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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의 거룩한 이름이여~ 영원하라! / 광복절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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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년, 순창신문이 그 뜻을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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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8월 19일(수) 14:21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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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처는 올 ‘국군발전특별기획전’을 열고 의병 및 광복군 등 나라를 위해 헌신한 의사들을 발굴해 독립유공자로 이름을 올렸다.
우리지역에도 수많은 의사와 지사들이 있다. 이미 세상에 이름이 알려진 면암 최익현 선생을 비롯 설진영 선생 등과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김선여, 임백, 김일두 선생 등 일일이 나열하기 힘든 구국 투사들이 있다.
올해로 광복 70주년을 맞은 군민들의 가슴에는 목숨을 바쳐 나라를 구한 지역 구국 투사들의 거룩한 이름이 감사와 송구함으로 자리잡고 있다.
본지는 학문이 높고 구국의지 또한 강했던 최익현 선생을 비롯, 국가보훈처로부터 독립장을 표창 받은 김일두, 김선여 선생과 양춘영 의병장, 남겨진 사적 기록이 없어 아들 임대량과 함께 순절했지만 그 역사적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임백 지사 등에 대해 지속적인 조명을 해나가고자 한다. 또한 임백 지사의 발자취를 알고 있는 후손들의 연락이 있기를 함께 기대해본다. <편집자주>
27살의 의병 최산홍, 꽃다운 나이로 지다
1990년 3월 1일 ‘건국훈장 국민장’ 추서
훈장 받을 후손조차 없어…
의병 최산홍은 1883년(고종 20년)에 구림면 율복리 통안리에서 태어나 잡화상을 하며 살았던 것으로 전해졌으나, 최산홍의 가족관계나 친인척, 성장기 등에 대한 일화는 전해지고 있는 것이 없다.
다만 의병활동을 하다 붙잡혀 구금된 1909년 12월 27일 광주재판소 전주지부의 재판기록에 나타난 부분을 통해 그의 행적을 알 수 있다.
일제는 대륙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 조선 점령의 야욕을 오랫동안 키워오다 1905년 11월 실질적으로 우리의 주권을 빼앗은 을사보호조약을 강제로 체결했다.
을사보호조약 체결 이전에는 을미사변과 군대 해산 등의 일제의 강제적인 침략행위가 노골화 돼 있었다. 파란만장한 역사적 위기를 겪으며 을사보호조약 강제 체결에 당면했던 우리 민족은 을사 오적을 내치고 잃어버린 국권을 회복하자는 함성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이런 함성은 피끓는 궐기가 되어 ‘의병’이라는 이름으로 분연히 일어났다.
우리지역 순창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올 국가보훈처에 등록된 독립유공자만 해도 60여명이 넘고 있는 것만 봐도 의병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가장 이름이 많이 알려진 면암 최익현 선생의 의병 활동에 힘입었던 우리 지역 선비나 민초들은 수만명의 목숨을 빼앗긴 남원산성 전투 및 인근 담양, 고창 등지의 전투에서 초개같이 목숨을 버리며 의병활동을 펼쳤다.
을사보호조약이 있은 뒤 1906년 구한말의 거유(巨儒)였던 면암 최익현 선생은 당시 74세의 고령으로 호남으로 내려와 돈헌 임병찬과 함께 태인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800여병의 의병을 규합한 면암은 앞을 가로막던 왜적을 물리치고 순창에 내려와 구국항쟁을 벌였다. 이런 면암의 활동은 전국의 유생 및 민초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우리 지역에서도 의병장으로 이름을 떨치며 혁혁한 공을 세운 이만 해도 여러 명이다. 양춘영, 김상기, 국동완 등의 의병장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수많은 민초들이 일어나 손에 창과 칼을 들고 왜적을 막아냈지만, 그에 관한 기록이 없어 정확한 인원을 파악조차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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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순창신문 | |
국가보훈처에 등재된 독립유공자 수는 60여명이나 그 수는 더욱 많다 할 것이다. 일제의 재판 기록에도 남아있지 않아 그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의병의 수는 얼마나 더 많을 것인가?
다행인지 최산홍의 경우에는 일제에 붙잡히는 몸이 돼 재판을 받았고, 재판 기록으로 인해 그 행적을 짐작하고, 그 공이 후세에 전해지니 이를 다행이라 해야 하는 것인가….
최산홍은 1906년 10월 120여명을 규합한 의병장 이경춘이 이끌던 의병대에 가담해 활동했다. 그 때 그의 나이 23세였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최산홍은 1907년 11월부터는 임실 출신인 이석용 의병대장 막하에서 임실 및 남원, 진안, 용담 등지의 고을을 돌며 왜적과 대치했다.
1908년 1월 9일 밤에는 부하 10명과 함께 임실군 강진면 갈담리에 가서 김대춘과 김봉근을 시켜 변대규를 연행해 군자금을 내라 하고, 이에 불응하자 변대규 집으로 가 엽전100냥과 백목 3필을 몰수해 군자금으로 사용했다. 또 그해 3월에는 임실군 상동에서 이석용 의병대장의 작전 지시에 따라 임실읍의 수비기병대와 순사주재소를 습격하기로 계획하고, 이석용 의병대장과 100여명의 의병 대원이 모여 수비기병대와 순사주재소를 습격했다.
이 기습으로 기병 1명을 사살하고 2명을 부상케 했다.
최산홍은 면암 최익현 선생 수하에 있던 양춘영 의병장과 함께 순창 회문산을 근거지로 의병 활동을 하기도 했다. 양춘영 의병장 수하의 중군장 직책을 맡고 의병활동을 하던 최산홍은 1909년 10월께는 총기 200정과 부하 5~6백 명이라는 대부대를 이끌고 함께 임실과 순창군 일대를 무대로 활동했다. 이밖에도 1908년 음력 8월에는 구림면 화암리 뒷산에서의 일본 순사 및 헌병대와의 교전, 9월경 화암리 앞산에서의 전투, 1909년 풍산면 죽전리에서의 전투, 음력 2월경 회문산 기슭 산내리에서의 전투, 남원 수비재에서의 왜적과의 전투 등이 일제의 재판 기록과 양춘영 의병대장의 기록에 나타나 있다.
의병 투사 최산홍은 1909년 10월 10일 통안리의 허기삼의 집에서 왜적에게 체포, 전주로 이송됐다. 같은해 12월 27일 광주재판소 전주지부에서 폭동 및 모살, 강도, 방화 등의 죄명으로 교수형을 받았다.
최산홍의 나이 27세였다. 꽃다운 젊은 나이로 망국의 한을 가슴에 안은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왜적은 그에게 ‘내각고시 50호, 1910년 4월 30일 광주감옥 전주분감에서 교수형을 집행했다’며 당시 내각총리대신인 이완용의 이름을 붙여 관보에 고시했다.
최산홍에게는 1990년 3월 1일에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의 공훈을 신청한 사람은 후손이 아니었다. 최산홍의 훈장을 받을 후손조차 없었다. 나라의 위기 앞에 초개같이 자신을 버린 독립 투사들의 애국충정이 빛을 보지 못한 채 그 거룩한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고 있다. 또한 그들의 한 많은 넋을 위로해줄 충혼비 하나가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라는 게 지역민들의 반응이다.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순창) 명단>
순창을 본적으로 한 독립유공자들은 총60여명이 넘고 있으며,
먼저 20명의 이름을 공개함.
1 성명 : 정순환 한자 : 鄭順煥 이명 :
생년월일:1901-06-01 사망년월일:1961-12-10 운동계열 : 3.1운동
본적 : 전라북도 순창 淳昌 南溪
2 성명 : 양영준 한자 : 梁永俊 이명 :
생년월일:1882-05-10 사망년월일:1951-09-28 운동계열 : 의병
본적 : 전라북도 순창 淳昌 白山
3 성명 : 김윤옥 한자 : 金允玉 이명 :
생년월일:1868-00-00 사망년월일:운동계열 : 의병
본적 : 전라북도 순창 龜林 南井
4 성명 : 정순환 한자 : 鄭順煥 이명 :
생년월일:1901-06-01 사망년월일:1961-12-10 운동계열 : 3.1운동
본적 : 전라북도 순창 淳昌 南溪
5 성명 : 양영준 한자 : 梁永俊 이명 :
생년월일:1882-05-10 사망년월일:1951-09-28 운동계열 : 의병
본적 : 전라북도 순창 淳昌 白山
6 성명 : 김윤옥 한자 : 金允玉 이명 :
생년월일:1868-00-00 사망년월일:운동계열 : 의병
본적 : 전라북도 순창 龜林 南井
7 성명 : 박중학 한자 : 朴仲學 이명 :
생년월일:1856-00-00 사망년월일:운동계열 : 의병
본적 : 전라북도 순창 福興 水岩
8 성명 : 박동진 한자 : 朴東鎭 이명 :
생년월일:1899-03-09 사망년월일:1954-06-23 운동계열 : 3.1운동
본적 : 전라북도 순창 淳化
9 성명 : 윤재일 한자 : 尹在一 이명 : 尹自一
생년월일:1871-02-20 사망년월일:1910-04-16 운동계열 : 의병
본적 : 전라북도 순창 龜岩 錦坪
10 성명 : 옹태룡 한자 : 邕太龍 이명 :
생년월일:1892-07-24 사망년월일:1988-09-02 운동계열 : 의병
본적 : 전라북도 순창 淳昌 淳化 427
11 성명 : 옹권삼 한자 : 雍權三 이명 : 邕權三
생년월일:1864-08-16 사망년월일:1929-03-22 운동계열 : 의병
본적 : 전라북도 순창 九岩 千金
12 성명 : 이학진 한자 : 李學鎭 이명 :
생년월일:1927-12-25 사망년월일 : 운동계열 : 학생운동
본적 : 전라북도 순창 淳昌 南溪 687
13 성명 : 박춘경 한자 : 朴春京 이명 :
생년월일:1868-02-05 사망년월일:1954-07-28 운동계열 : 의병
본적 : 전라북도 순창 柳等 內伊 7~8
14 성명 : 김만룡 한자 : 金萬龍 이명 :
생년월일:1882-00-00 사망년월일: 운동계열 : 의병
본적 : 전라북도 순창 福興 林洞
15 성명 : 김병갑 한자 : 金炳甲 이명 : 金柄用, 金炳用
생년월일:1881-00-00 사망년월일 운동계열 : 의병
본적 : 전라북도 순창 福興 東棲
16 성명 : 김상룡 한자 : 金相龍 이명 :
생년월일:1869-00-00 사망년월일 운동계열 : 의병
본적 : 미상 미상
17 성명 : 김석기 한자 : 金石奇 이명 :
생년월일:1877-00-00 사망년월일:운동계열 : 의병
본적 : 전라북도 순창 福興 甑山
18 성명 : 김선여 한자 : 金善汝 이명 :
생년월일:1875-00-00 사망년월일:1910-00-00 운동계열 : 의병
본적 : 전라북도 순창 福興 上馬峙
19 성명 : 김성길 한자 : 金成吉 이명 :
생년월일:1873-00-00 사망년월일 운동계열 : 의병
본적 : 전라북도 순창 左部 下節
20 성명 : 정자영 한자 : 鄭自永 이명 :
생년월일:1868-00-00 사망년월일 운동계열 : 의병
본적 : 전라북도 순창 福興 亭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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