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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흥 구암사 월인석보 / 순창 땅 섬진강 주변 문화와 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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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편찬사료조사위원
전) 순창문화원장 김기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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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20일(수) 15:55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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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순창신문 | |
소나무 숲속에 쌓인 아름다운 구암사에서 소장했던 보물 725-10호를 우리는 알지 못하고 오늘에 이르렀다.
중요한 보물 ‘월인석보’는 초간본 중 제 15권이 있어 학문적 가치와 전통적 가치를 더해준다. 월인석보는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의’ 합편으로 머리에서 머리글자를 따다가 붙인 이름이다.
‘월인천강지곡’은 달이 천개의 강을 비춘다는 곧 석가여래의 중쟁 교화를 노래한 책이며 ‘석보상절’은 석가여래의 일대기를 노래로 엮은 책이다.
원래 석보상절은 훈민정음 창제 이후 세조가 대군시절에 부왕(세종)의 병으로 자신의 어머니인 소현황후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불서를 바탕으로 하여 우리말로 역편한 책이며 세종은 이 ‘석보상절’의 각 절에 찬가를 붙이고 ‘월인천강지곡’이라 하였다. 이 두 책은 뒷날 한권의 책으로 모아지게 되며 이 책이 바로 ‘월인석보’이다.
세조가 왕에 오른 후 서기 1457년에 왕세자 도원대군이 죽자 그는 이를 심히 애통해하며 부왕인 세종 모후인 소현황후 왕세자 도원대군의 명복을 빌기 위해 근 2년에 걸쳐 11명의 학자들을 시켜 월인석보를 수정 증보케 하여 간행하였다.
월인석보는 첫머리에 훈민정음 언해를 싣고 있으며 훈민정음 창제 이후 최초의 불경어체로써 당시의 글자와 말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그래서 불교학, 서지학, 국어학 등에서 귀중한 자료로 인정받고 있다.
구암사의 월인석보는 초간본 총 25권 중에서 제 15권이며 서기 1989년 7월 경남의 가야대학에서 발견된 제 19호를 시작으로 2000년 12월 현재까지 총 15권이 발견되었다.
서책을 정리하던 주지 지공스님에 의해 발견된 월인석보 15권은 총 87장의 분량으로 가로 22cm 세로 33cm 크기에 면이 섞인 종이로 만들어졌다. 상태는 낙장이나 훼손된 부분이 없이 전체적으로 양호한 편이다.
임진왜란과 6.25 동란의 화제에서 귀중한 책이 남는 것은 기적이라 하겠다.
서기 2000년 5월 11일 발견되어 ‘문화제청 국립문화제연구소’의 고증을 받아 보물 745-10호로 지정되었다. 종파의 범손이 계승한 큰 사찰이 당시는 전국구 지어 사찰로 각처에서 운집한 승려가 1천여 명에 이르렀다.
현종 때는 아직 청년이었던 노사 기성진 선생과 백파스님 그리고 추사 김정희선생이 교유하며 친교를 맺었고 근대 불교지도자 박한영스님이 이곳에서 지내셨다.
불교에 심취했던 만해 한용운, 춘원 이광수, 신석정, 조지훈, 서정주 등 우리나라 현대문학의 선구자들이 이곳 구암사에서 수학하기로 하였다.
섬진강 상류 제일 끝머리에 이러한 대사찰이 있으니 꼭 목탁소리 들으며 고요 속에 구암사에서 하루 보내시길 권장해봅니다.
참고 : 섬진강 칠십리 문화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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