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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수생처 이씨 열려각 / 순창군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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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곤 국사편찬사료조사위원
전) 순창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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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7월 01일(수) 16:15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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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부 이씨는 고려때에 직재학 양수생의처이다
수생의 죽음에 아직 나이가 젊은이고 부모님들이 일찍이 과부가 된 것을 불쌍이 여기고 수절하려던 마음을 돌려 개가 하도록 하려는데 이씨 부인이 그때 임신중이라 울면서 부모님께 말씀 드리기를 “나의 뱃속에 있는 아이가 다행히 남자라면 양씨(楊氏) 집안에 자사를 끊이지 않을 것이니 아이를 낳은 뒤에 개가를 하여도 늦지 않습니다” 하고 개가를 하지 않고 있다가 아들을 낳으니 부모들께서 억지로 개가를 시키려 하니 이씨가 또 울면서 말씀드리기를 아이가 아직 젖을 먹고 있으니 만약 다른 곳으로 개가하여 가게되면 아이가 잘 자랄지 모릅니다.
다행히 하나님이 양씨 집안에 후손을 있게 했으니 내가 차마 그 뜻을 거절하겠습니까? 아이가 앞으로 젖 먹이만 끝나는날을 기다려 주십시오.하고 간청하였다.
“아이가 커서 능히 밥을 먹고 말을 할줄 아니 이씨가 의젖이 말하기를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려는 두 서방을 고쳐가지 않는다” 하였으니 죽기를 맹세하고 다른 곳으로 시집을 고쳐가지 않는다. 하였으나 부모님들께서는 그때까지도 양해하여 줄 것 같지 않으니 이씨가 처음에는 자결하여 죽어버릴까 하였으나 정의가 아닌 것을 깨닫고 종세사람만 데리고 남원으로 도망쳐왔다.
천리길에 발이 불어 터져 피가 흘렀고 처음에는 남원부의 서편에 있는 교룡산 밑에서 살다가 얼마 안되어 왜놈들의 난리를 피하여 비홍산에 올라 멀리 순창 구악산을 바라보고 말하기를 “산세가 참으로 아름답게 생겼다” 곧바로 순창 구미로 이사하여 살았으니 양씨의 자손들이 이때부터 대대로 살게되었다.
아들이 이미 성년이 되어 짐승을 사냥하는 일에만 좋아하고 학업에는 힘을 쓰지 아니하니 하루는 이씨가 밥도 먹지 않고 이불을 둘러쓰고 누워 있었는데 아들이 밖에서 집으로 돌아와 어머님이 누워 있은 것을 보고 어머님 어디가 아프십니까? 하고 묻기를 이씨가 말하기를 “어머니가 아파서가 아니라 내가 너의 아버지를 따라 죽지 못한 것은 오직 너하고 의지하며 살기 위하여 너에게 글을 읽으라고 명하고 절개를 지켜 살면서 너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께서 물려 준 가업을 이어가는 것이 나의 소망이였는데 이제 너의 하는일이 겨우 사냥이나 하고 있으니 앞으로 성공을 바라기가 어려우니 내가 그리하여 죽어버리려고 누워 있는 것이다”하고 말하니 아들이 느낀바 있어 그날로 즉시 사냥하던 도구를 모두 불살라 버리고 이웃에 사는 김주서에게 쫓아가 글을 배워 큰 제목의 되어 함평 현감이 되었으니 이사람이 양사보란 사람이다
이 후 자손이 대대로 지금까지 600년 이상을 살아오고 있다
이와같은 숙인 이씨의 열행을 찬양하여 조선조 세조13년 단기3800년(1467정해)에 정려를 내렸기에 비와 비각을 세웠다.
○참고: 전북 지정 문화제 자료 제 172호, 순창 주요 문화유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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