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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3. 일본의 납골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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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화장장 건립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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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21일(수) 10:58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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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장장 필요하다’는 지역여론 대두. 님비 현상도…
2. 남원 화장장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우리지역 사람들
3. 일본인들의 납골 문화
4. 도쿄 묘지 단속 규정과 아오야마 묘지 등의 공공 묘지화
5. 일본의 공원화된 묘지들
6. 국내 유일 세종시 은하수 공원의 종합 장사 시설 연구
화장장 시설은 분명 혐오시설로 분류돼있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가까운 일본에서도 화장장시설은 혐오시설로 인식돼 있는 것을 취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되도록 주거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매장을 하던 우리나라 장사법과는 달리 마을입구 등 주거지 가까운 곳에 봉안을 하는 일본에서조차 화장장 시설은 혐오시설이었다. 하지만 일본 도쿄 시내 중심에 화장장과 납골시설이 버젓이 자리잡고 있다. 공원화된 자연 봉안 시설은 공원처럼 생활공간의 하나로 이용되고 있다. 화장장 시설이 핌피 시설이 되기는 힘들어도 언제까지 혐오시설로 남아있을 것인가?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 죽는다. 삶과 죽음은 가까이에 존재한다. 삶이 곧 죽음이고, 죽음은 곧 삶이다. 이런 간단한 명제 앞에서 우리는 여전히 이기적인 발상에 함몰돼있다.
이번 기획을 통해 우리지역에서 만큼은 님비시설(NIMBY-Not In My Backyard- 내 뒷마당에서는 안된다)이 아닌 핌피 시설(PIMFY-Please In My Front Yard-우리지역에 유치해 주세요.)이 되길 기대해 본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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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의 장례문화는 우리나라와는 좀 다른 편이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매장을 허용하고 있는 반면 일본인들의 장묘문화는 약 100%(99%)에 가까운 화장문화라 할 수 있다.
일본은 강력한 법적 규제를 통해 매장 문화를 바로 잡았다.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때 명종에 의해 토광묘 즉, 매장문화가 확산됐다. 명종 이전까지는 화장 등 다양한 장묘문화가 나타났으나, 명종에 의해 강력한 단속과 규제를 받으며 매장하는 관습이 확산, 고착화 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선사시대 이래 대체로 매장을 선호하는 장묘 관습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여러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는 있다. 그러나 고려 후기와 조선으로 들어서면서 국가의 종교 정책이 유교로 바뀌면서 확산된 매장문화는 조선 명종에 의해 더욱 견고히 토장의 관습을 뿌리깊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지금도 매장을 하는 주민들이 절반에 이르고 있다. 얕은 산마다 묘지를 써 놓아 날이 갈수록 우리 국토가 황폐화되어가고 있다.
언제부턴가 날이 새면 하나, 둘 늘던 묘지는 몇 년이 지난 지금은 산 천체가 묘지로 덮여있는 산도 있다. 전국 화장률이 78%에 이른다는 수치가 최근 언론사를 통해 보도됐으나, 우리지역은 여전히 절반 수준에 이르고 있다. 장묘문화는 그 나라 사람들의 오랜 관습과 생활 풍습에 기인한 것이라는 측면은 인정돼야 하지만, 세상은 세계화됐고, 자구촌은 하나의 생활권 안에 들어온 지 오래다.
세상이 변하고 있고, 세계가 지구촌이라는 하나의 생활권 안으로 들어와 있는 지금, 언제까지 풍습을 논하고 관습을 고집해야 하는지는 모를 일이다.
유교를 국시로 받아들인 조선이 공자를 숭상하고 흥망성쇠를 거듭한 중국을 천자의 나라, 어버이 같은 나라로 떠받들어오다가 종국에는 명나라, 청나라 침입을 불러들인 결과를 내고 말았다. ‘사대주의’가 판치던 당시의 시대정신 속에서야 유교의 영향을 받은 토장의 장례법이 당연히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러나 세상은 변했다. 사대주의가 없어졌다고는 할 수 없을지 모른다. 현재의 우리 문화는 미국 문화 속으로 재편돼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변해 중국을 천자의 나라로 섬기고 떠받들던 시대는 가고 없다. 그런데 지금까지 유교의 영향을 받은 토장을 고집하는 이유는 어디에 근거한 것일까?
유교 문화 속에서야 죽은 자도 산 자 처럼 극진히 모셔야 하는 대상이다. 또한 산 사람이 가진 게 많을 때는 가진 것을 죽은 자를 위해 할애하는 것도 인간의 도리를 따지는 유교문화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무덤 앞에 돌을 깎아 비석을 세우고, 단을 쌓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 생활 속에서 유교 문화는 이미 많은 부분이 사라졌다.
오히려 36년이라고도 말할 수 없고, 41년 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일제강점기를 너무나 오랫동안 경험한 우리 민족은 어떤 문화에 그 정체성을 둬야 하는지 조차 혼란스러운 게 사실이다.
진정한 우리 문화는 어디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인가? 삼국시대인가?, 통신신라인가?, 고려시대인가? 조선시대인가?
우리는 숱한 외침으로 우리 문화를 잃어버리고 산 지 오래된 민족이다. 우리 문화의 정체성초차 찾을 수 없는 게 현실이며, 어느 것이 우리 것이고, 어느 것이 남의 나라 것인지 조차 구분하지 못할 지경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대부분 일본의, 미국의, 중국의 문화가 혼재된 상태에서의 생활문화라 할 수 있다.
조선시대 명종에 의해 굳건해진 우리나라의 토장 즉, 매장 문화는 일제 강점기 초기 갑오개혁 등을 통해 일제 장묘 문화의 영향을 받으면서 화장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났다.
일본의 장묘 문화는 화장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는 역사적으로 우리 백제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인 나라다. 따라서 종교문화 또한 삼국시대의 근간을 이루던 불교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인들의 경우 죽음을 환생으로 생각하고 있다.
때문에 유교 문화가 충과 효를 강조하며 ‘시묘살이’ 등을 우선시 했다면, 불교 문화는 윤회를 통한 환생이 토대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일본 깊숙이 전해진 불교 문화적 장례문화는 겉으로 드러내는 의식과 장례 서비스 등의 겉치레의 확산을 가져오는 부작용이 있기도 하다. 때문에 죽은 자에게 많은 돈을 들이는 장례의식으로 변해왔다고 할 수 있다. 장례 서비스에 쏟는 허례허식은 최근에는 벽면형이나 잔디형의 납골 방식으로 변하면서 축소되고는 있지만, 여전히 유골함 위에 놓는 탑 형식의 재단은 허례허식의 극치를 보여주기도 한다. 저렴하게 판매한다는 탑식 재단의 경우가 엔화로 68만엔인데, 68만엔이면 한화로 700만원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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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화장문화가 발달해 자연의 훼손 없이 유체를 문명화된 방식으로 처리하고는 있지만, 백제문화와 불교의 영향으로 납골문화가 허례허식의 경향을 여전히 띠고 있다.
명치유신 이후 과거 일본은 강력한 행정력을 동원해 장례 절차의 간소화와 사설 묘지를 금지했고, 도시계획을 하면서 공동묘지를 도입해 사설 묘지 대신 공동묘지를 추진하는 데 성공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에 가보면 하나하나 쓴 개인 묘지 보다는 마을 공동묘지가 눈에 띈다. 또 일본인들은 사찰에서 장례를 치르기 때문에 납골을 사찰터에 하는 경우가 많다. 오이타현의 히타시의 경우에서도 볼 수 있었는데, 이런 경우는 대도시가 아닌 경우에 많이 행했던 장례문화다.
최근에는 화장을 하는 것이나 납골을 하는 것이 많아져 시내 한 복판의 고층 빌딩에 납골을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일본 도쿄의 시내 한 복판에 화장장 시설이 있다. 납골을 한 공원식 시설도 있다. 공원식 시설도 자리가 없어 고층 빌딩에 납골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그런 때가 오지 않는다는 보장은 누구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은 보편성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일본과 같아질 수도 있고, 문화가 비슷해질 수도 있고, 마음이 닮아갈 수도 있다.
일본인들은 묘지에 대해 혐오시설이라는 인식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한다. 사설 묘지를 쓸 수 없기 때문에 마을 어귀나 마을 뒤쪽에 공동으로 납골을 하고 있다. 시골의 경우는 이렇게 마을 어귀 등에 공동으로 납골을 하는 경우가 많다. 대도시의 경우는 시골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도쿄나 오사카 같은 대도시에서는 화장장 시설을 갖추고 납골은 공원식 영원을 만들어 공동으로 하고 있다. 시내 외곽이 아니라, 시내 한 복판에 공원과 함께 있다.
도쿄의 아오야마 영원 등이 그러한 방식을 하고 있다. 아오야마 영원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아오야마 공원과 일직선상에 위치해 있다. 도쿄 시민들은 아오야마 공원과 아오야마 영원을 굳이 구분하려 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아오야마 공원과 이어지는 도로가 아오야마 영원과 연결돼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전형적인 가족 묘지는 평면식 묘지가 주를 이뤘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는 묘지가 공원화되면서 벽형 묘와 잔디식 묘가 주로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보다 10년 앞섰다는 일본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은 물질문명이 아니다. 의식 문명이다. 또한 강력한 법적 규제다. 법적 구속력이 필요한 사안에 법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자유를 구속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수려한 우리의 산천이 무분별하게 훼손되고 있는데도 법은 유연하기만 하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신기한 광경으로 여기는 것이 바로 산에 묘지 투성이라는 것이다. 순창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묘지가 많다. 묘지가 보기 좋은 사람은 없다. 옛날에는 놀이터 등이 따로 없어 묘지에서 놀면서 커 온 사람들이 많았다. 그만큼 우리나라 묘지는 놀이터 대신 놀 수 있을 만큼 넓은 땅을 차지한다는 것을 반증하는 이야기다.
일본에서는 장례식장이 동네 단위 정도로 있다. 우리나라에서처럼 요양병원 등 병원에 장례식장이 있는 것이 아니다. 입원환자들의 감정을 배려한 것이라고 한다.
일본인들은 유체를 화장해 집 가까운 곳 공동묘지에 유골을 모신다. 마을마다 공동묘지가 있거나, 도심에서도 산 사람이 사는 곳과 가까운 곳에 유골함을 간직한다.
일본의 자연이 잘 보존돼있고, 마시는 물이 깨끗하다는 이유를 화장 문화에서 찾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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