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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 인생을 바꾸는 한 권의 책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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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 영 편집위원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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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2월 19일(수) 15:46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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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순창신문 | |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 레오 버스카글리아
봄이 오고 있다. 하지만 봄은 겨울과 잇닿아 있으므로 겨울을 통과하지 않고 우리는 봄을 맞이할 수 없다. 이것은 삶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바 삶에 고통이 없다면 우리는 고통 너머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기쁨을 만날 수 없다. 지구별에서의 100년을 평탄하게 무리없이 행복하다고 느끼면서 살아간다는 것이 그다지 다행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제는 조금씩 깨달아가는 중이다.
우리의 삶은 평탄하게 살기 위한 목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삶은 순간순간 깨닫고 그 깨달음을 통해 성장하고 성숙하는데 그 의미가 있다.
21세기는 매우 빠른 속도의 시대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낯선 화두가 등장하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미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의 한가운데 와 있다. 영화관에 갔다.
매점에서 물 한 병을 사려고 했더니 '키오스크'라는 시스템을 통하지 않고서는 물 한 병을 살 수 없었다. 아, 이 당혹스러운 느낌이라니. 세상이 점점 기계화되어 간다. 기계화되는 초인공지능의 세상에 적응하려면 우리 또한 발빠른 대응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는 2016년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회장인 클라우스 슈밥이 처음으로 사용한 용어다.
1차 산업혁명은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농업과 수공업 위주였던 세상이 공업화되고 기계화되면서 도시가 생기고 경제라는 개념이 도입되었다. 2차 산업혁명은 전기와 화학 중공업의 발전으로 천연자원을 활용하고 합성원료를 만들어낸다. 플라스틱이라는 괴물이 발명된 시기이기도 하다. 3차 산업혁명은 1969년 컴퓨터를 활용한 정보화사회의 도래를 말하는데 1990년대에 인터넷이 군사적 목적에서 벗어나 전세계를 본격적으로 이어주게 된다.
혁명이란 사회가 운용되던 기존의 생활양식이 엄청난 변화를 통해 질적으로 바뀔 때 사용되는 용어다. 이전까지의 관습, 제도, 생활 방식, 가치관이 붕괴되고 급격하게 새로운 시스템 속으로 유입되는 것.
3차 산업혁명을 통해 성장해오던 컴퓨터와 인터넷 환경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급격하게 바뀌길래 우리는 이제 '제4차산업혁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을까.
4차산업혁명의 2가지 큰 특징은 초지능성과 초연결성이라고 한다. 인공지능이 점점 발전하여 이제는 인간의 자리를 빼앗고 있다. 기계화되고 자동화된다. 15개국의 선진국과 관련 국가들에서 710만 개의 직업군이 사라지고 4차산업혁명과 관련된 새로운 210만 개의 직업군이 생길 것이라고 한다. 운전자도 필요없고 사무직 직원도 필요없다. 마트의 직원도 필요없어진다. 직원 없이 물건을 구입하고 인공지능을 탑재한 기계들이 손님과 대응한다. 말하자면 영화관의 키오스크도 그러한 형태인 것.
이렇게 격하게 빠른 속도로 바뀌는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뒤집어 말하자면 온통 첨단 인공지능 세상이 되어 버리면 인간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초인공지능의 세상이 온다면 우리는 어떻게 생존할 수 있을까. 초인공지능세상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필자는 아날로그다. 컴퓨터를 잘 다루지도 못하고 빠른 속도로 변하는 환경에 잘 적응하지도 못한다. 그런데 그것이 단점일까? 그래서 필자는 이 빠른 변화의 시대에 도태되는 700만 개 직업군의 한 사람이 될까?
모든 것이 자동화되고 기계화된다면 잉여의 존재가 된 인간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문제 속에는 답이 있다. 찬찬히 들여다보면 답이 보인다. 필자는 아날로그지만 아날로그이기 때문에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기계는 인간의 감성을 흉내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인간처럼 사랑하면서 살아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배우는 것은 지식의 탑을 쌓기 위해서가 아니다. 지혜를 얻기 위해서다. 기계는 아무리 지능이 높아도 지식의 탑을 쌓고 또 쌓을 수는 있지만 지혜라는 특이(한 지)점에 이를 수는 없다. 지혜란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다. 지혜란 혼자서 가는 길이 아니라 '함께' 가는 길을 선택한다. 인공지능에게는 결코 찾을 수 없는 것. '함께' 라는 단어.
필자가 오늘 선택한 책은 레오 버스카글리아의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라는 책이다. 따라가기 버거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변하는 세상이라 하더라도 결국 우리가 살아가야 할 세상이고 우리가 만들어가는 세상이다. 다시 말하자면, '내'가 살아가야 할 세상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다. 기계는 초첨단인공지능으로 문명의 최고치에 이를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코 사랑에 이르지 못한다. 21세기 첨단의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 우리는 배워야 한다. 빠른 속도로 변해가는 이 시대를 배워야 한다. 소걸음으로 걷더라도 변화에 적응해 가야 한다. 단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초지능성, 초연결성의 사회에 우리가 '함께' 걷는다면 어쩌면 이 급격한 변화는 저주가 아니라 축복일 수도 있지 않을까. 손바닥을 뒤집듯 변화에 유연하게 적응하는 우리들의 사랑. 레오 버스카글리아의 사랑은 대가족을 통해 이루어졌다. 대가족 시대에는 어른이 존재했다. 지금 우리는 진정한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다. '위기'라는 시대에 '기회'라는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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