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g) "과연 이시대의 사람은 "
읍참마속(泣斬馬謖)
泣:울 읍. 斬:벨 참. 馬:말 마. 謖:일어날 속.
[나오는 책]《三國志》〈蜀志 諸葛亮專〉
뜻 = 울면서 마속을 벤다는 뜻. 곧 ① 법의 공정을 지키기 위해 사사로운 정(情)을 버림의 비유. ② 큰 목적을 위해 자기가 아끼는 사람을 가차없이 버림의 비유.
중국의 삼국시대가 막 열릴 때였다. 촉(蜀)나라 건흥(建興) 5년(제갈량(諸葛亮)은 수만의 군사를 이끌고 성도(成都)를 향해 출발했다. 곧바로 한중(漢中:섬서성 내)을 다 차지하고 기산(祁山:감숙성 내)으로 진출하여 위(魏)나라 군사까지 크게 무찔렀다.
그러자 조조(曹操)가 급히 파견한 위나라의 이름 있는 장수 사 마의[司馬懿:자는 중달(中達), 는 20만 대군으로 기산의 산야에 부채꼴[扇形]의 진을 치고 제갈량의 침 공군과 진을 치고 마주하고 전투준비를 했다. 이 '진'을 깰 제갈량의 계책(計策)은 이미 서 있었다. 그러나 상대가 지략이 뛰어난 사 마의 인만큼 군량 수송로(軍糧輸送路)의 가정(街亭:한중 동쪽)을 수비(守備)하는 것이 문제였다. 만약 가정을 잃으면 중원(中原) 진출의 웅대한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그런데 그 중책을 맡길 만한 장수가 없어 제갈량은 고민하고 있던 차에.
그때 마침 마속(馬謖)이 그 중책을 자원하고 나섰다. 그는 제갈량과 문경지교(刎頸之交)를 맺은 명참모 마량(馬良)의 동생으로, 평소 제갈량이 아끼는 재기 발랄한 장수였다. 그러나 노회(老獪)한 사마의와 대결하기에는 아직 어리다. 제갈량이 주저하자 마속은 거듭 간청(懇請)했다.
"다년간 병략(兵略)을 익혔는데 어찌 가정(땅이름) 하나 지켜 내지 못하겠는가? 만약 패하면, 저는 물론 일가 권속(一家眷屬)까지 참형을 당해도 결코 원망하지 않겠습니다."하며 맹 서 하자.
제갈량은,
"좋다. 그러나 군율(軍律)에는 두 말(二言)이 없다는 것을 명심하라."하니
마속은 대답하고.
서둘러 가정으로 들어갔다. 가정에 도착한 마속은 지형(地形)부터 살펴보니 삼면(三面)이 절벽(絶壁)으로 된 험악(險惡)한 산이 있었다. 제갈량의 명령은 그 산기슭의 도로를 사수(死守)하라는 것이었으나 마속은 적을 유인(誘引)해서 역공(力攻)할 생각으로 산 위에 진(陣)을 쳤다. 그러나 위나라 군사는 산기슭을 포위(包圍)한 채 위로 올라오지 않았다. 식수가 끊겼다. 마속은 전병력으로 포위망을 돌파(突破)하려 했으나 용장인 장합(張합)에게 참패(慘敗)하고 말았다.
전군을 한중으로 후퇴시킨 제갈량은 마속에게 중책(重責)을 맡겼던 것을 크게 후회(後悔)했다. 군율(軍律)을 어긴 그를 참형(斬刑)에 처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이듬해 5월, 마속이 처형되는 날이 왔다. 때마침 성도에서 연락관(連絡官)으로 와 있던 장완은 '마속 같은 유능(有能)한 장수를 잃는 것은 나라의 손실'이라고 설득(說得)했으나 제갈량은 듣지 않았다.
"마속은 정말 아까운 장수(將帥)요. 하지만 사사로운 정에 이끌리어 군의 법 율을 저버리는 것은 마속이 지은 죄보다 더 큰 죄가 되오. 아끼는 사람일수록 가차없이 처단(處斷)하여 대의(大義)를 바로잡지 않으면 나라의 기강(紀綱)은 무너지는 법이오."하며
마속이 형장으로 끌려가자 제갈량은 소맷자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마룻바닥에 엎드려 울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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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화궁 서당 011-671-2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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