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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운동 100주년 맞아 영광정에서 일본인이 한국민에게 올리는 참회문 낭독

장 교 철
옥천향토사회문화연구소

2019년 02월 28일(목) 15:30 [순창신문]

 

ⓒ 순창신문



일본의 식민지배를 반대하는 항일독립 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나자 일본은 군대와 경찰을 통해 잔인하게 진압하였고 이렇게 독립운동을 하시다가 순국하신 수천수만의 영령들이 계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제 식민지배로 고통을 당하신 모든 한국 국민과 특히 순창지역에서도 피해와 고통을 당하신 모든 분들에게 머리 숙여 사죄를 올립니다. (중략)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일본 선조들이 식민지배를 통해 한민족에게 저질렀던 모든 죄악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드리며 참회문을 가름하고자 합니다.

(순창가정교회 가타히라 치에미 올림)
참회문 일부


지난 2월 24일 쌍치면 영광정에서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순창가정교회(목사 김홍주)가 주최하고 순창종교인연합회 주관해 대한민국 만세 삼창을 재현했다. 이날 만세삼창에 앞서 가타히라 치에미씨가 일본인으로 일제 식민지배로 고통을 받은 한국민에게 사죄를 올리는 참회문을 낭독했다.
오는 3월 1일은 1919년 3.1운동 100주년을 맞는다. 순창인의 한사람으로 순창의 3.1운동사를 정리해봤다.
1919년 3·1 운동 이후 전국 각지에서는 청년 단체들이 연이어 결성되었다. 독립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실력 양성과 문화 향상이 필요하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1919년부터 1920년대 말까지 순창에서도 청년 단체가 만들어졌다. 순창 청년회(淳昌靑年會), 천도교 청년회 순창 지회(天道敎靑年會淳昌支會), 동계 청년회(東溪靑年會), 여명 구락부(黎明俱樂部), 순창 형평 청년회(淳昌衡平靑年會), 순창 청년 동맹(淳昌靑年同盟), 순창 기독 면려 청년회(淳昌基督勉勵靑年會), 순창 청년 동맹 유등 지부(淳昌靑年同盟柳等支部), 순창 청년 동맹 인계 지부(淳昌靑年同盟仁溪支部), 순창 청년 동맹 금과 지부(淳昌靑年同盟金果支部)가 있었다.
동학이 분파되기 이전에 순창지역에 1,500여명의 동학교도가 있었다. 동학에서 분파한 천도교 순창지회가 순창군의 3.1운동을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듯싶다. 동학사상과 운동이 천도교로 재건 강화되었고, 그 신념의 인물들이 기미 독립운동에 대거 참여하여 주도세력을 형성하였다.
우치홍은 동학혁명 당시 간부로 활동했던 우동원의 둘째 아들이다. 3.1운동 전라북도 선전책임자로 1919년 3월 7일 천도교 총부(總部)에서 이동훈에게 독립선언서 2백장과 ≪독립신문≫ 1백 50장을 받아 3월 8일 극비리에 천도교 전주교구에 전달하였다. 천도교 전주교구에 전달한 후 밤을 새워가며 금산(金山)·무주(茂朱)·진안(鎭安)·임실(任實) 등 군의 각지를 역방하면서 천도교구에 본선언문을 전달하였다.
순창으로 들어오던 중 인계면(仁溪面) 쌍암리(雙岩里) 거릿집에서 미행하여 온 헌병에게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게 되었다. 이후 김구(金九) 선생을 따라 북경을 거쳐 상해임시정부 일원으로 종사하였으며, 1927년에는 귀국하여 6.10만세 운동에 가담하는 등 계속 항일운동을 하였다.
1919년 3월 20일 순창읍 금산에서 독립 만세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애국 청년 박동진(朴東鎭)은 3월 15일 밤에 ‘조선독립국만세(朝鮮獨立國萬歲)’‘조선독립국 독립만세(朝鮮獨立國 獨立萬歲) 등의 문구를 종이에 크게 써서 3월 17일 새벽 순창군청, 순창 헌병분견소, 순창학교조합 앞 게시판 등에 붙여 항일운동의 전개를 선포하였다. 20일 밤이 되어 천도교인들을 중심으로 한 군민 200여명이 비밀로 연락하여 순창읍 뒷산에 모였다. 그리고 준비했던 태극기를 높이 세우고, 횃불을 들어 기세를 올리며 일제히 만세를 불렀다. 야간의 정적을 깨트리는 감격적인 환호성이었다.

ⓒ 순창신문



1919년 4월 11일(음력 3월 11일) 순창시장 게시판에 “독립 만만세! 금 11일 독립만세를 부를 것이니 모두 모이라. 만약 헌병이 출동할 때에는 모두 죽여라!”는 격문이 붙었다.
이야말로 적의 신경을 곤두세우는 내용이었다. 적측에서는 곧 남원헌병분대의 응원을 얻어 엄중 경비하여 일을 미연에 방지하려고 하였다. 뿐만 아니라, 적측은 이러한 격문과 심상치 않은 군민들의 동향에 겁내어, 4월초에 일본으로부터 증파되어 보병대의 일부를 순창읍에 배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독립을 열망하는 민중들의 움직임은 계속되었다.
“4월 26일 순창 장날에 순창군민은 20세부터 50세까지 전부 집합하여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까지 독립만세를 부르자” 며 전날 순창면사무소 게시판과 도로변에 붙였다. 군민들에게 독립운동에 궐기(蹶起)할 것을 격려하는 내용이었다.
“만일 만세를 부르다 죽는다면 금후 오등(吾等) 외에 독립을 계획하는 사람이 1만 명은 된다.
열심히 그리고 안심하고 독립만세를 부르자. 만세, 독립만세! 대정 8년 4월 26일은 독립만세를 부르자.”
또한 적측의 폭력에 대한 우리의 독립항쟁 역량을 과시하는 내용도 있었다.
“조선인을 죽이려면 죽여라. 독립만세를 부르는 사람은 51명이지만 이것을 죽이면 그 대신 1백 65명이 있으니 51명을 죽이더라도 지장 없다. 또 오등이 없더라도 끝내는 독립을 계획하는 사람이 5천만인이 된다. 죽이려면 죽여 보아라!.”
그러나 여기에 따르는 적 헌병대 등의 경비는 더욱 삼엄하였기 때문에 장날 거사계획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순창군 만세운동과 관련해 순창읍 정홍모 청년은 남원(南原) 공립 보통학교에 부훈도로 있으면서 시민과 생도들에게 틈 있는 대로 독립운동을 격려하였으며, 아동들에게 독립정신을 고취하는 노래를 전파하다가 끝내는 적측에 발각되어 옥고를 치르게 되었다.
문명근은 순창군수에게 “관리는 이번에 동맹하여 관직에서 물러나 조선독립을 위해 운동을 해야 한다”는 문서를 보내 옥고를 치렀다. 또 천도교 순창지부 위원장을 역임한 최규섭(崔圭燮)은 3.1운동에 참가했으나 행적을 알 수 없다.
우치홍(禹致洪)은 순창읍 출신으로서 당시 서울의 보성고등보통학교 재학 중이었기 때문에 3월 1일에 이미 탑동 공원 3·1선언식에 참가해 만세를 부르다가 퇴학을 당하고 계속 독립운동을 하였다.
독립유공자 건국훈장은 대한민국장>대통령장>독립장>애국장>애족장 順으로 되어 있는데 대다수가 애국, 애족장이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한말전북의병사‘에 의하면 순창군에서는 독립장을 받은 인물은 가인 김병로 선생을 비롯 8분이나 된다.
’한말전북의병사‘ 자료에 의하면 순창 출신으로 의병활동을 했던 인물은 258명이다. 이중 서훈이 추서된 의병장은 73명이며 신보현의진, 유종여의진의 의병장을 비롯 나머지 참가자는 아직까지 추서되지 않았다.
오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순창군 쌍치면 출신 송광춘(宋光春 1897~ )의사가 3.1운동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는다. 이는 정재상 경남독립운동연구소장이 국가기록원에서 광주 3.1만세운동 참여자를 발굴해 서훈 신청한 결과다. 정재상 소장은 “뒤늦은 서훈이지만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이다”며 이분들의 민족애와 위국헌신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2016년 4월 16일자 서울신문 기사에 갱정유도 도조 강대성은 “기미년 독립 만세 동 당시 태극기 300장을 직접 만들어 순창 시장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만세 운동에 참여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 순창신문



순창군에서 해마다 영광정에서 8인의사 추모제를 올리고 있다
2019년, 3·1 운동 100주년을 맞아 다행스럽게도 우리 순창군에서도 오는 3월 1일 10시 향토회관에서 순국선열과 애국지사의 정신을 계승하고 그 명예를 선양하고자 100주년 기념 3.1절 행사를 준비한다는 소식은 반가운 일이다. 이어서 11시에는 쌍치면 영광정에서 ‘8인 의사 추모제’가 열릴 예정이다.
영광정은 독립운동가 김원중 선생을 비롯해 이 지역 출신 이항노, 김정중, 설문호, 이봉운, 안종수, 송극빈, 김요명 선생 등 8인의 애국동지들이 1910년 한일병탄이 이뤄지자 미친 사람 행세를 하면서 독립군 자금 모금과 항일투쟁 활동을 전개했던 장소다.
순창군은 이곳에서 해마다 애국지사를 기리고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되새기고자 8인 의사 추모제 행사를 개최하고, 순창군 주요 도로변에 태극기를 게양하고 있다. 빼앗긴 조국에 대한 항일 투쟁으로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선열들의 고귀한 정신을 다시 새겨볼 때다.

ⓒ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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