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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많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하루가 멀다하고 너무도 많은 것이 변화(變化)하고 있다. 이로 인하여 정신이 없을 지경이다. 그 중 몇 가지만 지적해보자 유행가(청소년들의 노래)를 들어보면 그렇고, 전자제품을 보면 그렇고, 사람 마음을 옛과 이제를 견주어 봐도 그렇다. 그 외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 변화는 올곧고 그른 것이 분명 있으나 그러나 이런 가운데에도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시시각각(時時刻刻) 변화하고 있는 것을 보면 한편 우려도 된다. 하지만 국민의 한사람으로써 변화하는 사회에 우선 반가움이 앞선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남과 북이 화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때도 있었다. 1965년6월6일(현충일)을사년에 일이다. 필자는 약500여명의 어른들과 약 백여명의 학동들과 함께 서당 공부를 하다 말고 새벽 열차를 타고 서울로 가 원미소용(遠美蘇慂)하고 화남북민(和南北民)하자는 구호를 외친 적이 있다. 이때는 한일회담이 한창 진행되던 시기여서 대학생들도 한, 일 회담 반대를 외치며 젊은 몸을 던져 그 회담을 결사저지(決死沮止)하고 있었다, 그러니 오죽이나 세상이 살벌했겠는가. 서울시내는 온통 최루탄(催淚彈) 가스로 뒤덮여있었고 청년들은 피를 흘리며 시위진압대의 손에 이끌려 가고 있었다.
그런데 난데없는 갓과 푸른 도포를 입고 머리를 삼단같이 땋고 댕기까지 맨 청소년기의 학동(學童)들과 남 노, 소(男老少)(500명)가 서울의 한 중심지인 태평로(太平路)를 뒤덮고 '미국과 소련의 꾀임을 멀리하고 남과 북이 화합하자!'라고 외치니 군사독재(軍司獨裁)치하에서 가만 둘 리가 없었다. 곤봉과 포승줄로 마구잡이로 구타하여 갓을 부수고 옷을 찢는 등의 형태로 서울의 각 경찰서로 연행되어 반공법위반, 집시법위반 등으로 일부가 구속 수감되고 일부는 歸鄕措置(귀향조치)를 당한 적이 있었다.
이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의 이야기다. 50년 전 만해도 남북한이 화합하리라는 것은 꿈에서나 생각해볼 문제지 도저히 그 당시의 상식(常識)으로는 남과 북이 화합하리라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그런 시기(때)가 있었다.
앞으로도 많은 어려움이 있을 줄로 안다. 하지만 강대국의 시기 질투만 없다면 우리 민족끼리 얼싸 안고 춤을 출 날도 올 것으로 믿는다.
同樂泰平이란 즐거운 일을 남과 북이 함께 즐거워하고 더 나가서는 세계가 함께 wmf거워 야 바로 태평한 세상을 이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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