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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삶과 예술공간으로서의 문래창작촌의 변모

철공소 골목이 예술촌으로…

2013년 10월 08일(화) 21:25 [순창신문]

 

↑↑ 파도 벽화를 그리는 화가의 모습-물감과 철판의 조화

ⓒ 순창신문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 있는 문래창작촌과 문래 예술공장은 치열한 삶속에서 탄생된 예술을 잘 보여주고 있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문래 창작촌은 문래역 7번출구와 이어져있는 철공소 골목이면서 또한 신선한 창작예술의 공간이다.
그림이 없는 철공소 골목은 그야말로 회색빛의 도시다. 그림이 삭막해보이는 골목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철공소 골목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골목마다 들려오는 절삭기의 쇳소리는 현대문명과 산업사회의 질주에 맞춰 그 쓰임새와 용도를 재단하며 규격에 맞는 크기와 모양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1960~70년대는 철강재의 메카로 자리매김했던 문래동이 80년대를 지나면서 쇠락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70년대만 해도 쇠를 다루는 기술은 부가가치가 높은 축에 속한 활황산업이었다. 철공소 규모가 크지 않아도 가공 기술만 있으면 일감이 넘치던 시절이었다. 그랬던 산업이 값싼 중국인력과 중국철재가 대량으로 수입되면서 문래동 철재단지는 쇠락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문래동 골목의 소규모 철공소는 하나둘 문을 닫게 되고 대규모화된 철공소만 그 명맥을 유지하게 된다. 살아남은 몇몇 대규모 철공소들은 값싼 중국 철재와 경쟁해 살아남기 위한 자동화 시설을 갖출 수밖에 없었다. 자동화시설에도 불구하고 문래동의 영화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남아있는 철공소에서 들려오는 절삭기의 쇳소리 속으로 다시 돌아와 빈 공간을 채운 사람들은 떠났던 철기공들이 아니었다.
값싼 임대료를 보고 모여든 예술가들이었다. 이들은 자생적으로 문화촌을 만들었다. 문래동에는 자생적으로 예술촌을 만든 이들과 서울시에서 지원해 만든 ‘문래공연예술네트워크’가 있다. 철공소의 싼 임대료 때문에 모여든 예술인들은 수십개의 작업실을 획득해 자유로운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이처럼 적지 않은 예술가들이 활동하고 있는 문래창작촌에서는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기 위한 거리축제와 전시회 및 공연을 자주 여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이 주로 만들어낸 예술작품들은 벽화나 철제작품이 많다. 서정적인 그림에서부터 자유분방하게 만들어낸 설치미술에 가까운 작품들이 사람들의 시선을 이끌고 있다.
철공소 건물들 1층에서는 휴일을 빼고는 절삭기의 쇳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2층과 3층은 예술가들의 창작공간이다. 1층도 낮에는 철공소 일이 주게 되지만 밤이 되면 예술인들의 창작공간이 된다. 때문에 문래동 철공소 골목의 풍경은 낮과 밤의 모습이 다르다.
따라서 어떤 사람들은 철공소의 철문에 그려진 벽화를 보기 위해 밤이나 일요일 저녁에 철공소 골목을 찾는다고 한다.
문래창작촌은 이미 서울시의 한 예술촌이 됐다. 서울에는 예술가들이 모여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집단촌이 몇 군데 있는데, 문래예술촌은 이제 서울시의 대표적인 예술공간의 하나가 됐다. 문래예술촌이 형성된 철공소 골목 길건너에는 서울시가 지원하는 ‘문래예술공장’이 자리해 있다.
문래예술공장은 지난 2010년 1월에 개관, 서울문화재단에서 직영하고 있다. 문래예술공장에서는 자체적인 공연 프로그램을 기획하거나 예술가들에게 공간을 임대해 창작발표를 할 수 있도록 한 공연예술네트워크다.
문래예술공장인 공연예술네트워크에서는 철공소 골목에 입주해있는 예술촌의 예술가들과 다원예술가, 전통예술가 등을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문래예술공장 1층에는 다목적 활용 작업장이 있어 일반예술가들이 색다른 작업장을 원할 때 대여해주기도 하며, 예술가들은 색다른 작업장을 매우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건물 2층의 공연장은 무대와 좌석의 구분이 없는 공연장으로 꾸며져 있다. 공연을 하는 사람들이 무대에 서지 않고 관객과 더불어 관객이 있는 곳에서 자유롭게 연극 등의 공연을 하는 곳이다. 무대가 없기 때문에 구분이 없다. 벽이 없다. 공연을 하는 사람이나 바라보는 관객이나 같은 곳에서 움직이고 바라보고 생각한다. 이들 예술가들에게는 거추장스러운 형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디서든 사람이 있는 곳이면 이들이 있다. 오직 자유로움으로 가변적인 예술을 즐기고 보여주며 함께하는 것이다.

↑↑ 삭막했던 철공소 거리의 변모.

ⓒ 순창신문



가난한 예술가들의 삶의 현장 문래예술촌


문래예술촌은 뉴욕시 브루클린 고와너스 지역을 많이 닮았다. 브루클린 고와너스는 오염된 바다로 인해 해양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들자 빈민가로 전락했던 도시다. 그런 고와너스에 가난한 예술가들이 입주하게 되면서 예술의 도시로 재탄생됐다. 수많은 여행객들이 예술의 도시가 된 브루클린 고와너스를 찾고 있다.
문래역 7번출구와 이어지는 철공소 골목의 주소지는 문래동 3가 58번지다. 70년대 호황을 누리던 섬유산업과 철강산업의 메카로 자리잡았던 곳이다. ‘문래’라는 지명이 실을 뽑는 ‘물레’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명했던 경성방직과 방림방적이 들어서면서 국내의 섬유산업을 이끌었던 곳이 문래동이다.
섬유산업과 더불어 철재상가가 들어서기 시작하는 1970년대 후반, 문래동의 철공소는 수백여 개에 이르는 점포들이 들어섰다. 하지만 철재산업의 영화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IMF 이전부터 쇠락하기 시작한 수백 개의 철공소들은 1980년대 이후 도심재개발사업과 IMF, 중국의 저가제품 등이 물밀 듯 들어오면서 대부분의 철공소들이 문을 닫았다. 1000개에 가까웠던 철공소들이 지금은 백여 개도 채 남지 않았다.
철공소의 빈 공간들이 즐비하게 남아있어도 세를 들어올 사람들은 없었다. 철강소 골목의 특성상 사무실 용도는 물론 어떤 용도로도 임대되기 힘든 곳이었다. 하루종일 이어지는 철공소 절삭기의 굉음과 망치질 소리를 견뎌낼 사람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곳에 예술을 해보겠다고 나타난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유명하지 못한 예술가들이었다. 창작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무명 예술가들은 창작시간을 쪼개 돈을 버는 일에 투자해야 했다. 이런 현실에서 비싼 전월세는 좌절감을 안겨줬으며, 예술에 대한 회의를 안기기에 충분했다.
때문에 문래동의 값싼 창작공간은 이들에게 행복을 주는 자유의 공간이었으며 행복한 삶의 공간이었다. 100~200만원의 보증금에 월10만원~15만원선의 월세는 서울에서는 구하기 힘든 가격이었다. 문래동 58번지 철공소 골목의 빈 공간들은 이렇게 새로운 주인을 맞으면서 채워지기 시작해 지금은 100여명이 넘는 예술가들이 활동하고 있는 예술촌으로 거듭났다.
브루클린 고와너스 지역이나 문래예술촌이 서로 닮은 건 예술촌 조성 과정뿐 만이 아니다.
브루클린 지역에서는 건물 지붕을 이용한 친환경농업을 실현하고 있다. 건물 지붕에 만들어진 친환경 농장에서는 친환경을 위협하는 살충제나 화학비료 등을 사용하지 않고 농산물을 생산해낸다. 생산된 친환경 농산물은 브루클린 지역의 고급레스토랑이나 식당, 마켓 등으로 팔려나간다. 예술의 도시답게 아름다움을 구가하는 시민들의 노력이 만들어낸 성과들이다.
문래예술촌의 친환경 농장 또한 브루클린 지역을 많이 닮아 있다. 온라인상의 카페를 통해 문래 철공소 건물 옥상으로 모여든 서울 시민들은 작품을 만들 듯이 농산물을 만들어낸다. 물론 친환경농산물이다. 비료나 살충제를 쓰지 않더라도 배추 포기는 단단하게 속이 꽉 찼다. 공동으로 작업을 해 생산해낸 농산물은 100여 회원들의 안전한 먹거리가 되고 있다.



예술가와 지역민의 삶과 예술의 무대
낮에는 철공소, 밤에는 예술공간


문래동 문래예술촌은 낮과 밤의 풍경이 다르다. 낮에는 작업복 차림의 근로자들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과 함께 절삭기의 쇳소리가 골목전체를 뒤흔드는 반면 저녁 6시 이후에는 예술가들의 작업실에 불이 켜지면서 본격적인 예술 작업이 시작되는 곳이다.
이렇다보니 예술가들과 철공소의 주인들이 서로 부딪힐 일은 없어 보이지만, 예술가들이 하나 둘 씩 문래동을 찾을 때 철공소 주인들의 심기는 더없이 불편했었다고 예술 관계자는 밝혔다. 그도 그럴 것이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철공소 골목에 예술가들이라니….’라는 거부감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랬던 철공소 골목이 언제부턴가 소통이 되기 시작했다. 철공소 가게의 주인과 예술가들이 서로의 삶에 대해 얘기를 시작하면서부터 문래동 58번지는 예술가와 철기공이라는 이질적인 관계가 아니라 서로에게 위안을 주는 사람 냄새나는 인간적인 관계로 다시 태어났다.
철공소를 직접 운영하는 김 모 철공소 사장은 예술과는 너무나 거리가 있어보였던 철공소 일을 하면서 ‘생활과 예술은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실감했다.
예술 자체가 삶의 연속이며, 삶은 곧 예술과 통해있다는 것을 문래동에 들어온 예술가들을 통해 알게 된 것이다. 생활인이 예술인이 되는 과정은 쉽지도 않지만 못할 것도 없었다.
김 사장은 예술인들과 함께 산악회를 만들고 커뮤니티를 형성하면서 생활과 예술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회화에서부터 댄스, 상황극, 조각, 디자인, 사진, 풍물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들이 창작되고 있는 문래창작촌은 아마츄어 예술가들의 보금자리임과 동시에 철공소 지역민들의 삶과 예술의 공간이다.

↑↑ 문래창작촌 벽화-바다로 나가는 거북이

ⓒ 순창신문

↑↑ 문래철공소 건물 옥상은 예술과 먹거리 공간이다

ⓒ 순창신문

↑↑ 문래예술공장을 찾은 공동취재단.

ⓒ 순창신문

이정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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