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2026-04-17 | 10:02 오전

더불어민주당 전북특별자치도당 순창군수 후보

로그인 회원가입 기자방 원격
    정치/행정 교육 문화 스포츠 환경/보건복지 농업소식 종합 인물인사 칼럼 기획 특집 토론방 보도자료 지역소식 소식정보 포토 경제

전체기사

커뮤니티

독자투고

공지사항

독자마당

자유게시판

토론방

뉴스 > 기획

+크기 | -작게 | 이메일 | 프린트

3. 계곡, 봉우리마다 생생한 전설이 된 강천산과 강천사

강천산을 말하다
대한민국 최고의 공원으로 거듭나려면

2015년 02월 04일(수) 10:55 [순창신문]

 

ⓒ 순창신문



강천산이 유명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너무도 간단하다. 바로 맑은 공기와 맑은 물이다. 강천산이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공기와 물에 있다. 그러면 갈수록 유명세를 타고 있는 강천산에 대해 우리는 어떤 발전방향을 모색해야 하는가?
흔히 발전을 말하면, 무조건 새로 만들고, 더 편리하게 하고, 사람들이 원하는 방향대로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틀린 말이 아닐 수는 있지만 우리는 지금 눈앞에 보이는 편리함보다는 먼 미래를 내다보는 발전 방향을 지향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70년대가 어떠했는가? 소위 일본의 ‘농촌진흥운동’이 우리의 새마을 운동으로 바뀌어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문화사적인 가치가 말살됐다. 황토와 돌, 볏짚을 넣어 만든 강한 돌담길이 하루아침에 시멘트 담장으로 변해버렸다. 그러다 우리는 다시금 전통을 되찾고 싶어 한다. 슬로우푸드와 슬로우시티를 이야기한다. 강천산을 찾는 사람들은 그저 발에 닿는 흙의 느낌이 좋고, 보여지는 맑은 물이, 공기가 신비로울 뿐이라고 말한다. 최근 몇 년 째 기획취재를 하기 위해 경상도와 충청도, 경기도 지역 등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새롭게 안 사실은, 전국 어디를 가봐도 사람들이 순창은 잘 몰라도 ‘강천산’은 알고 있다는 것. 이처럼 유명한 강천산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군민 모두가 한마음으로 고민해봐야 한다. <편집자주>


강천산은 1981년 1월 7일, 전국에서 처음 군립공원으로 지정된 지역의 자랑이자, ‘호남의 강천산’으로 불리는 산이다.
순창 읍에서 팔덕면을 지나 정읍 쪽으로 약8km를 가게 되면 강천산 입구에 이르는데, 진입로 좌측에는 햇살이 물위를 비춰 은실을 깔아 놓은 듯 반짝이는 강천호가 위치해 있다.
강천산의 수많은 바위와 협곡에서 나오는 맑은 물은 내천과 중천에 모여들어 사람들의 손과 발을 즐겁게 해주며 유유히 강천호로 흐른다.
강천산은 팔덕면 청계리 996번지 일대에 펼쳐진 산으로, 해발 583.7m의 왕자봉과 해발 603m의 산성산 연대봉, 해발 578m의 광덕산 선녀봉의 세 개의 산맥이 모여 작은 협곡을 이루고, 수많은 바위가 계곡을 감싸 안으며 암봉과 계곡마다에 신비로운 전설을 품고 있는 산이다.
호남의 금강산인 강천산으로 들어간다는 금강교를 지나면 2.5km로 이어져있는 맨발산책로가 있고, 오른쪽 산 위에는 ‘장군의 투구를 닮았다’해서 붙여진 ‘투구봉’ 바위가 있다. 금강교를 건너기 전에는 ‘신선들이 바위를 밥상 삼아 놀았다’고 하는 신선계곡의 유상대와 수많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어깨동무를 하고 사진을 찍는 병풍폭포가 있다.
6.25 전쟁 당시에는 ‘죽은 송장이 계곡에 쌓여있었다’해서 ‘송장골’이라 불린 계곡과 천우폭포, 우작폭포, 어미 바위, 아비 바위, 거라시 굴, 상여바위, 책바위, 아랫용소, 윗용소, 장군봉, 구장군폭포 등 수없이 많은 바위와 폭포, 계곡의 이름이 신비로운 전설을 담고 있다.
또 바람이 불면 소리가 난다는 콩과에 속하는 자귀나무와 ‘여자의 혀놀림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어설수’라는 이름의 나무, 두 개의 나무가 한 몸처럼 붙어있다 하여 지어진 ‘연리목’은 강천산에서 볼 수 있는 진귀한 나무다.
또한 ‘새끼줄로 메주를 묶어 달아놓은 모습’이라 하여 지어진 ‘송음교’를 갓 지나 왼쪽에는 승려와 거지의 사연이 얽힌 ‘거라시 바위’가 또 하나의 전설을 안고 있다.
예로부터 강천산에서 흐르는 물은 ‘강천 약수’라 전해오며, 동의보감에서 이르기를, ‘서출동류수’라 해서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물은 ‘약수’라 칭했다는 말이 전해오기도 한다.
거라시 굴과 사리탑이 있는 부도전을 지나면, 물통골과 약수폭포에 이르니, 이곳에서는 피부병에 시달리거나, 어깨 아프고, 허리 아픈 사람들이 오월단오를 기다려 몸을 씻고 폭포물을 맞으며 놀았다는 이야기가 내려오고 있다.

지역민의 애환이 담긴 술항봉
지금은 먹거리 상가가 밀집해있는 옥호리와 옥호리 뒷산 봉우리인 옥호봉, 술항봉에는 지역민의 애환이 담긴 민담이 당시를 회상하게 해준다. 옥호리는 예로부터 자연풍광이 좋아 한량배들의 놀이터였던 것이 공원개발이 이뤄지면서 상가가 들어섰다고 한다. 상가를 지나 주차장 왼쪽 높은 곳에 서있는 바위가 ‘술항봉’인데, 술항봉은 옥호봉 왼쪽의 동쪽으로 뻗어 내려온 봉우리로, 공원 입구의 오른쪽 ‘고사리 채기산’ 뒤편 하늘로 우뚝솟은 봉우리인 천지봉을 향해 우러러보며 합장하고 앉아있는 모습이라 해서 ‘수령봉’으로도 불리고 있다.
술항봉 즉 수령봉은, 임진왜란 말기 일본인들이 지금의 막걸리를 ‘밀주’라 해 단속했던 시절, 마을 사람들은 일본인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누렇게 뜬 술항아리를 수령봉 봉우리에 숨겼다하여 ‘수령봉’으로 불리었다는 설이 있다.
술항봉 근처에는 진달래와 산벗꽃이 유난히 많아, 산벗꽃이 피는 4월에는 산벗꽃의 화사함에 반한 상춘객들로 물결을 이룬다. 옥호봉 근처에는 백철쭉이 만발해 해마다 4~5월이면 하얀 꽃물결로 산야를 덮고 있다.

ⓒ 순창신문


병풍바위와 갓바위의 전설
강천산에 발을 디디면 병풍바위를 보지 않고는 강천산을 봤다고 할 수 없을 병풍바위가, 거북바위, 거북폭포로 불린다. 도선교를 지나 오른쪽 산에 펼쳐져 있는 커다란 바위를 볼 수 있다. 이 바위는 편평하게 생겼다 해서 ‘편평바위’라고도 하고,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해서 ‘병풍바위’라고도 한다. 바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볼록한 등에 목을 쭉 빼고 있는 모습이 마치 거북이 모양을 닮았다 해서 거북바위, 거북바위가 폭포를 이룬다 해서 거북폭포로 불린다.
깎아지른 수십길 절벽 아래로 물이 떨어지는 병풍바위 아래에는 널따란 삿갓 모양의 암반이 놓여 있다. 이 암반은 ‘갓바위’라 불리고 있다. 갓바위에도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지금은 병풍바위 아래의 소가 그리 깊지 않으나, 밤이면 신선이 내려와 목욕을 하며 놀던 곳이다. 그러던 어느 날 신선이 목욕을 하기 위해 벗어놓은 갓을 깜박하고 그냥 올라가, 오랜 세월 주인을 기다리다 지친 갓은 그만 바위가 돼버렸다는 전설이 갓바위를 다시금 바라보게 한다.
병풍바위에 얽힌 전설이나 민담은 이밖에도 더 있다. 그 하나는, 강천산을 찾은 사람들이 병풍바위 밑을 지날 때마다 죄를 지은 사람은 ‘바위가 넘어와 덮칠 것 같다’는 섬뜩한 마음이 들면서 바위 밑을 지날 수 없었다고 전해져 내려온다.
또 죄를 지은 사람은 얇고 마음에 드는 돌을 골라 바위틈에 끼우고 죄를 뉘우치며 부처에게 사죄하면 죄가 없어졌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어 사람들의 마음을 끌고 있다.
강천산 호랑이에 얽힌 전설도 재미를 더한다. 강천산에 살던 호랑이는 새끼를 낳으면 병풍바위 아래로 떨어뜨려 살아 올라온 새끼만을 길렀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한 주역에 통달한 어떤 사람이 축지법을 써 자유자재로 병풍폭포에 앉아 가볍게 돌을 던지면 바위 위까지 올라가고, 무릎을 꿇고 바위를 오르내리고, 구림면에 사는 딸의 밥상을 차려주고 다시 내려오곤 했다는 전설도 내려오고 있다.
병풍폭포는 인공적으로 만든 폭포로, 2003년 암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폭포수로 만들어졌다. 사시사철 쉴 새 없이 물방울을 튀기며 흘러내리는 물에서는 무지개가 피어나고, 음이온도 발생하고 있다. 폭포수의 높이는 37m에 이르며, 폭포를 감싸고 있는 소나무들이며, 단풍나무 등에서는 숲의 향기로움이 피톤치드와 더불어 사람들에게 건강을 선사하고 있다.

신선과 선녀, 용의 전설을 품은 강천산의 용소
강천산에는 ‘윗 용소’와 ‘아랫용소’라 불리는 두 개의 용소가 있다. 강천사를 기점으로 위쪽에 위치해 있는 용소를 윗용소라 부르고, 아래쪽에 위치해 있는 용소를 아랫용소라 한다. 윗 용소에는 숫용이 살았으며, 신선이 밤마다 내려와 목욕을 했던 곳이라고 해서 ‘선담’이라 불리기도 한다. 아랫용소는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을 했다 해서 ‘옥녀담’, ‘선녀담’이라 일컬어진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에는 강천 계곡의 물이 구림으로 흘러, 순창읍이나 유등면, 풍산면 등은 해마다 가뭄이 들었다고 한다. 어느 해 농사철 무렵 읍에 위치한 논에서 홀어머니를 모시고 농사를 짓던 노총각이 심한 가뭄에 더 이상 농사를 짓기가 힘들어 신세를 한탄하며 이곳저곳을 파헤치며 물줄기를 찾고 있었다. 그 때 한 여인이 나타나 따라오라는 듯 걸음을 재촉하더니, ‘나는 섬진강 행가리 용소에 사는 용이다, 나를 좀 도와줘야겠다’고 말한 후, ‘땅에서 살기를 천년, 몇 년 전에 승천한 남편을 따라 올라갈 때가 됐는데, 윗 용소에 사는 본처 용이 먼저 승천하려하니 도와줘야겠다’며 도움을 청하자, 무섭고 겁이 난 노총각은 차마 거절을 못하고, 첩용이 시킨 대로 두 마리 용이 솟구칠 때 힘껏 칼을 휘둘러 본처용을 승천하지 못하게 했다. 노총각의 도움으로 승천하게 된 첩용은 노총각에게 아름다운 여인과 결혼해 살도록 하겠다는 말을 남겼고, 첩용의 말대로 노총각은 금은보화를 들고 나타난 여인과 결혼하게 됐다는 이야기가 내려오고 있다.

‘여승이 살아야 부찰이 된다’는 강천사
강천사는 신라51대 진성여왕 원년인 887년에 풍수지리설을 우리나라에 최초로 소개한 도선국사가 보광전 및 첨성각 등을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후 고려 27대 충숙왕 3년에 덕현선사가 5층 석탑을 중창하는 등 사찰이 크게 번성해 강천사 아래에 12암자를 지어 산세를 크게 확장한 것으로 전해져 내려온다. 그러다 임진왜란으로 12암자와 함께 소실됐다가 선조 37년, 1604년과 철종 6년, 1855년에 금용스님이 다시 지었다. 하지만 6.25전쟁으로 완전 소실돼, 1959년 지역출신인 김장엽 주지에 의해 복원,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선운사의 말사로 잇고 있다.
도선국사 창건 당시 한 때는 500여 승려와 12암자를 거느렸었다는 강천사는 도선국사의 말이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는데, ‘강천산의 계곡은 음기가 서려 네 군데에 수염이 없는 사람 즉, 여승이 살아야 도량이 정화되고 빈찰이 부찰이 될 수 있다’고 전한다.

이정화 기자  
“”
- Copyrights ⓒ순창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순창신문 기사목록  |  기사제공 : 순창신문

 

이전 페이지로

실시간 많이본 뉴스

 

더불어민주당 전북특별자치도당

최기순 순창군 장애인편의증진기술

순창군 읍·면민 협의회 4월 정

옥천5마을, 주민 화합 플리마켓

농업기술센터, 과수 화상병 원천

“나무에 새긴 마음, 군민과 나

순창군청소년수련관, 청소년 자

너의 탄생을 축하해♥ 장은우

순창군장애인복지관, ‘2026

대한노인회 팔덕면분회, 선진지

회사소개 - 조직도 - 임직원 - 윤리강령 - 편집규약 - 광고문의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 기자회원 약관 - 구독신청

 상호: 순창신문 / 사업자등록번호: 4078107159 / 주소: 전북 순창군 순창읍 옥천로 32 / 대표이사: 오은숙
mail: scn5850@naver.com / Tel: 063-653-5850 / Fax : 063-653-5849
Copyright ⓒ 순창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