는 기존 철학자들처럼 사변적인 철학, 세계의 시원을 규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본질'을 들여다보고자 했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 우리에게 드러나는 표상으로서의 세상이 주체와 객체, 주관과 객관, 자아와 세계가 분리되어 있지 않음을 차분하게 설명해 주었던 삶의 철학자, 최초의 실존철학자였다.*

순창신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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