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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목 술동이바위와 낚시바위를 찾아서

2018년 08월 30일(목) 11:58 [순창신문]

 

ⓒ 순창신문



연일 35도를 오르락 내리락 폭염이 지칠 줄 모르고 이어지는 8월 20일, 동계면 장군목을 찾았다. 육모정을 중심으로 술동이바위, 낚시바위 등 동계면 구미리를 중심으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의 현장을 둘러보기 위함에서다.
주변 이야기 거리가 많았다. 먼저 구암 양배와 양돈형제의 종호바위, 구미마을 칠성바위를 확인하고 싶었다. 장군목 육로암에 주차를 하고 구암 양배와 양돈 형제의 형제바위를 올랐다. 조대바위를 찾으니 낚시가 하고 싶어졌다. 그 옆에 있는 와준(술동이 바위)를 보니 막걸리 한 사발 생각이 가득해진다. 이어 종호바위에 앉으니 시 한 수 읊고 싶어졌다. 이곳 바위들은 하나같이 뭔가를 하고 싶게 만드는 끌림이 있다. 장군목에 들리는 사람이라면 이곳 바위들에 얽혀있는 이야기를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도 상당부분 흥미 있을 것으로 보인다.구미리에 들어서 앉아 있는 바위를 중심으로 주변에 서려있는 전설, 설화를 들여다본다.

▶양배·양돈 사촌 형제와 호랑이 전설

ⓒ 순창신문



동계면 무량산 밑에 위치한 구미리에 구암 양배와 매당 양돈 사촌 형제가 살았다. 양배는 연산군 때 무오사화(戊午士禍)와 갑자사화(甲子士禍)로 젊은 선비들이 화를 입는 것을 보고 벼슬에 환멸을 느껴 평생 자연을 벗 삼아 살았다. 양돈 역시 종형 양배와 뜻을 같이하고 자연에서 유유자적의 삶을 살고자 했다. 사람들은 이들을 양처사 형제라 칭하고, 양처사 형제가 의좋게 앉아 낚싯대를 드리우거나 음풍농월하던 바위를 형제 바위라고 했다.
바위에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하루는 형제가 형제 바위에서 낚시를 하다가 해가 저물었는데 갑자기 호랑이 두 마리가 나타났다. 호랑이들은 형제를 각각 등에 태우고 달려 형제의 집 앞에 내려 주고 사라졌다. 이후에도 날이 어두워지면 두 호랑이가 나타나 형제를 호위해 주었으며, 구미리 일대는 깊은 산중임에도 호환(虎患)이 전무하였다.
이는 지극한 효성, 일부종사(一夫從事)의 절개, 화목한 우애 등 인륜의 미덕은 인간뿐 아니라 미물도 감동시킨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하는 이야기로 당시 구미리 마을 사람들의 ‘벽사(辟邪)’ 의식을 보여 준다. (참고문헌 : 양상화 편, 『순창의 구전 설화』하 순창 문화원, 2003)”고 기록되어 있다.


▶종호바위 위에 술을 부어 놓고 마신 참봉 양운거

ⓒ 순창신문



동계면 구미리 가암산 동쪽 적성강변에는 종호라는 널찍한 반석이 있다. 참봉 양운거가 이 바위 위에 정자를 짓고 벗들과 술을 나누며 시를 주고받았다. 돌아가며 한 수씩 시를 읊으며 술을 마시는데, 술 주전자가 너무 작아 거듭 술을 채워야 하니 번거롭게 여겼다. 이에 양운거가 묘안을 내어 바위를 파서 술 항아리를 만들었다. 조그마한 술 주전자 대신 바위 항아리에 술을 가득 채우고, 그 위에 잔을 띄워 놓았다. 여기에 시객들이 둘러 앉아 목이 마르면 술로 목을 축여가며 시를 수창(酬唱)하였다. 양운거는 바위에 종호라 새기고, 정자의 이름을 종호정이라 지었다. 지금도 바위에는 절구통만한 구멍이 파여 있다.

ⓒ 순창신문


강 건너편에는 석문(石門)이란 두글자가 암각되어 있는데, 이곳에서 흉년이 들때마다 이웃을 도와주었다고 전해진다.
실록에 의하면 양운거는 호남 일대에 큰 흉년이 닥쳤을 때,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재산을 모아 굶주린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는 적선사실이 실록(顯宗實錄)에 올라있다. 
양운거는 시문과 풍류를 좋아하는 정서적인 인물이었을 뿐만 아니라, 부당한 강압에는 굴하지 않는 당당하고 곧은 성품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나라를 위해 특별히 세운 공적은 없으나 많은 재산을 가지고 백성을 구휼하고 적선(積善)하였기에 ‘소봉(素封)’이라는 칭호로 불렸다.
바위를 파서 종 모양으로 만든 술 구멍을 뜻하는 종호의 이름 유래담이다.
(참고문헌 : 양상화 편, 『순창의 구전 설화』하 순창 문화원, 2003)


▶구암정(龜巖亭)

ⓒ 순창신문



구암정(龜巖亭)이 있는 만수탄(萬壽灘) 천변은 순창 출신의 덕망 높은 선비인 양배(楊培)가 소요(逍遙)하던 곳이다. 양배의 자는 이후(而厚), 호는 구암(龜岩)으로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戊午士禍)와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甲子士禍)로 무고한 사람들이 억울하게 화를 당하는 것을 보고, 순창의 강호(江湖)에 낙향하여 아우 양돈(楊墩)과 함께 만수탄에서 고기를 낚으면서 세상 시름을 잊고자 하였다. 지금까지도 적성강(赤城江) 상류 만수탄에는 양배와 양돈 형제가 고기를 낚던 바위가 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이 바위를 일러 배암(培巖) 또는 돈암(墩巖)이라 부르며, 이 둘을 합쳐서는 형제암(兄弟巖)이라고 한다.
구암정의 정확한 창건 시기는 알 수 없으나 16세기 초로 짐작하고 있다. 양배가 세상을 떠난 후 사림(士林)에서는 지계 서원(芝溪書院)을 건립하여 배향해 왔으나, 1868년(고종 5) 서원 철폐령에 의해 서원이 철거되자 이를 안타까워한 후손들이 양배의 덕망을 흠모하고 그의 뜻을 기리기 위하여 1901년 구암정이 원래 있던 자리에 정자를 중건(重建)하여 현재까지 보존해 오고 있다.
구암정 일대의 아름다운 주변 경관을 서술한 「구암정기(龜巖亭記)」을 보면, 맑은 만수탄의 물 흐름에 주변의 특출한 세 봉우리가 감지된다. 이러한 경치를 정면으로 굽어볼 수 있는 곳에 구암정 터를 잡았기 때문에 경치가 매우 뛰어나다. 예전에는 정자 둘레에 수십 그루의 오동나무가 있었다고 전하나, 현재는 배롱나무가 오랜세월을 지켜왔고 지난 달 부터서는 섬진강 자전거 길 따라 심어지고 있다. 구암정은 전라북도 문화재 자료 제131호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 순창의 문화재 순창 문화원, 2018)


▶구미리(龜尾里) 칠성(七星) 바위
구미리의 칠성바위는 귀미리에 거주하는 주민 가운데 과거시험을 앞둔 가족들이 찾아가 합격을기원하는 의례를 거행하는 곳이었다. 도교에서 북두칠성은 과거급제를 관장하는 문창제군(文昌帝君)으로 조선시대 과거를 응시하는 유생들이 적극 선호하였으며, 선비계층에도 널리 알려진 문형(文衡)의 신이었다. 도교신앙에서 문창제군을 봉안하여 소원을 비는 신앙은 조선시대에 민간신앙에 정착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신경호 기자 skh0550@hanmail.net

신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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