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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과 남계 호계정의 이야기 / 순창 땅 섬진강 주변 문화와 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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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편찬사료조사위원
전) 순창문화원장 김기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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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27일(수) 17:01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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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순창신문 | |
호계정은 순창군 금과면 남계리 남계마을에 있는 정자이다. 호계는 유동유의 호이다.
그의 고조 석현 류옥은 중종조에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 전한을 지냈는데 그보다도 그는 중종왕비 정경왕후 산후에 바로 세상을 떠나자 중종의 조강지처인 신비를 다시 왕비로 복원시키자는 상소를 지금의 순창 강천산에서 당시의 순창군수 충암 김정과 남양부사 눌제, 박상과 무안현감이었던 석현 류옥이 함께 모여 소나무 위에 관인을 걸고 상소를 올렸다.
이 상소는 당시의 반정공신에 의하여 묵살 될 뿐 아니라 이들은 모두 귀양을 보냈다. 그 후 귀양에서 풀려나기는 하였지만 관계에 진출도 못하고 결국 기묘사화로 충암은 정암 조광조와 함께 죽음을 당하기도 하였다.
석현에게는 중손 뇌천 류호가 있었다. 그는 창평에서 남원 둔덕방으로 이거를 하였는데 모두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남간은 천으로 감역에 제수되었다.
이중의 호계 유동유는 지금의 금과면 호치리에 사는 경주 설씨 집으로 장가를 가서 처가를 따라 호치의 바로 옆인 남계에 터를 잡았다. 그리고 거기에 호계정을 짓고 벗들과 산수를 즐기며 수창하였다.
이 정자는 1640년에 창건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그 후 언제 헐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창건 후 100여년이 지나서 헐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의 정자는 1929년 중건하였는데 호계 정기는 류한상이 지었고 호계 원문은 주인 효계 류동우가 지은 시와 그의 두 형인 이목 유동순과 남간 유동연의 시와 순창군수를 지냈고 당시 유학자로 이름이 높았던 남원의 폄재 최온의 시가 걸려있다.
그 중에서 폄재 최온의 시를 여기에 적어본다.
산뜻한 시냇가 정자의 경치는 아름다운데
시와 술로 뽑나니 정이 한가롭게 넘치네
소나무 이웃에는 철죽이 봄내 피어 있고
연못에 빛나는 붉은 꽃은 백일이 지났네
이슬 맺은 매화와 향기로운 국화는
한맛을 주고 대나무 바람과 아름다운 꽃들은
진실로 실다운 곳에 있네
이 정자는 일제하에 망국의 슬픔을 가슴에 안은 선비들이 모여서 시를 수창하였던 정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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