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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한을 달랜 정금대 / 순창 땅 섬진강 주변 문화와 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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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편찬사료조사위원
전) 순창문화원장 김기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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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5월 16일(목) 16:12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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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등면 건곡리 마을 뒤 정자나무 등을 정금대라고 하는 것은 이곳에 거문고를 지고 올라와 거문고를 타면서 망국의 한을 달랬기 때문이다.
옛날 절의를 지키다가 한줌의 흙으로 돌아갔건만 그 이름은 영원히 정금대라는 이름과 함께 남아있다. 그의 주인공은 옥천조씨, 서운관부정을 지냈던 조영으로 옥천부원군 조원길의 아들이다.
고려의 사직이 무너지고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였을때에 충신은 불사이군이라하여 두문동에 들어가 모든 것을 거부하고 생을 마친 72현 이외에도 불사이군의 절의를 지켰던 선비들이 많았다.
“조영”도 그 중의 한분으로 아버지를 따라 순창으로 내려와 유등면 건곡리에서 은거하였는데, 태종은 조영의 사람됨을 알고 이조판서의 높은 벼슬을 주어 불렀으나 불응하고 정금대에 올라 북쪽하늘 송경(개성)을 바라보며 거문고를 뜯으면서 망국의 한을 달래고 망국의 시를 노래하곤 하였다.
그의 시를 살펴보면
백운지아심
청산여고인
욕설망국한
운산묵사돈
흰 구름은 내 마음 알리라
청산은 옛사람과 같은데
임 잃은 이내 설움
말해서 무엇하랴
예나 지금이나 살기위한 명분아래 아침에는 이곳이요 저녁에는 저곳으로 아첨하여 살아가는 인심인데 옛사람들은 일편단심 변함없었으니 그 얼마나 훌륭한 초인간적 소신이겠는가?
이와 같은 조영은 끝내 이곳 정금대에서 생을 마감했고 옥천조씨는 조선조에서 불복신으로 등용되지 않는 설움을 겪었다.
더욱이 이와 같이 절의를 지킨 분의 분묘마저 실전하여 행화를 받지 못하니 세상은 어딘가 불안정성이 아닌가 싶다.
현 건곡리 마을 한복판에 어느 분의 분묘가 있었는데 모든 석물은 앞 수평논에 뭍혔다는 설이 있다.
과연 누구의 묘인지 몰라도 바른 일을 한 선현들이 영원히 추앙받는 사회가 되어야 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선보다 악이 앞서는 것처럼 생각되어 가슴 아프다.
참고자료: 순창 땅 섬진강 칠십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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