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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공자문화센터, 순창향교 금과 방성리 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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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8월 19일(수) 16:49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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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순창신문 | |
8월 5일 한국공자문화센터 이육원 원장과 전춘화 부장(홍익대 상경학부 교수)이 촬영팀과 함께 순창향교와 금과면 방성리 곡부공씨 집성촌을 취재했다.
이날 한국공자문화센터 총재 겸 성균관유도회 총본부 박홍영 부회장 및 공병철 성균관부관장, 공환규 곡부공씨 종친회장 등 종친회원 20여명도 함께했다.
먼저 순창향교에서 강병문 일요학교장의 집례로 순창향교 유양희 전교와 곡부공씨 종친회원들은 순창향교 대성전에서 봉심례를 올렸다. 이어 금과면 방성마을을 찾아 곡부공씨가 순창으로 입향한 내력을 취재했다.
금과면 방성리는 곡부공씨 집성촌이다. 원래 방그미, 방기미로 불렀다. 공자의 64세손 학재(學齋) 공동(孔童)이 임진왜란 당시 전남 화순에서 방그미 마을에 입향하여 집성촌을 이루었다.
순창군수로 부임한 이성열(李聖㤠 재직 1892~1894) 군수가 이 마을을 찾아 왔다가 공자의 후예가 사는 마을이니 방성리로 하는 것이 좋겠다하여 방성리라고 부르게 되었다.
곡부공씨 시조는 공자(孔子)다. 그의 53대손 공완孔浣의 둘째 아들 공소(孔紹)가 원나라 순제順帝때 한림학사雗林學士를 지내다가 1351년 고려 충정왕 때 공민왕과 함께 온 노국공주魯國公主를 수행하여 와서 평장사의 벼슬을 받고 고려에 귀화했다. 이후 문하시랑평장사文下侍郞平章事로 회원군檜原君에 봉해지고 관향은 창원昌原을 받아 우리나라 공씨의 시조가 되고 조선 정조 때에 공자의 고향인 곡위(曲韋)를 관향으로 하사 받았다.
자료제공/ 순창향교 배요식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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