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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밥과 카레라이스

by 야마우치 가가리

2020년 04월 08일(수) 16:01 [순창신문]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지인이 비빔밥을 사주었다.
지금이야 일본에서도 “비빈바”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비빔밥이지만, 내가 한국에 왔던 당시에는 처음 보는 낮선 음식이었다. 비빔밥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내 앞에 사뿐히 놓여졌다. 야채와 고기, 나물, 계란 등의 재료들이 색색으로 예쁘게 담겨져 나온 비빔밥은 참으로 예술적이었다.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우와”라는 감탄사가 나왔다.
그런데 다음 순간 눈앞에서 충격적인 풍경이 벌어졌다. 그 지인이 갑자기 숟가락으로 거침없이 비빔밥을 섞기, 아니 비비기 시작한 것이다. 그 앞에서 나는 비빔밥의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그분은 웃으면서 알려줬다.
“가가리씨, 비빔밥의 ‘비비다’는 그냥 막 잘 섞는다는 뜻이에요. 일본에는 ‘섞다’라는 말은 있어도 ‘비비다’라는 말 없죠? 이렇게 비벼야 제 맛이 나거든요.”
하지만 나는 왠지 내키지 않아서 결국 비비지 못하고 비빔밥을 일본식으로 먹고 말았다.
비슷한 경험이 또 있었다. 우리 집에서 카레라이스를 먹었을 때였다. 일본에서는 보통 카레라이스를 먹을 때, 밥과 카레소스의 경계선을 흐트러지지 않으려고 조심하면서 조금씩 섞어가며 먹는다. 다 먹기까지 밥과 카레소스는 분리된 상태를 유지한 채 말이다. 그런데 한국의 가족들을 보니 모두 다 카레를 힘차게 비비고 있었다. 나는 다시 한 번 놀랐다. ‘아, 카레도 그렇게 비벼서 먹는구나!’
식문화는 국민성을 나타내고 있는 것 같다. 한국 사람들 중에는 ‘일본 사람들은 양파 같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까도 까도 알 수가 없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일본에 살았던 어느 한국인 이야긴데 ‘일본 사람들은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왠지 넘어갈 수 없는 선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는 한일가정들이 많지만 고부간에도 민족성의 차이 때문에 갈등이 있다는 이야기를 잘 듣는다. 잘해주고 싶어 자꾸 다가가는 한국 시어머니와 거리를 두어야만 편한 일본 며느리 사이의 불편한 이야기들이다. 요즘은 또 일본 시어머니를 둔 한국 며느리도 있다. 어느 한국 며느리가 말했다. 일본 시어머니가 간섭을 안 해서 처음에는 좋았는데 너무 간섭을 안 해서 서운할 때가 많다. 자신의 엄마처럼 좀 간섭도 하고 귀찮게 했으면 좋겠다고. 다가가고 싶은 한국인과 선을 긋고 싶은 일본인. 어느 쪽이 좋고 나쁘다는 건 아니고 국민성인 것 같다.
일본은 세계에서 예의 바른 나라로 유명하다. 공공장소에서 규칙을 잘 지키는 일본인. 주위사람들에게 신세를 짓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을 하고 어릴 때부터 자녀에게 ‘주위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말아라.’란 교육을 한다.
그런데 한국에 와보니 그 미덕이 한국 친구들과 지내는 데 큰 방해가 되는 것 같았다. 신세를 안 지려고 하고 무의식적으로 선을 긋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서로 신세도 지고 그래야 더 가까워지는데….
내 나이를 생각해보니, 일본과 한국에서 반반씩 살았다. ‘근주자적(近朱者赤)’이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주홍을 가까이하면 붉어지는 것처럼 내 사고방식도 많이 한국식으로 변했다. 카레의 밥과 카레소스의 경계를 유지하는 것처럼, 선을 긋고 서로 신세를 지지 않고 조심스레 사는 것보다 비빔밥처럼 사람들과 부대끼며 진하게 정을 나누며 가깝게 사는 것이 오히려 편하다.
비빔밥이라면 고추장이다. 고추장의 고장인 순창의 장류축제에서 대형 비빔밥을 다 함께 섞어서 나누어 먹는 행사가 있다. 비빔밥은 한국을 잘 나타내는 음식이라는 느낌이 든다. 나는 이제는 그런 느낌이 아주 좋다. 비빔밥에는 화합이라는 단어가 잘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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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우치 가가리 편집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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