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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이 20년 후에도 살아남는 방법을 고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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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4월 08일(수) 15:16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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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0년 독일의 쿠텐베르그가 인쇄술을 발명한 이후 세계는 커뮤니케이션의 혁명에 휩싸였다. 인쇄기의 발명으로 중세사회에서 현세 사회로의 이전이라는 시대적 변혁기를 논할 만큼 인쇄기의 발명은 세계의 지축을 흔드는 일이었다.
그렇게 발명된 인쇄기와 인쇄 기술은 또한 세계 문화의 흐름을 바꿔놓았다. 중세 시대의 사람과 사람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 비둘기를 이용하는 것에서부터 편지까지, 그러다 인쇄술의 발달로 다량 생산화 되고, 이러한 생산 방식의 변화는 정치, 경제, 종교, 사회의 문화를 송두리째 바꿔놓기에 충분했다.
또 인쇄술의 발달은 사람들의 생각까지도 바꿔놓았다. 다량생산이 되면서 산업사회가 됐으며, 토론 문화가 생겨났다. 민주주의의 개념이 도입되었다. 책과 잡지가 생겨나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는 최초의 신문이 만들어졌다.
신문으로 인해 네덜란드와 프랑스에서는 혁명이 일어날 수 있었다. 이처럼 신문은 세계인의 의식과 일상을 바꿔 놓았다. 우리나라에서는 한성순보와 독립신문 등의 최초의 신문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 문화정치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1920년대에 만들어져 1940년 폐간될 때까지 일제 식민통치의 앞잡이 노릇을 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조선과 동아일보는 허리춤에 칼을 차고 제복을 입은 일본 천황의 사진을 1면에 실으면서 더 크게 내기 위해 경쟁했다. 자국민의 이익을 대변해야 했던 언론이 일제의 앞잡이가 되고, 조선의 어린 학생들을 학도병으로 전쟁터에 더 많이 내보내기 위해 선동하는 등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일상적 이었다.
국민들에게 있어 언론은 보호장치가 아니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일제가 물러가고 미 군정체제가 되면서 우리 언론은 미국의 지배논리를 그대로 수용했다.
일본의 눈치를 보던 언론은 또다시 미국의 눈치를 보면서, 그 속에 국민은 없었다. 자본과 힘의 논리만 있을 뿐이었다.
4월 7일, 제59회의 신문의 날을 맞았다. 공익을 먼저 생각하고 공기로서의 공적 책임을 다해야 하는 신문이 힘과 자본의 논리에 잠식된 지 오래다. 기자라는 직분을 가진 사람들은 먹고 사는 문제를 우선시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공적 책임을 가진 사람들의 자세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기자들마저도 자본의 논리를 먼저 내세운다.
이를 두고 혹자는 언론인은 성직자적인 관점의 ‘에토스’(성질이나 태도-옛 그리스어)를 지녀야 맞는 것이라고 말한다. 진정한 언론인이 되고 싶은 사람은 이 말에 동의할 것이다.
기자들의 의식의 문제를 떠나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는 신문 산업이 사양화될 것이라는 예측 섞인 말들이 나오고 있다. 이것은 어제 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의 첨예화 현상은 앞으로의 미디어 시장을 어떻게 바꿔놓을 지 예견조차 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는 정보와 뉴스 생산에 독점적인 지위를 누려 왔던 신문의 영역을 파고들었으며, 신문의 영향력은 갈수록 하락하고 있다. 때문에 사람들은 미디어 환경의 변화로 종이신문이 사라질 위기에 있다고들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사람들은 빠른 시간 내에 신문이 없어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다변화될수록 사람들은 공론장을 원한다. 공동의 관심사에 대해 토론하고 주목하게 하는 담론이 필요해진다는 의미다.
사람들의 공동적인 관심사를 한 곳으로 모으는 일은 신문이 담당할 수 있는 기능인 것이다.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논의의 기회와 공간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신문의 기능이기 이전에 고유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신문이 가질 수 있는 영향력을 확대하지 못한다면 신문의 미래는 없다. 신문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고유의 기능을 잃지 않으면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는 것이다. 이것이 답일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고민해봐야 한다.
그러면 신문의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 언론이 국민들의, 주민들의 바람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다. 또 현안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과 다양한 논평을 제공하는 것이다. 언론계에서 강조하는 ‘저널리즘’에 더 한층 다가가는 것이다. 덧붙이자면 저널리즘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만이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신문이 살아남는 길일 것이다.
신문의 날을 맞아 감히 외치는 바이다. 신문이라는 종이의 한계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신문은 설득적인 내용을 담아내야 한다고. 여기에 공론장을 만들어 국민들의, 주민들의 논의가 생생하게 반영되는 여론의 장이 될 수 있도록 공론장의 기능을 확대해줘야 한다고….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무엇이 ‘보석’이고 무엇이 ‘돌’인지를 짚어줄 수 있는 신문으로, 저널리즘에 한 발 더 다가서는 신문으로 바로 서야만 20년 후에도 신문은 존재 할 수 있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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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화 기자 “” - Copyrights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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