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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화장장 건립 필요하다

1. ‘화장장 필요하다’는 지역여론 대두, 님비(NIMBY) 현상도…

2015년 10월 07일(수) 11:30 [순창신문]

 

보 / 도 / 순 / 서
1.‘화장장 필요하다’는 지역여론 대두. 님비 현상도…
2. 남원 화장장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우리지역 사람들
3. 일본인들의 납골 문화
4. 도쿄 묘지 단속 규정과 아오야마 묘지 등의 공공 묘지화
5. 일본의 공원화된 묘지들
6. 국내 유일 세종시 은하수 공원의 종합 장사 시설 연구



ⓒ 순창신문


담양 월산면에 있는 천주교 공원 묘원


“화장장 빨리 해야 한다”는 여론 봇물
그러나 “어디에 할 것인가”의 문제


“화장장이 필요하다”는 여론은 몇 년 전부터 나왔다. 그래서 군의원이 나서서 주민들에게 ‘화장장 시설 조성을 해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주민들은 화장장이 있어야 한다는 쪽에는 누구랄 것도 없이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어디에 할 것인가’라는 문제 앞에서 주민들의 반응은 완전히 달라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러다 차일 피일, 1년, 3년, 수년이 흘렀다. 최근 주민들은 ‘화장장 시설의 필요성’을 다시금 강조하고 있다. 이번 기획은 여기서부터 출발했다.
‘화장장이 필요하니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여론만 있으면 이야기는 쉽게 풀린다. 그런데 쉽지가 않다. 어디에 할 것인가의 문제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주민들 사이에는 ‘쌍치면이나 구림면에 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는가 하면, 읍 보건의료원 인근 등 도심에 해야 한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쌍치면이나 구림면을 주장하는 주민들은 여전히 화장장을 혐오시설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읍 보건의료원 인근 등 도심을 주장하는 주민들은 화장장도 하나의 생활공간으로 간주하기 때문인데, 화장장은 혐오시설인가? 하나의 생활공간인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나라 사람들이 묘지, 또는 화장, 봉안 등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을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오랜 옛날부터 묘지를 주거와 생활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해 왔다.
중년의 한 주민은 “어린시절에는 묘지가 놀이터였다. 묘지위에 올라가서 칼싸움하고 놀았다.”라고 회상했다. 또 다른 주민(78)도, “어렸을 때는 놀 곳이 따로 없어 공동묘지에 가서 놀았다”고 말했다. 이처럼 묘지는 우리 생활 속에 존재해 왔다.
놀이터가 없던 시절, 아이들이 묘지에 가서 놀았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묘지를 공원화 해 생활공간도 되고, 묘지 및 봉안시설로도 이용하고 있는 곳들도 많이 있다.
의식의 전환만 있다면 수십년 앞을 바라볼 수 있다. 산자와 죽은자는 하나의 생활공간에 존재할 확률이 그렇지 않을 확률보다 높다. 갈수록 편리함을 추구하는 사람들에 의해 묘지 및봉안시설이 산 사람들의 생활공간 가까이에 자리잡을 이유는 우리나라보다 앞서간 나라들의 사례에서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다.
당장의 반응만으로 정책이 결정되면 수년 후에는 또다시 수정돼야 하는 근시안적인 정책결정은 환영받지 못할 수도 있다. 수년 전 읍내권에 장례식장이 들어설 때에 이를 반대하지 않은 주민들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가까운 읍내권에 있는 것을 환영하고 있다. 주민들은 면단위에 멀리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편리함이 인식 기준의 잣대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혹자는 말할 것이다. 장례식장과 화장장은 또 다른 시설이라고.
장례식장이든 화장장이든 산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주는 것은 마찬가지다. 유체를 안치해 놓는 시설이나, 태우는 시설은 크게 다르다는 것인가?
어느 곳을 선택하든 그 선택의 중심에는 주민들이 있어야 한다. 주민들의 여론이 충분히 반영된 장소가 선택돼야 한다는 것에 반대의견을 내놓을 주민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선택의 문제는 주민들의 몫이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의 산천이 묘지화되고 있는 현상에 대해서는 인식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물 맑고 경치가 좋기로 알려진 우리나라의 풍광좋은 산천이 인식의 전환을 못해 흉측한 묘지산으로 변하고 있다. 담양에 있는 천주교 공원묘원은 수십만평에 이르는 산이 아예 공동묘지로 변하고 있다.
천주교가 처음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 제사와 매장 방식을 허용하고 나서야 정착될 수 있었던 역사적인 스토리가 있지만, 세상은 변해가고 있고, 종교의식조차도 옛 사람들과 현대인은 다르다. 또 달라지고 있다. 종교적 차이를 넘어선 앞 선 매장문화의 정착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왜 묘지에 더 큰 봉분, 더 큰 비석을 세우기 위해 많은 돈을 들이는 것일까? 단지 옛날부터 내려오고 있는 전통문화라는 측면에서 바라봐야 하는 것인가?
우리민족의 전통은 무엇이었는가? 기본적으로 우리민족은 살고 있는 집터의 길흉화복에 따라 사는 사람의 운명이 좌우된다고 믿었다. 묘지도 그 터에 따라 죽은자의 행복이 좌우된다고 믿었으며, 이러한 의식은 곧 ‘죽은자의 집’이라 할 수 있는 무덤과 무덤 부속물에 거금을 들이는 사치적인 요소로 변모해 왔다.


우리민족의 장례문화는 어떻게 이어져 내려왔나?

우리는 최초의 인류가 살았던 선사시대부터 유체를 처리하는 장례의식이 존재했었다는 점에 착안할 필요가 있다.
구석기인들은 가족이 세상을 떠나면 자신들이 사는 동굴에 유체를 묻었다. 이후 신석기 시대에는 자연적인 신앙의식에 따라 장례의식도 좀 더 복잡해졌다. 대표적인 것이 유체의 팔다리를 펴서 반듯한 자세로 묻는 것이었다.
원시적인 국가 형태를 갖춘 청동기시대에는 고인돌이 나타났다. 고인들은 고창지역에 많이 분포돼있어 고인돌의 형태를 확인할 수 있는데, 거대한 돌을 사용한 무덤 형태는 청동기시대 내내 우리나라 대부분의 지역에서 이뤄졌다.
그러다 삼국시대에는 지배층이 무덤을 통해 자신의 신분과 힘을 과시하는 무덤의 형태가 등장했다. 특히 고구려에서 나타난 ‘적석층’은 땅을 평평하게 고르고, 약 1m정도의 단을 만들어 목관을 둔 다음에 그 위에 돌을 쌓아 무덤을 만들었다.
백제시대의 무덤은 백제가 전성기를 이루며 지금의 서울인 한강 유역이 주활동 무대였던 때와 한강유역에서 밀려났을 때가 다르게 나타났다. 즉 백제 수도가 바뀌면서 서울과 공주, 부여에서의 무덤의 모양이 다르다. 서울은 분구(噴丘)안에 시신을 안치한 ‘토축묘’ 형태였으며, 공주는 벽돌을 쌓아 만든 ‘전축분’, 부여는 판상석(板狀石)으로 만들어진 ‘횡혈식 석실’이 만들어졌다.
또 신라의 무덤은 ‘적석목곽분’으로, 구덩이를 판 지하나 지상에 나무관을 놓고 그 위에 무겁게 돌을 쌓은 뒤 흙을 덮어 만든 형식이었다.
그러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면서 장례문화는 큰 변화를 보였다. 가장 큰 변화는 불교의 영향으로 화장문화가 확대되기 시작한 것이다. 화장장이 늘자 골호가 새로운 장례용품으로 나타났고, 다양한 형태의 골호와 오늘날의 납골함 형태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고려시대 우리민족은 유교를 바탕으로 한 통치체제 아래서 불교 이념이 정신적인 부분을 지배했다. 따라서 대부분 흙으로 만든 ‘토총’과 불교식으로 화장하는 것 등이 유행했다. 그러다 고려 중·후반기에는 무인집권시대가 되면서 유교식 장례문화가 형성되기도 했다.
그러다 조선시대에는 매장 형식의 장례문화가 완성됐다. 지금도 우리에게 익숙한 매장형식의 문화가 명종의 엄명에 의해 국가적인 차원에서 강제적으로 실시됐다.
왕명이 곧 법이었던 조선시대, 명종은 ‘묘를 세우고 제사를 지내지 않는 자는 잡아들이라’는 명을 내렸던 것이다. 이 때문에 국가에 의해 강압적인 장묘문화가 생겼으며, 국가차원의 강압적 장례문화는 점차 확대돼 매장문화가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조선시대 명종에 의해 국가차원의 매장문화가 형성된 이래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조선 명종에 의해 확산된 ‘토광묘’

땅을 파고 나무로 된 관이나 돌로 된 관을 만들어 유체를 넣은 후 파놓은 땅 속에 관을 묻는 것을 매장이라 하며, 흙 속에 묻는다하여 토장이라 한다.
매장 풍습은 인류가 집단생활을 하면서부터 시작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우리나라 곳곳에 흩어져 있는 유적들로 미뤄볼 때 매장문화가 선사시대 이래의 전통적인 장례법임을 알 수 있다.
고려후기부터 생성된 유교문화 장례법은 조선시대까지 이어졌다. 특히 조선 명종은 불교를 억압하는 정책으로 화장을 금지하고 유교식 장례를 강력하게 시행했다. 때문에 유교식 매장문화가 나라 전체에 퍼지며 현대에까지 이어져내려 오고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매장 문화는 종교와 정치의 결합에 의해 생겨났다. 지배계층이 누구였냐에 따라 매장의 풍습도 달라졌다. 국가가 정한 기조가 무엇인가에 따라 불교와 유교의 문화가 나라의 관습을 지배했다. 국가정책과 생활문화의 관련성은 종교적 경향과 괘를 같이했다.
고려 때 국가정책에 의해 흥하던 불교문화는 고려 후기에 들어서면서 유교 문화로 바뀌었고, 유교의 생활문화는 유체를 처리하는 방식의 하나인 매장문화를 확산시켰다.
특히 조선 명종에 의한 매장문화의 확산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시대가 요구하는 주검 처리 방식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 순창신문


▲ 풍산면- 높지 않은 산이지만 묘지로 덮여 있다.

매장 문화와 화장 문화

매장문화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사람들은 매장을 통해 살아있는 자손과 조상의 관계가 계속 이어지며, 조상의 묘를 잘 쓰면 복을 받는다는 생각에서였다. 이러한 생각 때문에 풍수지리를 잘 아는 전문가에게 물어 무덤의 방위와 땅의 모양을 보고 무덤을 쓰고 있다. 우리나라의 매장방식인 분묘는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고려 후기부터 불교문화를 배척하고 유교문화를 받아들인 국가 정책에 의해 중국의 ‘주자가례’에 의한 분묘 형식이 전해졌다. 재산과 계급에 의해 묘의 크기가 정해지고, 그것도 모자라 분묘 옆에 석조물과 묘비를 세우는 전통이 확산, 계승돼 내려왔다.
이처럼 유교 문화에 의한 매장 방법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났다. 어떤 지역에서는 관 채로 매장하는 방식이 성행했는가 하면 또 다른 지역에서는 네모지게 구덩이를 파고 관을 벗겨 시신만 안치한 다음 나무와 해충, 바람에 의한 훼손을 막기 위해 흙 자지기를 하거나 회 다지기를 하면서 봉분을 만들었다.
또 여기에 집안에 따라 묘비와 망주석(무덤 앞의 양쪽에 세우는 한 쌍의 돌기둥), 상석(무덤 앞에 제물을 차려 놓기 위해 넓적한 돌로 만들어 놓은 상)을 두기도 한다.
무덤에 대한 견해는 크게 두 가지로 집약된다. 하나는 ‘사체에 대한 처리’라는 견해이고, 또 하나는 ‘사람의 기념적 형상물’이라는 견해다. 부패해 악취를 풍기는 사체에 대한 처리를 위해 무덤이 생겨났다는 설이나, 이 세상에 살다간 흔적을 남기기 위해 무덤이 만들어졌다는 설 모두는 시체에 대한 의미를 부여한다는 측면에서는 같은 맥락이지만, 어쨌든 매장은 죽은자의 생각이 아니라 산 자의 판단 방식이라는 점이다.
사체를 처리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흙 속에 묻는 ‘토장’과 바위나 돌에 사체를 얹어놓고 까마귀 등이 처리하게 하는 ‘풍장’, 바닷물 속에 사체를 던져두는 ‘수장’, 불을 이용하는 ‘화장’이 있다.
화장문화는 시신을 불에 장사지내는 방법으로 뼈를 추려 항아리나 상자에 고이 넣어서 땅에 묻기도 하고, 가루를 강이나 산에 뿌려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는 문화로, 화장 문화야 말로 조상 대대로 내려온 우리의 전통 장례법이라 할 수 있다. 불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 고려를 거쳐 성행해 온 전통적인 장례법인 것이다. 미국에서는 1876년 워싱턴에서 미국 최초의 화장터가 건립됐고, 일본은 100%에 가까운 화장률을 나타내고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연재되고 있습니다.

이정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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