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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림 만일사 역사비 992호/ 순창군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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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곤 국사편찬사료조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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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22일(목) 16:19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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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사의 역사비는 순창군 구림면 안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만일사의 역사를 기록하여 세운비 이다 만일사 비는 순창군 회문산 끝자락에 있는 만일사 어귀에 있는데 음기에 사찰의 역사가 기록되여 있다.
비문에 의하면 만일사는 백제때 창건되여 조선의 무학대사 (1327~1405)가 중창한 후 임진왜란때 소실 되었다가 다시 중건 되었다 만일사 비는 이 같은 만일사의 유래를 담아 사찰중건 후인 1658년 (효종)이 조성 된 것으로 보인다. ‘옥천지’에 의하면 중건 이후 만일사는 요사채 2채 동암 칠성암, 선적암 등 3채의 암자가 있었다.
만일사는 빼어난 산새와 함께 많은 고승이 배출 되었다 한다. 내장사 주지 만암과 야은 등 많은 불제자를 배출한 백학명 선사가 만일사의 금화 주지로부터 법통을 이어 받았다. 또 불교의 전문 학교를 설립하고 미당 서정주의 스승이며 조선의 천제로 얄려진 석천 박한영(1870년 ~1948년) 스님도 한때 만일사에서 수도 하였다. 그리하여 사찰의 명성이 널리 알려 졌으나 일재 강점기를 겪으면서 절이 폐허가 되었다. 1954년 다시 법당을 세우기 시작하여 1998년 대웅전,일주문 요사채 각1동씩을 건립하여 도량을 갗추었다 그동안 무학대사가 만일사를 중건 하였다는 말을 전하여 왔지만 이에 대한 기록은 찾지 못했는데 만일사 비를 통해서 비로소 무학대사의 중창사실이 확인 되었다. 그리고 만일사란 명칭은 무학대사가 이성계(1336년 ~1408년)를 임금의 자리에 오르게 하기 위해 오르기전 무학대사를 만나기 위해 만일사를 찾은적이 있으며 이때에 민가에 들려 먹었던 고추장맛이 어찌나 좋던지 그 맛을 잊지 못하며 왕이 된 후에도 순창고추장을 진상 하게 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무학대사 이전에도 여러 차례 중건이 있었겠지만 기록이 없어 내력을 알수 없다. 만일사 비는 재질이 사석으로 이루어저 글자가 많이 훼손된 상태이다. 사석은 굵은모래가 풍우로 떨어져 나가기 때문에 비석의 재질로는 좋지 않는 편이다.
탁본된 뒤 판독이 가능한 글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조선국 전라도 옥천군 회문산성 만일진 고금비 만일사는 백제때 창건한 사찰로 우리 조선 태조 강현대황(이성계) 때에 이르려 무학과 나옹선사가 무너진 사찰을 중창하였다. 이후 정유 재란때 왜구들에게 분탕질을 당한후 지우원측(무심)스님 등이 오랫동안 중창의 뜻을 가지고 권선하여 사수사자들을 모아 건물을 다시 세우고 예전처럼 복원하여 더욱 빛나고 새로워 졌다.
참고 : 순창의 우수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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