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전봉준 장군과 8대부자 마을
|
|
순창문화원장 / 김 기 곤
섬진강 칠십리 문화기행
|
|
2014년 11월 20일(목) 13:20 [순창신문] 
|
|
|
섬진강 상류 쌍치천 따라 올라가면 전봉준 장군 피체지가 있는 쌍치면 피노리가 나온다. 피노리 마을은 옛 하치동면의 소재지이며 전해오는 말로는 이조중엽 선조 때 노론소론의 당쟁시 노론파를 피해 한사람이 은거 한 곳으로 이 마을이 형성되었기에 피노리라고 했다고 전해온다. 그 이전인 고려 축숙왕 때 하치등방이 이곳에 있었으니 그 이전에 마을이 형성된 것이라 보인다. 이곳은 담양 광주에서 전라감영에 가는 교통 중심지여서 여각이 많았고 마을이 큰 대촌이었으며, 전봉준 장군이 체포된 곳이기도 하다.
전봉준 장군은 1894년 4월 28일 전주감영에 입성하고 열강국 일본, 청국의 국내 혼란기라 잠시 쉬었다 청일전쟁이 일어나 일본이 승리하자 일본의 내정 간섭을 분쇄코자 동학군이 서울로 북상 10월 21일 천안 목천의 세성전투에서 관군(김홍집)내각과 외군의 연합군에 공주의 의금치 대전에서 폐전하여 계룡산으로 피란했는데 한 도승이 계룡산을 피하고 경천을 조심하라 해서 계룡산을 피해서 전라도에 심복 11명을 순창 접주 오동로의 안내로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
이와 같이 살기 좋은 곳에서 피신하여 지내는 전봉준 장군을 휘하에 있는 김경천이 밀고하여 관군에 포박하여 압송되고 이곳에 있는 도인 박남치, 김대성은 산으로 피신했으나 관군에 총살당했다.
그 장소가 이 마을 건너쯤에 지금은 농경지화 됐다. 이 마을에는 목씨와 임씨가 터를 잡았다고 전해오며 서산 유씨가 등왕 하게 살았으니 특히 구한 말 유영복이 34세의 나이로 일찍 죽고 그의 부인 기노영이 과부가 되어 3천석의 거부로 재산을 증식하여 피노리 유과부 하면 순창, 정읍, 태인, 담양 일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지경이었다.
또 유장열 부인도 당대 천석의 재산을 증식했고 순창제1고를 설립한 갑부 지산 김영무 선생도 이곳 출생이며 이곳 피노리는 8대부자가 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곳에 현재는 전봉준 장군의 피체지를 순창군에서 지어놓고 후세들의 교육장소로 활용되고 있으며 봄, 여름에는 야외활동하기 좋은 캠핑장으로도 활동되고 있어 청소년들의 수련장소로도 많이 찾고 있다.
|
|
|
|
순창신문 기자 . “” - Copyrights ⓒ순창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
|
|
순창신문
기사목록 | 기사제공 : 순창신문
|
|
|
|
|
|

|
|
|
|
실시간
많이본
뉴스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