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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곡마을(鳳谷)마을
무이산(武夷山), 557.6m)에서 기두하여 동쪽으로 팔덕면과 경계를 이루면서 팔덕면 태자마을 뒤에 솟아오른 산이 이름하여 태자봉이다. 이 봉우리에서 동쪽으로 인계면과 경계를 이루면서 뻗어온 산맥이 인계면과 구림면을 넘나드는 해발 350m의 귀야우재가 되고, 다시 북으로 솟아오르니 물통골산(377.1m)이다. 다시 북으로 뻗으니 황독치(黃瀆峙, 315m)로 분지처럼 이룩되면서 서쪽으로 뻗어간 산맥이 결인되었다가 솟아오르니 태봉(泰峰, 285m)이다.
이 산에서 서쪽으로 다시 뻗으면서 개장되어 청룡 백호가 휘감아 소쿠리 속처럼 아늑한 마을이 봉곡이다. 이 마을은 원래는 새실이라 하였으니 실(室)이란 집이란 뜻으로 봉황새가 집으로 돌아든다는 말에서 새실이라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한때 이 마을을 사곡(沙谷)이라 하였으니 그 이유는 태봉에서 서북쪽으로 뻗어내린 산맥이 평사낙안(平沙落雁) 형상인 모래밭에 기러기가 내려앉은 형상으로 성곡리 쪽에 몇 호가 사는 마을을 사곡이라 하였으니 그것을 따라 사곡이라 불렀던 것으로 보인다.
그후 다시 봉곡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하는데 형상학상으로 바르게 말을 한다면 비봉귀소형의 준말로 봉소리(鳳巢里)나 봉서리(鳳捿里)라 함이 타당하지 않나 생각된다. 연이나 수차 마을 이름이 개칭된 것도 우연한 일은 아니라 생각한다.
둔기(屯基)마을
무이산이 동북쪽으로 뻗어내려 구곡리 어은동과 팔덕면 청계리 도장골 사이에서 결인되었다가 동쪽으로 솟아오르면서 한 지맥이 북쪽으로 뻗어내려 산이 솟아오르니 해발 356m의 산이다. 이 봉우리에서 동쪽으로 개장하여 마을이 형성되니 둔기마을이다.
이 마을을 본래는 둔터우라고 불렀으니 무이산의 형상이 장군이 진을 친 곳이라 하여 둔터우라 하였다고 한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둔기(屯基)라 하여 새실과 병합하여 구암리라고 하였다. 따라서 법정리 구암리는 지형상과는 무관한 것으로 보인다.
<순창향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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