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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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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년,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거룩한 이름 - 김일두 선생과 항일 의병·독립군의 발자취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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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18일(수) 14:16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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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순/서
1. 독립운동에 평생을 바친 김일두 선생과 지역 구국 투사들
2. 구국 투사들의 이름이 잊혀지고 있다
3. 상해 임시정부와 항주 임시정부
4. 남경대학살과 한중 독립운동
5.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광복절을 모르는 국민 17.4%, 이제는 지자체도 나서서 역사 인식 도움 줄 때…
영화 ‘암살’이 우리나라 독립운동과 독립군의 삶, 나라를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버린 위대한 이름들을 왜 기억해야 하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또 국민들의 애국심 고취를 위해서는 나라를 위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투쟁사가 영화로 많이 만들어져야 하는 것도 보았다. 영화 ‘암살’을 본 국민들이 상해임시정부와 항주임시정부를 찾고 있는 것을 보면서 영화의 흥행이 애국으로 이어지는 지름길임을 확인했다.
또 상해 임시정부의 운영이 문제점을 갖고 있는데도 ‘더 많은 국민들이 임시정부를 찾아야 하고, 외면하지 말아야 하고, 유지돼야 한다’고 말하던 유학생의 말은 의미심장했다. 역사의 현장이 남아있어야 하는 이유는 다른 게 없었다. 바로 ‘역사의 현장’이기 때문이었다.
광복 70년을 맞은 올해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는 교류전을 펼치고 있다. 사랑이나, 전쟁이나, 죽음에서조차 잊혀지는 것만큼 무서운 것은 없지 않을까? 후손된 우리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독립투사들의 그 거룩한 이름을 기억하는 것, 그것만이 구국 영웅들이 영원히 사는 길일 것이다. 독립기념관에서 만난 박민영 선임 연구원의 3년여에 걸친 면암 최익현 선생에 대한 연구는 가슴을 뜨겁게 했다. 잊지 않는다는 것은 발로 뛰는 것이었고, 발로 뛴다는 것이 바로 애국이었다.<편집자 주>
광복절이 무슨 날인지 모르는 국민이 17.4%에 달하고 있다. 이는 충격적인 사실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무엇이 잘못됐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고민해봐야 할 일이다.
광복절이 어떤 의미를 가진 날인지를 알리기 위해서는 지자체의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볼 수 있다.
정부는 이러한 점 등을 빌미삼아 국정화를 추진하는 등 또 다른 만행과 역사의 왜곡을 강행하고 있으나, 이는 국민의 의식을 후퇴시키는 매우 위험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국민의 역사 인식을 위해서는 가정과 학교에서 1차적인 교육을 담당하고, 지자체는 지역의 인재를 만들어낸다는 인식 하에 정부보다는 지자체를 통한 역할 분담이 요구되고 있다. 해마다 반복되는 겉치레 행사나 보여주기식 퍼포먼스는 중단돼야 마땅하다.
주민들의 역사 인식을 위해서는 주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실질적이고 알찬 내용의 캠페인이 진행되는 등의 효용적인 실현을 위한 예산의 수반이 필수 조건이다. 광복절을 ‘잊어서는 안 되는 날’로 인식할 수 있는 혁신적인 아이디어의 도출을 위한 행정력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광복절은 그냥 ‘노는 날’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동참할 수 있는 의미를 부여하는 일, 어린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광복절의 깊은 뜻이 주민들의 마음에 체화되는 일이 그냥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역사 교육은 학교에서만 이뤄진다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지자체 역시 주민 역사 인식 프로그램에 나서야하는 등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주민 각 개인의 역사 인식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 절실한 일일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지구촌이 하나로 묶인 시대에 살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러한 관점은 미국식 사고의 틀 안에 있다는 점이다. 여전히 민족주의를 부르짖고, 잘못된 역사를 국민들에게 주입, 강요하며, 다른 나라를 국가적 힘으로 점령하고자 하는 일본 같은 나라도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일본은 아직도 군대의 힘을 과시하고 있고, 자위대를 통한 힘의 과시는 여전히 우리나라를 포함한 다른 나라를 위협하고 있다.
일본 제국주의가 우리나라를 식민지화 하고, 중국 등을 침략하는 국가적 만행을 저질렀던 역사를 과거에 묻어두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현대를 사는 오늘날에도 위협이 되고 있다.
그 증거로 일본의 아베 정권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더 노골적으로 강행하고 있고, 이러한 사실은 우리 국민과 중국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과거 우리나라를 식민지화 하고 중국을 침략해 전쟁을 일으킨 주요 전범들의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함으로써 지금의 아베정권은 과거 일본의 침략전쟁이 잘못된 것이 아니었음을 공식화하고 있다.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은 우리에게는 여전히 위협적인 나라다. 위안부와 강제 징용 등의 있을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을 두고 보상은 커녕 사실조차 받아들이지 않는 일본을 보면서, 우리는 이 평화의 시대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
겉으로 보기에는 평화로우나, 평화는 언제든지 깨질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알고 있다.
그러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들의 역사 인식이고, 힘이 없어서 침략당했던 과거를 잊지 않는 것이다.
식민지 시대 독립군들의 무장 투쟁 노선만이 나라를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 단재 신채호 선생의 사상에서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어떤 역사 인식을 가져야 하는지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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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 신채호 선생, “역사를 잊은 민족은 재생할 수 없다” 역사 인식 엿보여
단재 신채호 선생은 혁명가이자 독립운동가, 사상가, 정치가였다. 그토록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지만, 조국의 해방을 보지 못하고 1936년 2월 21일 차디찬 러시아의 뤼순감옥에서 생을 마감했다. 만주 하얼빈에서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 의사 역시 뤼순감옥에서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뤼순 감옥은 1904년에 벌어진 러일전쟁에서 일제가 승리하면서 확보된 일제의 점령지였다.그곳에서 대한 독립운동의 거두들이 쓰러져갔다. 오로지 일제에 의해 강탈당한 조국의 국권회복을 위해 사력을 다했던 단재는 지금까지도 그 역사적인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할 수 있다. 우리는 침략전쟁을 너무나 쉽게 잊는 나라, 침략의 원흉들을 너무 쉽게 용서하는 국민들은 아닌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중국은 자신들의 영토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더 나아가 자신들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동북공정이란 연구들을 하면서 중국의 동북 3성, 만주 일대 등의 광활한 땅을 차지하고 또한 유지하기 위해 국가 차원의 연구들을 진행하며 논리를 찾고 있다.
심지어 항주 임시정부를 연구하는 연구원들이 항주 절강대에 있을 정도다. 중국인들은 역사 속에서 논리를 찾고 그 논리 속에서 실익을 챙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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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중국인들은 말하고 있다. ‘힘이 없으면 나라를 지킬 수 없고, 나라와 인민을 지키기 위해서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중국인들은 힘을 결집시키고 있다. 그들은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을 잊지 않기 위해 남경대학살 기념관 등을 자주 찾고 있다. 독립기념관이 텅 비어있는 우리나라와는 너무도 대조를 이루고 있는 부분이다.
정부는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추진할 일이 아니라, 독립기념관의 주차비 등을 받지 않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나라의 힘을 결집시키는 장소에서는 그 어떤 명목의 돈도 받지 않고 있는 중국을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중학생들이 유관순 열사를 모른다는 핑계를 대며 국정화를 추진한 정부의 국정화 추진 정책은 ‘코미디’라고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나라의 힘은 결집된 국민에게서 나오는 것이고, 힘의 결집은 국민들의 역사인식에 기인한다. 역사 인식이 없는 국민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국민의 역사 인식은 은폐되고 왜곡된 역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 사실을 경건히 받아들이고,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수용하고 비판하는 가운데 역사 인식은 싹트는 것이다. 국민들의 역사 인식이야말로 나라를 지키는 힘의 원천이다.
단재 선생은 나라를 지키는, 나라를 뺏기지 않기 위해서는 애국심을 강조했다. 애국심이야말로 나라를 지키는 힘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을사오적이 싸워보지도 않고 나라를 일제에 넘긴 일은 애국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라가 없는데 가문이 무슨 소용이냐’며 지금의 600억원에 해당하는 재산을 정리해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신민회’, ‘서전서숙’, ‘의열단’ 등에 지원을 아끼지 않은 우당 이회영 선생 같은 국민의 애국심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나라보다는 사리사욕을 챙기는 사람의 근본은 무엇인가? 당시 2천만 겨레의 혼을 팔아버린 이완용 등의 을사오적과 일제에 붙어 개인의 영달만을 추구한 친일파에 대한 단죄없이 현대를 살고 있는 지금의 대한민국의 모습은 분명 애국심을 강요할 상황은 아니다.
일본 제국주의에 나라를 강탈당하고, 사리사욕을 챙기기 위한 매국노들이 판치던 시대에도 단재는 애국심을 강조했다. 단재의 전 생애는 오로지 독립운동과 국권의 회복이었다. 단재의 독립운동은 단순히 일본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일이 아니라, 우리민족의 유구한 역사를 지키고, 외세의 힘이 아니라 자립·자존할 수 있는 뿌리가 튼튼한 나라를 만드는 것이었다. 뿌리가 튼튼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애국심이 있어야 하고, 애국자는 애인이나 술, 담배를 더 사랑해도 안된다고 하며 단재는 담배를 끊었다고 한다.
단재는 국가를 ‘자신이 확장된 것’으로 생각했다. 국가가 없으면 자신도 없는 것이었다. 친일파와 다른 점은 바로 국가와 자신을 ‘하나’로 여겼다는 것이다. 반면 친일파들은 국가와 자신을 분리해 생각한다. ‘국가가 망해도 나만 잘살면 그만’이라는 것이 애국자와 다르다.
단재는 국가를 지탱하는 것, 국가를 지킬 수 있는 힘의 원천을 애국심으로 보았다. 애국심은 어떻게 키워지는가? 그것이 바로 ‘역사’라고 주장했다. 단재는, “국사가 없으면 백성에게 정신과 사상이 없다. 나라의 역사가 있어야 애국심, 독립심이 나온다. ”며 독립운동을 하면서도 역사 중 애국정신을 고취시킬 수 있는 부분을 발굴하고 연구했다.
단재는 국민정신과 사상은 역사 속에서 구현된다는 생각으로 많은 사람에게 역사를 알리고 독립운동에 나서도록 언론을 활용했다. 단재는 애국신문이었던 ‘황성신문’과 ‘대한매일신보’의 기자로 활동하면서 민족 국가의 영원한 발전과 지속성을 위해 백성들의 애국심을 강조했다. 단재는 애국심은 역사 속에서 찾아야 하고, 역사만이 민족정신, 민족사상, 민족의식을 키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역사를 부정하고 여전히 침략 전쟁에 눈을 돌리고 있는 듯이 보이는 일본 자민당의 아베 정권과 아소 등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의 후예들로 자민당의 핵심세력들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여전히 위안부 등의 일제 만행에 대해 보상은 커녕 사과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1905년 일제가 자행한 국사 교과서의 검열과 국정화를 우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것에 우려하지 않을 국민이 어디 있겠는가?
국가와 애국심을 강조한 단재에 대한 연구조차 하지 않는 정부가 어떤 논리로 국민들의 마음을 결집시킬 수 있을 것인가?
일제강점기 민족신문이었던 황성신문과 대한매일신보가 일제의 핍박에 의해 폐간되자 중국으로 건너간 단재는 상해와 만주, 북경 등에 머무르며 민족정신을 일깨우고 독립운동을 위한 글을 발표했다.
단재는 1912년 8월 29일 권업신문에 ‘이날’이라는 제목으로, ‘단군 개국 사천이백사십오년 팔월 이십구일 이날은 어떠한 날이오. 사천년 역사가 끊어진 날이오. 삼천리 강토가 없어진 날이고. 이천만 동포가 노예된 날이오. 십년 백년까지라도 이날에 이 생각을 잊지 말고 우리 한반도를 사랑하는 동포들아, 우리가 신성한 민족이 아닌가. 몸을 바쳐 우리가 자나 깨나 죽더라도 이날을 잊지 말고 우리가 우리의 기념할 날 되기까지 힘을 쓰자’며 국치일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절규했다.
단재는 또 대동제국사 서언에서, ‘국사가 있어야 국민이 애조심, 애국심, 독립심, 진취심이 있을지라 …, 차와 밥을 먹지 않더라도 국사는 없어서는 안 되고, 의복을 벗을 지라도 국사는 없어서는 안 된다. …, 국사가 없으면 국민이 무정신, 무사상의 국민이 되어 금수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며, 단재에게 있어 역사란 백성들의 의식주요, 민족의 혼이었다. 역사의 중요성에 대해 단재만큼 부르짖은 학자가 어디에 있을 것이며, 단재 만큼 역사를 아는 사상가, 혁명가가 또 어디에 있을 것인가?
단재의 ‘조선상고사’는 우리나라보다 중국 학자들이 더 많은 연구를 한 것으로 알려져 국민의 한사람으로써 부끄럽지 않을 수 없다.
단재는 조선상고사에서, “나라를 사랑하거든 역사를 읽을 것이며, 다른 사람에게 나라를 사랑하게 하려거든 역사를 읽게 할 것이다. 영토를 잃은 민족은 재생할 수 있어도, 역사를 잃은 민족은 재생할 수 없다.”고 강조한 것에서도 단재가 얼마나 투철한 민족주의자였는지, 그의 애국심이 얼마나 드높았는지를 알 수 있다.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말,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은 영국의 윈스턴 처칠 수상이 1965년 한 연설에서 세계2차대전 때 독일의 공습을 막아낸 것과 관련 민족주의를 주창하며 영국 국민들에게 한 말이다. 단재 선생의 조선상고사는 1924년에 쓰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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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 존 라베,
“용서는 해도 잊지는 말자”
1937년 남경대학살이 일어났을 때 독일 시멘스사의 남경 지사 지배인으로 일하고 있던 존 라베는, “용서는 해도 잊지는 말자”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존 라베는 당시 남경 내 외국인 보호구역인 ‘남경 안전구’에 머물고 있었으며, 안전구에 머물던 외국인들이 희생당한 사람들의 사체를 처리해주고, 중국인들을 숨겨주는 등 보호에 앞장서기도 했다.
우리 민족의 지도자였던 김구 선생도 중일전쟁이 터지던 당시 남경에 잠시 머물렀던 적이 있을 정도로 조선인들 또한 남경에 살던 사람들이 있었다. 다만 남경대학살 때 희생당한 사람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다.
사람들을 곤충을 죽이듯 숫자를 세어가며 내기를 하는 등 만행을 저지른 일제에 대해 2014년 7월 7일 민족항쟁 발발 70주념을 기념하는 행사장에서 중국의 시진핑은, “군인과 민간인의 희생자는 3500만명에 달하고, 중국의 재산 손실액은 1000억 달러 이상이며, 일제가 저지른 피의 학살로 인해 넓은 장강에는 붉은피가 넘실대고, 이는 인류문화 역사상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역사는 하나의 거울이며, 역사적 사실은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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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남경시의 남경대학살 기념관에는 ‘침화일군남경대학살‘이라 불리는 역사적 사실은 인류문명에 있어서 대재앙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전쟁은 만행을 낳고 인간성을 멸절시키는 야만적인 행위이며, 우리들은 나라가 약하면 침략당한다는 것을, 국가가 침략당하면 인민은 ’재앙‘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영원히 잊을 수 없다.라고 새겨 있다.
남경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중국 후난성에 사는 마오 잉즈(여, 21)씨는 지난 10월 5일 남경대학살 기념관 관람 후 “남경대도살에 대해서는 학교에서 배워 알고 있었지만, 기념관을 둘러본 후의 마음은 분노가 일어 한없이 무거울 뿐”이라고 말했다.
이 기획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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