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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헤이그의 ‘이준 열사 기념관’을 다녀와서

“헤이그의 비분강개를 잊지 말자”

2016년 07월 13일(수) 15:00 [순창신문]

 

네덜란드의 수도인 암스테르담에는 네덜란드 왕실이 없다. 헤이그에 있다. 헤이그는 암스테르담에서 자동차로 1시간 정도를 가면 닿을 수 있는 곳이다.
암스테르담에는 16~7세기의 유럽 건축 양식이 그대로 보존된 도시인데 반해 헤이그는 근·현대적인 건축 양식이 특징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헤이그가 우리에게 기억돼있는 것은 이준 열사 때문이다.
이준, 이상설, 이위종 …. 고종황제의 특사로 헤이그에 갔던 3인이다. 그 중 이준 열사는 1907년 7월 14일 헤이그의 드용호텔에서 순국했다. 이준 열사 등 세 사람은 45개국이 참가하는 네덜란드의 세계만국평화회의장에 들어가기 위해 5개월에 걸쳐 헤이그에 도착,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대한제국의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 순창신문


▲1917년 당시 세계만국평화회의장이었던 현재의 국회 건물.

그러나 당시 강대국의 대열에 있었던 일본의 방해로 특사들은 만국평화회의장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울분을 삼키던 이준 열사는 지금은 기념관이 된 당시의 드용호텔에서 의문의 주검으로 발견됐다.
이준 열사의 순국에 대해 이준열사 기념관은 '시대적 상황으로 보아 일제의 만행이 아니고는 일어날 수 없는 일'로 규정하고 있다. 일본 NHK방송이 몇 해 전 기념관에 와서 이준 열사의 순국에 대해 물으며, 일본의 개입설에 증거가 있느냐고 방송관계자가 물었다고 한다. 이에 기념관 측은 '그럼 일본이 관여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보이라'고 응수했다는데….
이준 열사 기념관은 이준 열사가 순국한 역사의 현장이다. 기념관에 있는 자료들은 집념의 한 한국인, 20년 넘는 세월을 이준 열사 자료 찾기와 기념관 건립에 사재를 턴 이기항 이준 아카데미 원장에 의해 지켜질 수 있었다.

ⓒ 순창신문


▲헤이그 이준 열사 기념관장인 송창주(왼쪽)씨와 이기항(오른쪽)원장

이 원장은 1993년 이준 열사 아카데미를 설립하고 헤이그 시로부터 호텔 건물을 매입해 기념관으로 만들었다. 그는 지금도 연로한 몸을 이끌고 1시간 거리의 암스테르담에서 헤이그까지를 매일 기차로 출·퇴근하며 생애를 바치고 있다. 우연히 들른 지난 6월 11일 이 원장은 몸이 몹시 안 좋아 보였다. 잠시 사진 찍는 것도 힘들어 보일 정도였다. 헤이그 특사 사건을 이 원장은 ‘한국 특사 외교의 효시’로 봤다. 또한 ‘평화적인 독립운동의 선구자’라고 강조했다.
네덜란드 헤이그는 임시정부가 있는 중국 상해나 항주보다 워낙 멀기 때문에 헤이그 이준 열사 기념관을 찾는 한국인은 많지 않다. 한 해 드문드문 단체나 기관에서 방문하는 정도라고 한다. 헤이그에는 국제사법재판소가 있다.
국제사법재판소는 안드레 카네기가 막대한 돈을 기부해 지어졌다는 말이 들렸다. 국제사법재판소가 있는 ‘평화의 궁’은 헤이그 제1의 명소로 알려져 있다. 평화의 궁 안에는 국제사법재판소 뿐 아니라 국제중재재판소와 국제법 도서관, 국제법 아카데미 등의 시설이 있다.
국제사법재판소의 판사가 일본인이 포함돼 지난 2012년 11월 일본은 을사늑약의 치욕을 상기시키는 ‘독도문제’를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려는 움직임으로 한 세기가 지난 시점에서 또다시 국민적 울분을 불러온바 있다.
1907년 7월 15일, 네덜란드 헤이그에 살던 죠지 미쉘 한선과 아리 말하이스 아브라함 르니스는 ‘한국에 거주하는 법관 이준이 14일 저녁 7시에 사망했음’을 서명한 사망증명서를 발급했다. 이 사망증명서는 헤이그 이준 열사 기념관에 있다.
이준 열사는 1895년 서울대 전신이라 할 수 있는 한성법관양성소를 졸업한 우리나라 최초의 검사였다. 일제의 감시 속에서 더위와 싸우며 수개월을 달려 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장은 우리의 특사들에게 너무 냉담했다. 이미 일제라는 강대국이 있을 뿐이었다.
당시 미국이 가장 냉담했다고 한다. 또 네덜란드는 일제가 가장 먼저 수교한 유럽국가였다. 당시 네덜란드는 중립국이라는 이미지로 세계만국평화회의를 제안 받았다. 그러나 세계 강대국인 미국, 영국, 독일은 강대국의 대열에 있는 일본이 먼저였다. 당시 일본인들은 헤이그에서 가장 비싼 호텔에 머물렀고, 고종의 특사였던 이준 열사 등은 드용 호텔이라는 허름한 호텔에 묵고 있었으니, 호텔 규모만 보더라도 국가 경제를 알 수 있는 일이었다. 호텔간 거리도 자동차로 10여분 정도가 떨어져있었다.
당시 강대국들은 만국평화회의에서 일제의 만행을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고종 황제의 특사들이 세계 기자회견을 열고 호소했고, 온갖 노력을 다했다. 당시 대한제국은 평화회의에 초청을 받은 상태였다.

ⓒ 순창신문


그러나 일제의 방해 앞에 미국을 포함한 강대국들은 일본이 주장한대로 1905년 11월 강제로 체결된 을사늑약에 의해 외교권이 일본에 넘어간 것으로 판단했고, 그 때문에 한국은 ‘외교권 없음’으로 거절당했던 것이다. 그러나 엄밀히 을사늑약 등의 4대 조약은 고종황제의 비준이 아니었기 때문에 분명히 무효였음에도 강대국들은 일제의 주장만을 믿었다. 한국 특사들의 말은 믿으려하지 않았다.
당시 유일하게 네덜란드의 한 신문에서 특사들에 대한 사연이 다뤄졌을 뿐이라고 한다. 힘없는 나라는 군사력이 없는 나라이며, 이것을 뼈저리게 통감한 이상설 열사는 1917년 연해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순국했다. 이위종 열사는 이준 열사 사망 후 러시아로 건너가 1차 세계대전 때 러시아군으로 출전해 역시 1917년경 전사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근 자료에 의하면 그 이후에도 연해주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고 한다.
당시 군사력의 힘을 과시하던 강대국들은 힘없는 대한제국 특사들의 말을 무시한 채 일제의 말만 믿었으며, 마치 ‘한국인들은 저항의지와 투쟁의지가 없어서’ 외교권 등을 일제에 빼앗긴 것처럼 한국을 비하했고, 도우려하지 않았다고 한다. 헤이그는 지금도 국민들의 가슴에는 비통한 도시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편 헤이그의 이준열사 기념관은 지난 2012년부터 해마다 11월이 되면 “잊지 말자 을사 늑약”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재외 국민을 포함한 전 국민 동참을 호소하는 캠페인을 벌여오고 있다.

ⓒ 순창신문


▲지난 6월 한창 수리중이었던 이준열사 기념관 1층 내부

이정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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