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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성 원촌 배 나루터와 임진난 설화

순창문화원장 김 기 곤

2014년 04월 23일(수) 11:54 [순창신문]

 

ⓒ 순창신문

섬진강 마지막 항 포구로 알려진 순창군 적성면 원촌리 나루터 현재 적성원촌 적성교 밑에는 지금도 섬진강 맑은 물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건너편 화산에서는 “화산옹이” 묵묵히 서서 이곳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곳 적성면 원촌 나루터는 삼한시절 마한의 54개국 백제 때는 락평현 고려초기에는 적성현이 집무한 곳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임진왜란 때에 일본 사람들이 한반도 상륙작전을 하려고 여러 곳을 살펴보던 중 부산과 섬진강을 발견하고 왜군이 침입하여 원균 조경란 장군이 정유 8월 왜군 56,800명과 전투를 하다 정유년 8월 16일에 남원성이 함락되었고 아군 만여 명이 사망하였다.
왜군들이 섬진강을 발견하고 적성 나루터에 정착하여 남원성을 진격 함락시키고 어른과 어린아이 411명의 코를 베어 갔었다.
일본 품국선사에는 지금도 기록이 남아 있기에 가슴 아픔이 크다.
아군 1차 방어선을 화산과 책여산 사이가 협곡을 이루고 있고 적성강이 있기에 여러 날 이곳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이때는 섬진강 물이 항시 많이 흐르고 있어 왜군들이 배를 타고 섬진강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전투를 벌였다. 이때 정유재란과 순창의 수난이 시작되었다.
아군은 남원성이 무너지고 적성강 전투에서 패배하여 일부 의병은 동계 감 밭으로, 일부는 적성을 거쳐 순창읍으로 후퇴하고 있을 때 당시 순창군수가 무관출신 당상관에 있던 분이 순창군청을 지키고 순창 전체를 사수하여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세가 분리하여 강천산 쪽으로 후퇴하고 말았다.
일본 왜군들은 순창, 동계, 적성, 유등, 남원 등지에서 군량미를 보충하기 위한 식량을 약탈하여 순창 등지에 있는 백성들은 많은 고초를 겪었으며 관가에 있는 분들도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고 많은 고초를 받았다.
그 시절 순창지역과 남원지역에 있는 느티나무를 일본 왜군들의 손에 의해 배를 만들 제목으로 모두 베어 배에 싣고 섬진강을 통해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한다.
지금은 1940여년 경에 이곳에 다리가 놓여 옛 정취는 찾을 길이 없지만 지금도 적성강 항포구 자리에 배를 메었다는 버드나무가 있고, 주막 터가 남아 있다.
또한 이곳 원촌다리는 6.25 당시에도 미군들에 의해 포탄을 맞아 다리가 무너지고 상처를 입었다. 많은 수난을 겪어 오면서도 지금까지도 적성강물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순창신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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