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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승일교와 박수근 미술관 등 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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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언론진흥재단 광주지사의 지역신문 기자 연수
'DMZ 스토리텔링' 함광복 한국DMZ연구소장의 맛깔나는 Story로~
한국언론진흥재단 광주지사의 지역신문 기자 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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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8월 12일(수) 15:22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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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3일 기자단은 철원의 승일공원 앞에 버스를 세우고 승일교 앞에 섰다. 함광복 DMZ연구소장의 설명이 이어졌다. 승일교에 얽힌 많은 이야기들이 함 소장의 입에서 술술 풀렸다.
승일교는 철원군 동승읍 장흥리와 갈말읍 내대리를 잇는 한탄강 위에 놓여진 다리다. 제2땅굴 인근에 있는 고석정은 임꺽정이 은신했던 곳으로, 승일교는 고석정과 멀지 않다. 등록 문화재 26호로 지정돼있는 승일교는 교량 노후로 인해 1999년부터 바로 옆에 놓여진 한탄대교를 이용하고 있다.
철원 지역민들은 사망한 북한의 김일성과 남한의 이승만이 반반씩 다리를 놓았다고 해서 승일교(承日橋)라 이름지었다는 것. 그러나 함 소장의 말에 의하면 현재,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한국전쟁 중 큰 공을 세우고 북한 포로의 신세가 됐던 ‘박승일 대령의 다리’라는 것이 박 대령의 아들을 통해 확인됐다는 것.
승일교는 1948년 한국전쟁 전 북한이 먼저 다리를 놓기 시작, 전쟁으로 인해 완공되지 못하고 전쟁 후인 1958년에 한국 정부가 이 다리를 완성한 것. 그래서 사회주의 건축양식과 자본주의 건축양식이 함께 표현된 유일무이한 다리다. 이와 같은 다리는 지구상의 어디에도 없는 것이란 게 함 소장의 설명이다. 1940~50년대의 사회주의 건축 양식은 분명 자본주의 건축 양식보다 정교했다.
승일교를 나온 기자단은 경상북도 울진 사람들이 어떻게 민간통제지역인 마현리에 모여 살게 됐는지를 들을 수 있었다.
1959년 9월 추석을 며칠 앞 둔 우리나라는 태풍으로 몸살을 앓았다. 특히 울진 사람들은 터를 잡고 살던 곳을 하루아침에 송두리째 잃었다. 69가구의 300여명의 울진군 사람들이 군인들의 트럭을 타고 옮긴 곳이 바로 마현리다. 마현리에 정착한 울진 사람들은 먹고 살 것이 없어 갖은 고난을 겪어야했다. 그러다 다행히 한 연대장의 지략으로 술을 빚어 팔게 되었고, 그것은 울진촌 사람들을 살리는 계기가 됐다. 울진촌 사람들의 이야기를 재밌게 풀어낸 함 소장의 설명으로는 그 연대장의 쌀 한 가마니가 300여명이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셈이었다. 함 소장은 실제로 도씨 성을 가진 할머니의 증언에 의하면 ‘마현리의 막걸리 냄새가 그윽하게 풍기면 군인들 ‘빳다’ 맞는 소리도 더 커졌다‘고 전했다.
기자단은 이날 울진촌을 지나 휴전선 155마일 중 정중앙에 있는 승리전망대로 향했다. 승리전망대를 향해 굽이굽이 오르는 버스 안에서는 여지없이 함 소장의 이야기 보따리가 호기심을 녹였다. 승리전망대로 가는 길은 경사가 심해 버스와 버스가 만나면 동시에 길을 가기란 어려웠다. 함 소장의 말에 의하면 승리전망대를 우리가 볼 수 있게 된 것은 양구군에서 길을 닦았기 때문이라는 것.
날씨가 좋으면 망원경을 통해 북한을 볼 수 있는 남북방한계선을 바로 마주한 승리전망대는 철책선을 사이에 두고 남한에서는 15사단이 철통같은 경비를 서고 있었다. 우리는 이날 흐린 날씨로 인해 모형으로만 북한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날씨만 좋으면 그곳 승리전망대에서는 10여km 거리에 있는 북한 아침리 마을의 농사현장까지 볼 수 있다는 게 담당 해설사의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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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전망대는 승리봉교를 지나 3km 정도를 좀 더 들어간다. 철원군 광산면 금동리에 있는 승리전망대는 금강산으로부터 70km가 떨어져 있는 곳이다. 20여 년 전부터 민간인에게 개방되고 있다. 남북방한계선을 기점으로 남과 북이 2km씩 떨어져있던 것이 북한이 먼저 1km를 남한쪽으로 당겨 남한도 북한쪽으로 800m를 당겼다는 것. 남북한의 밀고 당기기는 언제쯤 종식될 수 있을지가 우리 모두의 궁금증이자 과제였다.
함 소장의 말에 의하면 민통선 인근 사람들은 아침에 차를 타고 민통선 안으로 들어가 농사를 짓고 오후 5시에 나간다고 알려줬다. 지난 1976년~78년까지 극심했던 민통선 내의 토지분쟁 때문에 취재차 DMZ와 인연을 맺게 된 함 소장은 지금까지 DMZ를 돌고 있다.
승리전망대를 나온 기자단은 양구군이 조성했다는 박수근 미술관에 들렀다. 박수근 미술관은 우물과 수풀이 우거진 아름다운 시골 마을이라는 박수근로에 위치해 있었다.
DMZ스토리텔링 연수 내내 함 소장은 박수근 화가의 그림에 대한 이야기로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한국전쟁 때 피난길에 오르면서 묻어놓은 박수근의 그림이 DMZ 안에 지금도 묻혀있을 것이라는 설명에 기자단은 귀를 쫑긋 세웠다.
함 소장의 이야기 보따리는 박수근 미술관이 가까워지면서 더 풍부해졌다. 미술관 관계자나 혹자들은 박수근이 밀레의 ‘만종’을 보고 미술을 그리게 됐다는 말을 하고 있지만, 살아생전에 박수근은 밀레를 언급한 적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함 소장은, “박수근이 영감을 받은 것은 밀레보다는 소박한 한국의 미에서였다”고 말했다.
함 소장은 박수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박수근은 춘천의 오약방에서 점원으로 일하게 되면서 틈틈이 그림을 그렸다. 어린 시절 가난 때문에 학업을 잇지 못했다. 청년이 된 박수근은 재가한 아버지가 살던 김화군 금성면으로 찾아가 생활하던 중 옆집에 살던 김옥순이란 여자에게 반해 상사병까지 걸린다. 새어머니는 계모였지만 박수근을 챙겼다. 다죽게된 아들을 위해 새어머니는 김옥순 집을 찾았고, 혼인은 성사되기에 이른다. 상사병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박수근은 1940년 금성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박수근은 김옥순을 빨래터에서 처음 보고 반했던 것으로 전해지며, 박수근의 작품 ‘빨래터’는 더욱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김옥순은 당시 춘천여고를 나온 금성의 갑부 딸이었다. 금성 감리교회에서 결혼식을 한 박수근은 함경도청에서 일하게 됐고, 해방이 되면서 금성 중학교 미술 선생으로 미술교육을 맡기도 했다. 박수근은 금성에서 군의원을 하기도 했다. 6.25한국전쟁 이후 금성은 북한 땅이 되고, 이후 박수근은 1953년부터 서울 창신동 아뜨리에를 거처로 그림을 그렸다.
그 시기가 박수근이 작품활동을 한 가장 왕성한 시기였다. 그때 그려진 그림이 대부분 박수근의 유작이 됐으며, 박수근은 총 6명의 자녀를 두었으나, 4명의 자녀가 해방 전후, 한국전쟁 전후에 사망했다. 지금은 2명이 남아 부친의 뜻을 잇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김옥순은 여동생 남편의 등에 박수근 그림을 지고 피난을 떠났다. 김옥순은 당시 ‘나는 화가의 아내다. 그림을 어떻게 보존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며 새우젓 독에 그림을 돌돌 말아 넣고 뚜껑을 닫아 진흙으로 막고, 새끼줄로 묶어 등에 지고 피났다. 피난길에 더 이상 그림을 지킬 수 없었던 가족들은 새우젓 항아리를 땅에 묻고 남으로 이어진 남대천 개울을 건넜다. 그래서 “지금도 DMZ안 어딘가에 박수근 그림이 묻혀 있을 것”이라며, “어쩌면 영원히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르는 박수근의 그림을 모토로 박수근 미술관이 건립됐다”고 함 소장은 전했다.
박수근 미술관은 양구군이 미술인들의 도움을 받아 건립했다. 박수근 그림 한 점이 10억원이 넘는 것이 많았다. 박수근 미술관의 주제는 ‘낮달과 동산, 그리고 소년’이다. 함 소장이 미술관의 주제를 직접 지었다고 한다. 박수근 미술관에는 가난했던 박수근의 생가를 복원하지 않은 대신 생가를 형상화한 주춧돌 3개만 놓여있다. 건물 자체는 작지만 아주 아담하고 주변 경관과 잘 어우러지는 게 특징이다.
박수근은 1914년 양구에서 태어나, 1951년 생을 마감했다. 가난 때문에 학업을 잇지 못해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했다. 박수근의 화법에 대해 후세 사람들은 ‘서민들의 삶을 단순한 기법으로 가장 잘 표현한 한국의 천재적인 서민화가’라는 평가를 하고 있다.
한편 최근에는 DMZ에서 목함 지뢰가 터져 국군장병의 다리가 잘리는 등의 심한 부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해 방송매체를 통해 연일 보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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