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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과 동전 설진영 서실 / 순창군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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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곤 국사편찬사료조사위원
전) 순창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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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7월 30일(목) 15:32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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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순창신문 | |
설진영 ( 薛鎭永) 의 본관은 순창이요 자는 도흥 호는 남파이다.
1895년(고종32년) 명성황후가 시혜되자 스승 기우만(1846~1916)과 함께 장성에서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1910년 국권이 강탈 당하자 순창으로 낙하여 아미산 남쪽에 서실을 세우고 이곳에서 글을 읽으며 후진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설진영의 서실을 통해 많은 인재와 항일 애국지사가 배출되었다. 1940년 일본이 시행한 민속말살정책의 하나인 일본식 성명 강요에 분함을 참지 못 하다가 성씨는 절대로 고치지 않겠다는 내용의 절명서를 적은 유서를 남긴체 우물에 투신 자결하였다.
설진영 서실은 순창군 금과면 동전리 25번지 마을 동쪽 끝자락에 있다.
1910년 설진영이 후학을 양성하고 민족사상을 배양하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정면 4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왼쪽부터 방과 방 그리고 대청으로 이어지며 방과 대청 사이는 분합이 설치되여 필요에 따라 모두 터서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게하였다. 이것은 많은사람들을 동시에 모아 놓고 강의를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대청 정면에도 분합을 달아 여름에는 걷어 올려 사용하였다. 건물의 앞면과 뒷면 모두가 뒷 마루가 붙어있다. 건립 당시에는 초가였으나 현재는 시멘트 기와로 바뀌었으나 마당 오른쪽에는 뒷간이 있는 헛간채를 배치하였다. 초가지붕을 제외 하고는 거의 옛모습을 그대로 유지 하고 있다.
건물 뒤로는 대숲이 자리하고 있다 1998년 전라북도 기념물 제 96호로 지정되었으며 순창 설씨 후손인 설상환이 소유, 관리하고 있다
설진영은 근대 유학자로 나라를 위하여 의병을 일으켰을 뿐 아니라 일제강점기에는 두문불출하여 절의를 지키다 끝내 자결하였다 . 설진영 서실은 설진영의 민족의식을 보여주는 유적으로 보존가치가 높다. 이분의 높으신 애국심을 후손에게 큰 교육자료로 삼고자 한다.
참고: 순창 주요 문화유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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