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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리 봉탕샘-순창의 새암물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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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2월 25일(목) 10:21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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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복흥면 중리
형태 : 원형, 깊이 : 5m
백방산과 소백방신의 중간지점에서 동남쪽으로 내려온 산맥이 다시 솟아 오른 산이 투구봉(해발 529m)이다. 이 봉우리에서 동쪽으로 곱게 솟아오른 작은 봉우리가 옥녀봉(玉女峰)이다.
이 봉우리에서 동남쪽으로 개장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으니 상리, 중리, 창동이다. 이 세 개 마을을 행정리로 중리 마을이라 부른다. 마을 앞으로 복흥천이 서쪽에서 흘러 동북쪽으로 흘러가니 그 천변의 들이 이룩되어 농경사회가 이룩된 시절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김하서 선생의 후손으로 자연당 김시서 이후 13대손 김종섭이 이곳에 살았고 초대 대법원장 김병노의 출생지로 더욱 알려진 마을이다. 이곳 중리 마을에 김병노 대법원장이 어린 시절 마시고 자랐다는 “중리 옹달샘”이 있다.
옹달샘은 중리 마을 형성기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물을 뽑아내고 있다.
현재 복흥면 중리에 살고 계시는 구경순(70세) 할머니의 마당에서 물을 뽑아 올려 샘의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구경순 할머니가 이곳에 와서 생활한 지가 헤아리기 어려운 세월이 지났다 고 증언하시면서 자기가 이 집에 들어올 때 우물 주변에는 크고 널따란 학독이 우물 주변에 놓여 있었고 돌로 만든 큰 달구지 통이 놓여 있었다고 증언해 주시고 우물이 있는 현재의 집터에는 옛날 큰 갑부가 살았다는 구전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구경순 할머니의 젊은 시절에 동네 분들이 이른 새벽에 물을 길러 제일 먼저 조왕신에게 바치고 정성들여 비손을 하였다고 구술해 주신다. 가인 김병노 대법원장도 유년시절에는 옹달샘 물을 마시고 성장하여 청운의 꿈을 얻기 위하여 타향에 유학할 때까지 이곳에서 줄곧 생활하셨다고 전해오니 훗날 대법원장이 되실 때 마을 분들은 좋은 환경 속에서 좋은 물을 마시고 성장하였기 훌륭한 인물이 나셨다고 마을 자랑, 샘물 자랑을 수없이 하였다고 한다.
또 옹달샘이 다른 샘보다 깊어 여름에는 물이 시원하고 겨울에는 우물에서 김이 모락모락 솟아오르면서 너무 따뜻하기에 주위에서도 좋은 샘으로 이름이 났다고 한다. 또 여름에는 냉장고가 없는 시절이기에 두레박에 줄을 달아 샘 밑에 메달아 두고 음식 등 반찬을 관리하고 드셨다고 하니 참으로 기발한 아이디어였다.
옹달샘의 물은 깊은 땅속의 석간수로 양이 많기도 하여 마을 주민 모두가 식수로 허드렛물로 충분히 쓰고 남아돌았다고 한다. 그러나 마을마다 상수도가 들어와 각 가정에 들어가 꼭지만 틀면 물이 줄줄 쏟아지니 얼마나 편리한 세상인가? 그래서 마을 대부분 새마을사업 시 우물을 막고 복개하였으니 한심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전기가 장기적으로 들어오지 않고 정전이 된다면 수돗물을 마실 수 있을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 선조들이 제일 신성시 여긴 샘을 묻어버리다니. 그래도 중리 옹달샘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이제라도 늦지 않니 있는 귀중한 샘을 잘 관리하여 우리 후손들에게 깨끗한 청정수를 마실 수 있도록 다 같이 노력하자고 권장한다. .
*참고자료 : 중리회관 할머님과 구경순(70)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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