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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치 우암 송시열 글씨 / 순창군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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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곤 국사편찬사료조사위원
전) 순창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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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9월 16일(수) 15:24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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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순창신문 | |
‘광수당 마룡암’ 암각서가 언제 쓰였는지에 관한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전해 오는바에 의하면 우암 송시열(1607년~1689년)의 아우 송시유가 순창군수로 재임(1672년~1675년)할 때 쓴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 순창군 쌍치면의 종곡마을에는 송시열의 제자 농암 김택상이 관수당이라는 정자를 잦고 유유자적하며 살고 있었는데 이때 송시열이 김택상을 방문하고 써준 것으로 전한다. 위치는 쌍치면 쌍계리에서 답동쪽으로 가다가 시산리쪽으로 가면 나오는 방산 삼거리에서 방산보건소가 있는데 이곳에서 정읍 방향으로 직진하면 1km지점 우측에 부안 김씨의 선산 입구와 제실인 관수제가 나온다.
‘관수당 마룡암’ 입각서는 관수제 뒷면 큰 바위에 세겨져 있다. 부안 김씨 선산 야산에 여러개의 바위가 있는데 높이2m 지름4m 정도의 큰바위 전면에 글씨를 세겨 놓았다. 글씨를 세긴 부분은 지상에서 150cm부근이며 글씨의 크기는 세로 50cm 가로 240cm정도의 대자에 속한다. 마모는 되었지만 각자의 깊이가 깊어 윤곽이 뚜렷하다. 비교적 정교하게 세긴 탓에 지금도 필액의 강약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관수당 마룡암’이라고 행서로 세겨져 있으며 우암서라고 되어 있어 우암 송시열의 글씨임을 알수 있다. 송시열의 글씨에 이어서 부안김씨 새천이라고 해서로 세긴 글씨가 있는데 이는 다른 사람의 글씨이다.
관수당 마룡암 입각서는 송시열의 글씨중에서도 대표적으로 꼽을 만큼 활달하고 기백이 있는 후기의 필치가 그대로 표현되여 있다. 현재 관수당 마룡암 입각서의 소유자 및 관리자는 부안 김씨 종중이다. 글씨를 새긴 바위가 야외에 노출되여 있고 석질이 비교적 단단하지 못하여 비와 바람에 무방비 상태여서 점점마모가 심해지고 있다 듬성듬성 이끼와 잡초가 덮혀 있다.
조선시대 서예사의 중요한 시기로 평가하는 양송체의 한사람인 우암 송시열의 입각서가 현재까지 온전하게 전하는 예는 우리나라에 많지 않다. 또한 송시열의 연고지도 아닌 순창군 쌍치면에 이러한 금석문이 존재 한다는 것이 그가치를 더한다.
더군다나 송시열이 직접 방문하여 현장에 글씨를 세겼기 때문에 이는 단순히 모각하거나 번각한 양각서에 비길수 없는 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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