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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덕 청계 밀양박씨 정려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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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문화원장 김 기 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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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4월 05일(수) 14:22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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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무(1897-1906) 9년 을사(1905)의 여름 4월에 호남유생 이승헌등이 예조에 올린 글에 이르기를 순창군 효자 증·판서 박경원은 옛 명신 고직당 영철의 후손이다. 효성이 지극하여 오직 어려서부터 범아와 달라 효의 활동을 잠시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나물 캐고, 낚시하여 맛있는 음식이 떨어짐이 없게 하였고, 비록 집안에 미세한 일이라도 반드시 고하여 자유로 아니하고 여력으로 학문에 힘써 경사를 널리 통하였다. 아버지 상을 당하여 통곡의 슬픔과 수렴하는 예에 고인의 능하지 못한 바를 행하니 이웃 사람들이 칭찬하였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므로 지극히 비통하여 여겼고, 능히 편모를 섬겨 지예를 봉양함에 정성을 다하였다.
지난 을미(1995)에 어머니가 모진 병을 만나 위태로워 백약이 무효하거늘 곧 손가락에 피를 내어 입에 드리니 금방 회생하여 그 후 10여년을 살다가 또 병이 재발하여 곧 임종하려 함에 볼기 살을 떼어 약과 같이 드리니 5일의 명을 연장하였다. 상사를 당하여 상복을 입고 맨밥을 먹으며 3년을 피눈물로 지냈다.
언제나 망일에는 호곡하여 슬퍼하기를 초상시와 같이 하였으니 이는 종신토록 부모를 사모한자라 존경의 은전하사 하기를 원함에 상례향 이재현이 토론에 의거하여 나라에 알리니 상께서 가상히 여겨 유신에 명하여 그 옛날 살던 곳에 그 정려문을 세우게 하였다.
공의 손자 정식이 나에게 정려기를 청하면서 이르기를 우리 할아버지 효행으로 나라에 정표가 있었으니 오늘날 이한이 없도다. 원컨대 그 사실을 기록하여 표창해 주십시요 하거늘 내 숙연이 탄식하여 이르기를 효라 하는 것은 백탱의 근원이니 가히 공경치 아니하랴 하물며 나는 공과 더불어 본이 한가지니 공의 세덕을 더욱 자상히 알도다.
고직공의 청명과 직절은 당시에 사군자들의 칭찬한바 되었고 이제 탁이한 행실이 또한 이 같으니 옛적에 이른바 그 물려줌이 멀면 그 이음이 크다 하였으니 이를 이름이 아니겠는가. 그 택리를 표하여 풍성을 깨우침은 왕정에 이보다 먼저 함이 없어 일세에 보고 느낌도 삼도다. 시에 이르되 너의 할아버지를 생각하여 비로써 그 덕을 닦으라 하였으니 공의 자손 된 자는 또한 마땅히 힘쓸바를 알리도다. 삼가 기록하여 정리에 가노라.
*참고자료 : 순창의 효열부(순창문화원.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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