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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촌 배 나루터와 임진난 설화 / 순창 땅 섬진강 주변 문화와 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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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편찬사료조사위원
전) 순창문화원장 김기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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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5월 30일(목) 15:55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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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순창신문 | |
섬진강 마지막 항포구
순창군 적성면 원촌리 나루터는 삼한시절 마한의 54개국 백제 때는 락평현, 고려초기에는 적성현이 집무하던 곳.
임진왜란 때 일본사람들이 한반도 상륙작전을 하려고 여러 곳을 살펴보던 중 부산과 섬진강을 발견하고 왜군이 침입하여 원균, 조경란 장군이 정유 8월 56,800명과 전투를 하다 정유년 8월 16일 남원성이 함락되었고 아군 만 여명이 사망하였다.
왜군들이 섬진강을 발견하고 적성나루터에 정착하여 남원성을 진격, 함락시키고 어른과 어린아이 411명의 코를 베었다.
일본 풍국신사에는 지금도 기록이 남아있다. 아군 1차 방어선을 화산과 책여산 사이가 협곡을 이루고 있고 적성강이 있기에 여러 날 이곳에서 전투를 벌였다.
정유재란과 순창의 수난은 이루 말할 수가 없는 악몽이었다. 아군은 남원성이 무너지고 적성강 전투에서 패배하여 일부 의병은 동계 감밭으로 일부는 적성을 거쳐 순창읍으로 후퇴하고 있을 때 무관출신 순창군 모 군수는 무과 출신 당상관에 있던 자로 순창 군청을 지키고 순창 전체를 사수하여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주하였다.
일본 사람들은 순창, 동계, 적성, 유등, 남원 등지에서 군량미를 보충하기 위한 식량을 약탈하여 순창 등지에 있는 백성들은 많은 고초를 겪고 많은 고생을 감내해야 했다.
왜군들은 적성 동계 주변에 있는 크고 좋은 느티나무를 닥치는대로 베어 전쟁에 쓸 배를 만든다고 주민들을 동원하여 적성나루터에서 배에 싣고 남쪽으로 내려갔다.
섬진강 따라 남해로 흘러갔다. 곡식 등도 수탈하여 섬진강 적성포구를 이용하여 실어 나갔다.
적성포구는 물살이 쌔지 않았고 잔잔해서 물건을 실고 운반하는데에 최적지이기에 왜군들은 섬진강 원촌포구를 많이 이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는 적성강을 가로막아 원촌교가 놓여 교통이 원활하게 되어 옛 자취는 찾을 길이 없다.
참고자료: 순창 땅 섬진강 칠십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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