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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림 구곡 삼효자 정려각]- 순창의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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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곤 순창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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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8월 03일(수) 14:08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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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효자 정려는 3대에 걸쳐 4명의 효자 즉 금녕 김씨 김영만, 김채옥, 김광옥, 김종엽 등 금녕 김씨 네 분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순종10년(1810)경에 세웠다.
그의 근본은 단종 때 순절한 사육신 김문기의 후손“통정대부 백운공”의 아드님 영만 공과 영만공의 아드님 채옥, 광옥 형제와 손자 종엽 공이시다.
이들의 효심은 하늘을 감동시켰고 이에 순조 임금은 이들 3대에게 각각 영만공“통정대부 공조참의”, 광옥공“조봉대부 호조좌랑”, 종엽공“통정대부 동몽교관”을 추증하고 청기와를 하사하면서 서기 1810년 4월에 왕명으로 효자 정려각을 짓도록 허락하였다.
비문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면 아버지께서 아팠을 때는 왼쪽 허벅지를 배어 웃는 낯으로 바쳤고, 어머니께서 아팠을 때는 오른쪽 허벅지를 배어 어머니께 바쳐 그 효심이 하늘을 감동시켜 병을 낫게 했을 정도인데 그 광경을 본 사람들마다 처참한 허벅지의 모습에 눈물을 머금었다고 한다.
또한 일화로는 시묘 살이를 할 때 주위에 소나무를 심었는데 하도 벌레가 먹어 매일 물을 길러다 소나무에 주었는데도 상황이 변하지 않자 잠을 안자고 지성스럽게 몇 날 몇 일 밤을 기도를 하였더니 송충이들이 자멸하였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아버지를 모시기 위해 방죽을 파서 고기를 넣어 길러 극진히 모셨는데 어버이가 돌아가시자 너희도 이젠 필요 없다며 울면서 방죽을 없앴다고 한다.
또한 들려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시묘 살이를 하는 도중 집에 있던 부인이 하도 궁금하여 저 멀리 떨어진 목화밭(무명밭)에서 조심스럽게 지켜보는 것을 보고는“어디 여자가 방정스럽게 쳐다보느냐”며 그 앞에 목화를 다 뽑아 버렸다 한다.
시묘 살이를 한 곳은 흰도리 산골짝 산 기슭에 있다.
*참고문헌 : 순창의 효열부(순창문화원,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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