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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서천 모시마을의 6차 산업-전원 출자와 전원 참여의 성공마을

농업 농촌 농민 3락 농정의 웃음, 6차 산업에서 찾아라!

2016년 04월 27일(수) 11:11 [순창신문]

 

보/도/순/서

1. 걸음마를 시작한 우리지역의 6차 산업
2. 서천 모시마을의 6차 산업-전원 출자와 전원 참여의 성공마을
3. 6차 산업의 성공지 보령 돼지 카페?
4. 6차 산업의 발생지, 일본 야마구치현 후나가타 종합농장
5. 쿠마모토 일본 지진으로 알게 된 사가현 이마리 농가 민박
6. 일본 오이타현 히타시 오야마 농협의 농가 식당에서 배운다




2. 서천 모시마을의 6차 산업-전원 출자와 전원 참여의 성공마을

우리나라의 6차 산업은 2014년 5월 ‘농업의 6차 산업화 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이때부터 시작된 6차 산업화는 농협과 정부가 협의체를 만들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추진된 6차 산업은 자유무역협정으로 인한 농촌 경제의 파국을 막고, 농촌 소득을 도시 수준으로 끌어올려보겠다는 복안이 깔려 있다. 일본 6차 산업의 성공은 오랜 시간 쌓인 경험과 노하우를 통해 일궈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우리나라 6차 산업의 경우는 정부 주도로 추진되고 있으며, 그 용어가 쓰이기 시작한 것은 불과 2~3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도 정부 주도의 훨씬 이전부터 6차 산업을 현실화한 마을이 있다. 서천군 달고개 모시마을이다. 달고개 모시마을이야 말로 한국이 나아가야 할 6차 산업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편집자주>


ⓒ 순창신문



우리가 불과 몇 년 전부터 쓰기 시작한 ‘6차 산업’이라는 말이 일본에서는 십 수 년 전부터 쓰이던 용어였다. 물론 우리나라 6차 산업의 시작이 몇 년 전인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6차 산업은 있었다. 일본의 6차 산업이 60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고 하지만, 6차 산업이란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20여년이 넘지 않았다. 일본보다 10년~20년 뒤졌다는 게 용어에서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과거에도 세계사는 일정한 흐름을 갖고 태동하고, 전파되고, 소멸하는 과정을 거쳤다. 태동의 시기가 일본이 빨랐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나라가 더 빨랐는가의 문제보다는 얼마나 제대로 하는가의 문제에 천착하는 일이 더 중요해 보인다. 이런 측면에서 태동의 시기는 일본보다 늦었을 수 있지만, 일본과는 다른 모습으로 6차 산업을 실현하고 있는 서천군의 달고개 모시마을은 우리나라 6차 산업의 롤모델이 되고 있다.
달고개 모시마을은 몇 사람의 리더에 의해 완성됐다. 그 중 한 사람이 양만규 달고개 모시마을 법인 대표다.
달고개 모시마을을 우리말로 풀어 부르면 ‘달빛 고운 고향마을’로 부를 수 있다. 예전 지명이 월산(月山)이라 산은 다시 고개(嶺)로 달리 부를 수 있어 순수 우리말로 이름을 붙여 ‘달고개’라 부르고 있다.
또 서천군 한산면에는 한산 모시가 유명해 달고개 모시마을에서 만들어내는 모시 떡을 ‘한산 모시락’이라 하고, 이 한산 모시락은 서천군의 식품 공동브랜드로 알려져 있다. 달고개 모시마을의 모든 운영은 옛 지명을 딴 ‘월산리 영농조합법인’이 하고 있다. 양만규 대표는 조상대대로 마을을 지키며 10대째 살고 있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사는 인생’을 강조하고 있다.
카톨릭 농민 회장을 역임했고, ‘뉴스 서천’이란 지역신문을 창간했으며, 지역민과 함께 나날을 보내고 있는 양 대표의 일상이 소소로워 보이지는 않았다. 오래전부터, 마을 만들기 사업을 시작했을 때부터 달고개 모시마을을 보기 위해 마을을 방문하는 개인이나, 단체, 우리나라 각 지역의 사람들과 귀농귀촌 희망자들, 일본, 독일의 학자나 농촌운동 관계자들 등이 수시로 마을을 방문할 때 마다 마을의 이력을 소개하고 있다.
또 ‘한산 세모시’를 강조하고 있다. 한산 세모시는 지난 2011년에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달고개 모시마을 사람들은 옛날부터 모시를 특히 더 잘 다뤘다고 한다. 한산면 장터에 나가면 달고개 모시마을 사람들이 만든 세모시 옷이 ‘가장 비싸게 잘 팔렸다’고 한다. 그래서 조상 대대로 이어오던 모시에 대한 손기술은 다른 마을이 흉내낼 수 없을 정도인데, 지난 2005년 우리나라에도 일본의 영향으로 농촌 운동이 넘어 와 유행처럼 마을만들기 사업을 시작할 당시 모시마을도 대열에 끼고자 했다.
그 때 앞에 나서서 ‘우리 마을도 잘살아 보자’고 외친 사람들이 있었고, 양만규 위원장과 현재 사무장을 하고 있는 양생규 씨 등이다.
달고개 모시마을은 양씨가 많다. 마을 만들기 사업이 있던 2005년 마을 사람들은 모시가 많고, 모시 다루던 소질을 이용해 쉽게 만들 수 있는 ‘떡’을 생각해냈다.
마을만들기로 서로 상생을 꿈꾸며 11년을 보냈고, 7년 전인 2009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떡을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체험으로 떡만들기를 시작했으나, 곧 시판을 시도했다. 옛날에는 마을의 가구 수가 많아 떡을 만드는 데도 수월했다. 마을은 80가구 150여명이 됐었지만, 지금은 80가구 40명이다.
달고개 모시 마을의 원칙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전원 출자, 전원 참여’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마을에 방문객들이 오면 전체의 마을 사람들이 3개조로 나뉘어 식사를 준비하고 체험 활동을 돕는다.



최연소자 60세, 최고령자 86세의 급여생활자 마을

“효율성의 문제가 아니라, 상생과 공존의 문제다”
모싯잎 수확과 가공·판매로 한 해 매출 4억원


나이가 들었다고 빠지는 일은 없다. 최연소자가 56세이며, 최고령자는 86세로, 마을의 월 매출은 4억원 정도이다. 최고령자와 함께 인력 운영을 하고 있다는 것이 노동이라는 측면에서는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이것은 ‘효율성의 문제’가 아니라, ‘상생과 공존’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봐야 하고, ‘자립’이라는 입장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양 대표는 강조했다.
마을을 찾는 사람들은 마을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기 위해, 떡을 사기 위해, 마을의 역사를 듣기 위해 5천여명 정도가 인터넷 등이 아닌 직접 방문을 하고 있다.
달고개 모시마을의 가장 큰 특색은 마을 사람들끼리 서로 스스럼없이 ‘사랑합니다’를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처음 마을 만들기 사업을 할 때부터 시작된 ‘사랑합니다’라는 구호를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한 것은 아니었다. 모두 쓱스러워 하고, 간지러운 행동이라고 기피했다. 그러다 리더들의 노력에 의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모시마을 사람들은 반드시 한 달에 한 번 씩 모인다. 모이면 자연스럽게 회의와 토론을 하게 되고, 친해지면서 서로의 행동이 어색하지 않게 된 것이다.
7일 서천군 귀농센터의 귀농학교에서 나온 귀농 희망자들이 마을 체험관을 찾았을 때도 양 대표는 순진한 미소를 띠며 교육생들에게 ‘사랑합니다’를 선보이며 양팔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 보였다. 모시마을은 한 달에 한 번 마을 사람들의 ‘생일잔치’를 하고 있다, 생일잔치를 하면서 서로 웃고, 건강을 체크하며, 마을사업의 경과보고와 회의, 토론, 선물 교환 등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다.
4월 8일이 4월달 생일잔치가 있는 날이었다, 마을 사람 전체가 모여 일손을 놓고 부산으로 바람을 쐬러 갔다 오기도 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이 언제나 좋은 것은 아니다. 요즘 세상 자체가 신자유주의의 경쟁 체제 흐름 안에서 이기주의가 팽배해있어 모시 마을 또한 쉽지는 않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쉽지 않지만, 모시마을은 하고 있다. 이기심을 앞세우지 않는 리더들에 의해 다른 사람들도 남을 생각하는 마음이 싹텄고, 이런 것들을 보여주는 ‘어메니티 정신, 어메이티 마을’ 만들기가 가능했다.


“달고개 모시마을의 떡은 믿고 살 수 있다”

달고개 모시마을은 처음 마을 사업을 시작하면서 서천군 정책 사업이었던 어메니티 마을 사업에 선정되기 위해, 100대 1의 경쟁력을 뚫기 위해 독특한 마을 문화를 형성해야 했다. 그때부터 시작된 것이 ‘사랑합니다’였다고.
당시 모시마을은 ‘최우수 어메니티 마을’로 선정돼 2억원의 지원금을 받아 마을 사업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마을 사업 시작 당시 전체 마을 사람들이 십시일반 출자를 해 1억원의 종자돈을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출자와 노동을 마을 전체가 하고, 이기심을 내보이지 않고 공동 노력과 공동 분배를 실현한 모시마을이 서천군의 자랑이 되고, 성공 사례가 되자, 서천군은 모시떡 사업에 지원을 하기 시작했다.
서천군은 무려 30여 모시떡 업체를 만들어냈다. 공장에서 만들어내는 모시떡이 옛 손맛 그대로를 살린 달고개 모시마을의 떡 맛과 같을 수는 없는 일이었지만, 서천군의 핵심사업은 모시떡 사업이 된 것이다. 그래서 모시마을 주민들은 현재는 “너무 많이 생겨 손해를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모시떡을 만드는 업체가 많아질수록 모시마을 사람들은 마을 본래의 자원이었던 어메니티를 더욱 강조한다. 다른 곳에는 없는 ‘인간미’가 넘치는 '마을‘과 ’사람 중심의 마을‘을 더 견고히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의 기본이 되는 ’사랑합니다‘가 존재하는 한 모시마을 어메니티의 ’힘‘은 더욱 강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모시마을 사람들은 한결같이 십수년을 매달 한 번 씩 모두 모여 생일을 축하하고, 선물을 교환하고, 서로의 건강을 체크하고, 기운 돋는 말로 서로를 위로하며 살고 있다.
특히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일을 손에서 놓지 않고 있다. 86세의 어르신이 몸이 아파도, 다리에 통증이 있어도 아픈 몸을 이끌고 마을 어귀 작업장으로 나가 하루를 시작한다. 떡을 만드는 일은 20명씩 2개 조를 이뤄 며칠씩 공동 작업을 한다. 공동 작업을 할 때 빠지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다 몸이 아플 수 있는 고령이기 때문에 한사람이 빠지면 다른 사람이 그 몫을 해야 하기 때문에 아픈 몸으로 힘들게 일을 마친 후에 병원에 가곤 한다는 것.
이 마을 사람들은 누구하나 개인적인 행동을 먼저 앞세우지 않는다. 방문객들을 맞는 것도 조직적으로 정해진 팀에 의해 일사분란하게 체험, 식사 등을 소화해 내고 있다.
모시떡 또한 다르다. 기계에서 뽑아내지 않아 떡 모양은 각기 일정치 않을 때도 있으나, 떡맛 만큼은 다른 모시떡과 비교되지 않는다. 집에서 빚어 주는 송편 맛이다. 단맛을 내지도 않았다. 손으로 치댄 맛은 부드럽고 쫄깃해 이틀이 지나도 굳지 않는다. 한 번 달고개 모시마을 떡을 먹어본 사람은 다른 모시 송편을 선호하지 않게 된다.
달고개 모시마을 송편은 모시마을 사람들이 직접 모시 농사를 짓고, 수확해 직접 지은 쌀과 함께 떡으로 가공을 하고 있다. 가공한 떡은 모시마을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팔려나가고, 옥션이나 11번가 등의 인터넷 온라인 판매로도 1~2위 검색이 될 정도다. 모시마을이 돈을 지불하고 의뢰한 일도 없다. 옥션이나 11번가에서 요청해 온라인 판매가 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행담도 서해안 고속도로 휴게소에는 열흘 동안 한 트럭 씩 나가고 있다. 달고개 모시마을의 6차 산업이 한 눈에 들어오는 부분이다.

ⓒ 순창신문


양 만규 위원장은, “우리 농사꾼들이 옥션 등에 홍보를 해본 적도 없고, 모시떡을 팔아보겠다고 특별한 홍보를 한 적도 없고, 판매 전략을 세워보지도 않았는데, 전국에서 주문이 들어오고 있다”며, “우리는 6차 산업이라는 말을 생각하지 않았어도 6차 산업을 해야 마을이 살고, 마을민들이 돈 궁하지 않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서로 머리를 맞대며 협의해 알고 있다” 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것이 마을의 특색이고, 신용”이며, “지금은 전국에 있는 사람들이 ‘모시마을의 것이면 믿고 살 수 있다’라는 말을 하는 가장 든든한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모시마을의 모시떡은 명절이면 떡 주문을 다 맞추지 못할 때도 있다. 기계로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을사람들이 직접 전통적인 방법으로 만들고 있다. 이 마을이 전국에 알려지기까지의 에피소드가 더 흥미롭다. 농촌 마을 만들기 사업이 중앙정부나 지자체들의 역점사업이던 2005년 즈음 한국의 농촌 마을 사업을 보기 위해 온 일본의 교수들이 모시마을을 보고 가 한국에서 일본을 방문한 한국 마을만들기 관계자들에게 ‘모시떡으로 유명한 충청도 어느 마을에 가서 마을 사람들이 살고 있는 색다른 모습을 보고 왔다’며 오히려 한국 사람들에게 소개를 한 것이다.
또 언젠가는 독일에서 교수 5명이 와 서천의 갈대밭과 모시마을을 보고 한 말이 ‘갈대들이 서로 하늘을 향해 손을 흔들듯이, 갈대들이 사람들을 보고 ’사람들아, 달고개 모시마을 사람들처럼 서로 어울려 재밌게 살아라 하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는 말을 달고개 모시마을에 전했다고 한다.
어느 해인가는 북경대 교수들이 마을을 방문해 “사람들이 재밌게 살고 있다”는 말을 남기며 모시마을이 더욱 전국에 알려지게 됐다고.
양만규 위원장은, “마을을 알리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특별히 한 일은 없다”며, “지금도 서천군 한산면에서 나는 ‘한산 세모시’는 전국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귀중한 자연, 자원으로 서천군민들에 의해 계승되고 있다”며, “한산모시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처럼, 한산모시떡은 달고개 모시마을 사람들에 의해 사람 사는 맛을 전하는 어머니의 손맛 그대로의 원조, 모정이 돼 앞으로도 또 10대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연간 매출이 4억원을 넘는 달고개 모시마을에서의 주민들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월급을 받는 월급쟁이들이다. 정부 연금을 받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자립민들이며, 자식에게 손 벌리지 않고 당당히 소비를 하는 급여 생활자들이다. 마을 사람들의 이름을 빌려 ‘가짜 마을 사업’을 하는 마을과는 격이 다르며, 한 두 사람의 주머니를 채우는 마을 사업과도 차원이 다르다. 진정한 리더의 깊은 고민과 사랑이 이상적일 수 있는 마을 사업을 현실적인 마을 사업으로 당당히 자리잡게 했다. 6차 산업의 성공적인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양만규 위원장은, “사람이 사는 것은 어떤 가치를 갖고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하고, 양생규 사무장 등 마을 사람들은 “함께 뭉쳐서 재밌게 사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이정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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