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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흥면 동산 당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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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문화원장 김 기 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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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6월 14일(수) 14:13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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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 당산제는 매년 음력 정월 열 나흗날 밤 자시(子時)에 마을의 수호신인 당산 할머니와 성황신께 마을 사람들의 무병과 풍년을 빌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이를 그냥 ‘당산제’라고도 한다. 동산 당산제는 본래 총 세 군데의 당산에서 제를 모셨지만, 일제 강점기에 마을 입구에 있었던 당산나무가 베어지고 난 뒤부터 현재와 같이 두 곳에서만 제를 모시고 있다.
당산제를 모실 때는 조탑[성황지신(城隍之神)] 앞에서 풍물[굿물]을 치면서 시작하여 마을 가운데 있는 당산나무[당산 할머니]로 성황신을 모셔 들여와 한꺼번에 제사를 지낸다. 동산리 당산제는 복흥면 일대에서 가장 성대하게 지내기에, 제의 당일이 되면 군수나 면장 등이 와서 제관으로 참여하는 등 아직도 활발히 제를 모시고 있다
동산 당산제의 역사는 문헌 기록이 없어 확실하지는 않지만, 주민들은 마을의 역사와 같이 할 정도로 오래되었다고 믿고 있다. 동산 마을의 성촌 역사는 2013년을 기준으로 약 600여 년으로 알려져 있다. 본래 명칭은 ‘구시울 마을’이었으며, 이후 ‘구술 마을’로, 일제 강점기에는 ‘조동’으로 불렸다. 현재 동산리 동산 당산제의 축문에는 마을 명칭을 ‘구술 마을’로 표기해 놓았는데, 이는 당산제를 모시는 것 자체가 옛것을 지킨다는 의미가 강하기 때문에 일부러 과거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동산 당산제도 한때 단절되었는데, 6·25 전쟁 직후와 새마을 운동 당시에 미신 타파의 분위기로 인하여 잠시 중단되었다. 당산제를 모시지 않던 동안 마을에 교통사고가 자주 나는 등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하자, 1980년대에 마을 회의를 통하여 당산제를 지내기로 결정하였다. 마을 제사를 다시 모시자 교통사고는 일어나지 않았고, 마을 노인들도 아픈 사람이 적어졌다고 한다.
당산제 일주일 전에 마을 회의를 통해 제물을 장만할 화주와, 제사를 진행할 제관과 축관을 선정한다. 화주와 제관 모두 부정이 없는 깨끗한 사람을 뽑는데, 요즘은 마을에 초상날 일도 별로 없고, 다들 노인네들만 있는 터라 애기 낳을 일도 없어서 누가 화주나 제관이 되어도 별 상관하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그해 삼재가 들었다거나 운세가 좋지 않을 경우에는 제사에 참여하지 않는다. 특히 화주는 매번 흐르는 물에 몸을 씻고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하기를 꺼려해서 몇 년 전부터는 한 집에서 계속 화주를 맡아서 하고 있는 형편이다.
동산 당산제는 과거부터 매우 성대하게 모셔져 왔으며, 현재까지도 면장이 당산제 제관으로 참여하는 등 활발히 현행되고 있다.
*참고문헌 : 한국의 마을신앙(국립민속박물관 2007)
디지털순창문화대전(순창군.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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