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개요
설신은 비교적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다.순창군지 문과 편에 보면 추밀원사를 지내고 순화백에 봉작되었다고 짤막하게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그러나 고려사와 고려사절요, 동사강목, 묘지명 등에 나타난 설신의 활약상은 매우 구국적이고 애국적이며 정치, 외교, 학문, 전략가로서, 몽고 내정 간섭 기에 커다란 공을 세운 사실이 묘지석이 발견됨으로써 알려졌고, 더불어 사학자들의 연구대상 논문이 속속 발표되고 있으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2004년 가을 나는 '전라도 사람들'이란 1200쪽짜리 책 두 권을 접하게 되었다. 저자 김정수(金正洙)씨는 47년간 교육계에 몸담고 광주 금호 고등학교 교장을 마지막으로 정년 퇴임한 후 이 책을 썼다 한다. 저자는 책 머리에서 도대체 전라도에서 어떤 사람들이 나와서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살펴보면, 지금까지 전라도에 꼬리표처럼 붙어 다니던 여러 편견이나 고정관념들의 정체가 밝혀질 것이고 결국 이 의문을 푸는 길은 이 지역 출신 인물들을 면밀히 탐구하는데 있다는 생각이 들어 고려시대를 움직인 호남출신 96명의 업적을 정사와 공가 문헌을 통해 파헤쳤다 한다. 그 중 2권 383~388쪽에 실린 설신의 기록을 대략 싣는다.
2.무신정권하의 명망 높은 문관
설신은 무신 최충헌의 집권기에 두각을 나타낸 문신으로서 다행이 묘지석이 남아있어 그 가계나 그의 생애에 관해 비교적 소상히 알 수 있다.
설신의 아버지 설선필(薛宣弼)은 검교 군기감(軍器監, 정3품, 현 병기제조 사령관)이었으며 조부 정숙(挺淑)은 국자감 사문박사(國子監 四門博士, 정8품, 현 국립대교수)였다. 증조부 자승(子升)은 순창군 사호(司戶, 호장 밑의 관리, 품계는 정5품, 현 군수)를 지냈으며 어머니 순창 조(趙)씨는 순창군 사호 조숭영(趙崇穎)의 딸이다. 고려사열전의 기록에 의하면 설신의 어머니 조씨는 유방이 4개였는데 8형제를 낳아 잘 길렀으며, 그 중 3형제는 과거에 급제하여 정4품 국대부인(國大夫人)에 봉(封)해졌다. 설씨 2000년사에는 쌍둥이 4번에 8형제를 낳았다고도 하며 북한에서 반입된 고려사(국립도서관 소장)에는 설신의 어머니 조씨는 젖꼭지가 4개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어쨌든 역사상 8형제 중 3형제가 나란히 고시에 합격한 예는 우리고장이 처음인 것 같다
순창 설씨 가문에서 과거를 통해 중앙의 관료로 진출한 것은 설신이 최초였다. 설신은 20세 때인 1215년 31명중 2위로 문과에 합격하여 서기 1216년 함풍현 감무(현 전남 함평군수)가 되어 선정을 베풀어 명성이 높아지자 그때의 최고 실력자인 최충헌이 그의 이재(吏才)를 인정하여 포상하고 식목도감 녹사의 벼슬자리로 올려주었다. 최충헌은 무인이었지만 정중부. 이의방등 무신 파와는 달리 문신들에 대한 회유책을 써서 우대하였다. 이후 설신은 최충헌의 지원을 받아 누차 승진하여 대관승(大官丞), 장야승(掌冶丞), 상승직장(尙乘直長), 비서랑, 추밀원 당후관, 감찰어사등을 엮임하고 1226년 가을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온뒤 1227년 예부원외랑이 되어 용주(龍州, 평안북도 용천군수)군수로 나갔다. 거기서도 민심을 얻고 치적을 올려 다시 중앙 내직으로 돌아와 병부원외랑이 되어 비어대(관복의 허리에 멘 혁대)를 포상 받았다. 고종 17년인 1230년 이부원외랑으로 옮겼다가 고종 18년 1231년, 8월 몽고 병이 침입하자 조정에서 각 도의 안렴사(按廉使, 현 도지사)들에게 관군을 거느리고 수도 개성으로 집합하라는 출동 명령이 내려졌는데 전라도 안렴사 한윤혁(韓允奕)이 연약하여 군을 지휘할 수 없으므로 당시 조정공론은 설신을 대신케 하여 부월과 자금대를 하사 받게 하였으며 설신은 통군을 잘하여 왕의 칭찬을 받았다.
<순창향교 전교 강병문>
<다음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