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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어] 사목지신(徙木之信). [반의어] 식언(食言).假言=거짓말.
[출전]《史記》〈商君列傳〉
진(秦)나라 효공(孝公) 때 상앙이란 명재상(名宰相)이 있었다. 그는 위(衛)나라의 공족(公族) 출신으로 법률(法律)에 밝았는데 특히 법치주의(法治主義)를 바탕으로 한 부국강병책(富國强兵策)을 펴 천하 통일의 기틀을 마련한 정치가로 유명했다.
한 번은 상앙이 법률을 제정해 놓고도 즉시 공포(公布)하지 않았다. 백성(百姓)들이 믿어 줄지 그것이 의문(疑問)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앙은 한 가지 계책(計策)을 내어 남문에 길이 3장(三丈, 약 9m ‘세발’)에 이르는 나무를 세워 놓고 이렇게 써 붙였다. “이 나무를 북문(北門)으로 옮겨 놓는 사람에게는 십금(十金)을 주리라.” 그러나 아무도 옮기려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오십 금(五十金=돈)을 주겠다고 써 붙였더니 이번에는 옮기는 사람이 있었다. 상앙은 즉시 약속대로 오십 금을 주었다. 그리고 법령을 공포하자 백성들은 나라님을 믿고 법을 잘 지켰다고 한다.
어느 시대라 할지라도 정치를 하는 자들은 법을 지키지 않고 백성들에게는 법을 지키라고 강요한다. 그 것은 옳지 못한 정치의 기술이다. 방송을 시청하고 신문을 볼 때마다 느끼는 요즘 정치행태(政治行態)이다.
참고= 상앙 : 전국 시대, 제자백가(諸子白家)의 한 사람. 별명은 공손앙(公孫앙). 상군(商君). 위(衛)나라의 공족(公族) 출신. 일찍이 형명학(刑名學)을 공부하고 진나라 효공(孝公)을 섬김. 법치주의(法治主義)에 입각한 부국강병책(富國强兵策)을 단행하여 진나라의 국세(國勢)를 신장시킴. 효공이 죽자 그도 반감산 사람들의 참소에 의해 죽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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