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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치좋은 어은정 이야기 / 순창 땅 섬진강 주변 문화와 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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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편찬사료조사위원
전) 순창문화원장 김기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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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6월 20일(목) 11:05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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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순창신문 | |
적성면 평남리에 위치한 어은정은 양사형이 1567년에 구미에서 이곳으로 분가하여 살면서 영하정을 지었는데 그 후 후손들에 의해 그 이름이 어은정이라 바뀌었다.
양사형은 남원양씨로 이곳 구미리에 처음 살기 시작한 위 양사보의 6대 후손으로 태어난 것이다. 어려서부터 영특하여 주위의 시선을 모았던 그는 형인 양사민의 가르침을 받다가 자라면서 옥계 노진과 미암 유희춘의 문하에서 배웠다.
그러다가 1579년(선조12)에 생원과에 합격하였고 1588년 문과에 급제하여 그로부터 관계에 나아갔다.
그런데 그로부터 얼마 후인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곳곳의 의병이 일어나 왜적과 싸우는데 어찌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있겠느냐며 재봉 고경명의 의병대에 참여하였다. 곳곳에서 일어선 의병 6,7천여명을 결속하여 왜적과의 싸움에 나선 고경명을 찾은 양사형은 미능제 최상중, 금헌 이대윤 삼종동생인 모정 양희적 등과 함께 군량을 모으는 모량유사의 책임을 맡고 활동하여 공을 세우는 한편 선조의 봉진시에는 의주까지 선조를 모시고 따라가기도 하였다.
그 후 1597년(선조30)에 다시 왜적이 침입하는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그는 도탄 변사정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퇴각하는 적을 추격하여 섬멸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이로써 난 후에 조정에서는 그에게 호성 이등공신에 녹하고 승정원 도승지를 증하였다. 양사형은 관직으로 군자감 직장, 병조좌랑, 정량 경기도사, 남평현감, 영광군수, 3도도체찰사, 종사관 등을 역임하였으며 1599년(선조32)에 53세를 일기로 타게 하였다.
그리고 그 후 영조조에 화산 서원에 배양되었다. 그분의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하여 후손들이 경치 좋은 곳에 어은정을 지어 추모하고 있다.
1990년에 문화제자료 제 132호로 지정되었으며 1991년 기와갈이와 일부 목제부문을 보수하여 남원 양씨 종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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