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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설공찬전을 통해 바라본 지역의 정체성과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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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우리’를 표현하는 것이 곧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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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01일(화) 23:47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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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문화자원이 관점을 달리한 해석으로 방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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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설공찬전 공연 포스터-설공찬전은 지난 2010년 1월 남산예술센터에서수차례 공연되기도 했다. | ⓒ 순창신문 | |
지역을 살릴 중차대한 지역 문화 컨텐츠가 지역 일각의 반대여론과 관점해석의 차이로 방치되고 있어 어려운 지역현실과 맞물려 답답함을 가중시키고 있다.
조선조 최초의 ‘금서’가 돼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금과면 매우리의 설공찬전이 ‘귀신이야기’로 치부되면서 수년간 방치되고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지역사회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그만큼 크면 아무리 좋은 사업이라도 피하고 보는 게 행정이다보니, 몇몇 사람의 반대의 목소리가 결국은 지역발전을 저해하고 있는 꼴이 되고 만 것이다.
다른 지자체들은 하고 싶어도 역사적 자원이 없어 못하고 있는 것을 우리 지역에서는 범국가적인 자원을 두고도 방치해놓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면서 ‘순창은 자원이 없다’, ‘강천산, 고추장 빼놓고는 딱히 개발할 것이 없다’고 말하고 있는 행정 또한 한심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가 모든 조건이 다 맞아서 쉽게 관광지가 된 것은 아니다. 관광지 개발에는 원래 위험요소가 따르기 마련이다. 또한 문화 관광지 개발은 장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과감한 투자가 역사의 축을 바꿔 놓듯이 과감한 결단 없이는 발전 또한 없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그 유명한 파리의 에펠탑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안다면 문화에 대한 투자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에펠탑은 1889년 프랑스 대혁명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건축가 에펠이 세운 320m의 철탑이다. 프랑스에서 에펠탑을 짓겠다고 했을때 국민들은 매우 냉담했다. 그저 ‘철로 만든 탑’이라는 사실에 국민들은 냉소적이었으며, 프랑스 혁명을 기념하는 이미지와도 맞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했다.
결국 반대에도 불구하고 에펠은 1년 남짓의 시간을 들여 에펠탑을 완성했고, 에펠탑은 이후 파리를 대표하는 명물이 되어 전세계인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에펠탑은 지금 전 세계여성들이 프로포즈를 받고 싶은 곳 1위에 올라와 있을 정도로 전세계 여성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21세기는 문화다’, ‘문화에 투자하지 않는 지역은 미래가 없다’라고 전한 일본 가나자와 시장의 말이 아니더라도 문화에 대한 투자는 바로 우리들의 삶 그 자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고 사람들은 믿고 있다.
이제는 설공찬전에 대한 재조명이 속력을 내야 할 때라고 사람들은 알고 있다. 한 두사람의 서로 다른 관점 해석이 주민 전체를 위한 공익적 측면을 막아설 수는 없다. 설공찬전이 재 조명돼 문화사업으로 발전돼 간다면 결코 설 씨 가문만의 영광이 아니다. 주민 전체의 소득과 직결되는 즐거움이 창출될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왜냐하면 ‘설공찬전 문화사업’은 순창 전역으로 확대될 것이며, 지역 전체가 ‘문화’라는 같은 맥락에서 연결고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문화프로젝트’가 가동될 것이며, 그럴 경우 순창은 전국에서 처음으로 지역저변에 깔려있는 문화유산을 테마로 한 문화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한 두 사람의 편협된 해석의 차이가 지역발전을 저해하는 일은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지역의 귀중한 문화유산을 왜곡된 시각으로 바라보고 이에 부화뇌동하는 사람들의 처세는 역사의 이름 앞에 지탄의 대상이 될 것임이 자명한 일이다.
지역문화유산은 그 자체로 거룩하며, 그 자체로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해의 방향에 휩쓸려서도 안 되고 휩쓸릴 수도 없는 절대적인 가치를 지녔다.
지역에서 나오고 있는 말인 “몇 사람이 득보는 일에 언론이 나섰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설 씨 집안의 일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이는 편협된 주장이다. 지역문화유산을 갈고 닦는 일에 이득을 따지는 일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또 지나온 우리의 문화라는 것은 어느 지역, 어느 집안과 연결돼 있지 않은 것이 거의 없다. 문화란 삶 그 자체에서 생성되고 보존되기 때문이다.
이명기 전라북도 공예협회장은 얼마전 전북방송 1분 논평에서 “문화산업 육성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문화산업은 신 성장동력”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한 바 있다.
지역의 문화는 한 두 사람의 입맛에 따라 개발이 결정되는 사안은 아니다. 금과면 설공찬전을 ‘귀신의 이야기’로 치부해 버리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그들만의 생각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이 맞다. 지역을 살릴 수 있는 역사적인 컨텐츠를 개인적인 주장으로 소멸시키는 일은 역사를 바르게 대하는 자세라고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자체사업은 선점이 먼저다
어디에도 없는 귀신문화 컨텐츠로 지역발전 이끌 때…
귀신설화나 소설은 우리 조상들의 삶의 애환을 담은 우리민족의 삶 자체의 행동 문화의 하나로 해석될 수 있다. 38도에 육박하는 무더위가 찾아오는 여름이면 우리는 공포영화 관람이나 공포체험을 통해 무더위를 식히는 행동방식이 있다. 공포감이 높을수록 극대치의 카타르시스를 주는 경향이 있어 우리는 최대치의 공포를 조성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도 한다.
무서울수록 영화는 최대의 인기를 얻을 수 있으며, 공포감은 클수록 더 큰 동기를 부여한다.
우리가 어렸을 때 들었던, 그래서 그 공포감이 호기심으로 작용했던 ‘장화홍련전’은 동심을 키워주면서도 권선징악을 이야기로 배웠던 동화였다. 장화홍련전 같은 설화를 통해 우리는 ‘새엄마’는 모두 나쁘고 악독하다는 고정관념을 몸에 익혔다. 그러면서도 사람이 죽으면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한정된 사람에게는 보일 수 있다는 설정 등이 재미와 호기심을 끌어내며 그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가게 하는 무엇이 있었다.
우리문화 속에 나타나는 귀신은 여러 가지 특징을 가진 귀신들이었다.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악귀에서부터 사람들을 돕고 보호해주는 수호천사 같은 귀신도 있다.
요즘 높은 시청률을 보이는 드라마 ‘주군의 태양’은 여주인공이 귀신을 볼 수 있다는 점을 설정해 감동과 재미를 주고 있다. 드라마 ‘주군의 태양’을 보는 시청자들이 ‘귀신이야기’라고 치부하며 드라마를 폄하하는 일이 없듯이, 설공찬전이 한낱 귀신이야기로 치부되는 일은 시대에 뒤떨어진 진부한 사고로 격하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귀신을 보는 사람들의 생각이 시대에 따라 변화하기 때문이다. 즉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귀신의 유형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 이유는 시대가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바꿔놓기 때문이다. 일제시대를 겪은 사람들의 행동방식과 남북대치 상황이라는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행동방식은 다르기 때문이다.
외세에 의해 고통을 겪었던 병자호란이나 임진왜란 등의 수난의 시대에서는 끝없이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현실을 민속신앙을 통해 이겨내고자 했기 때문이다. 약한 인간의 힘으로는 그 엄청난 고통들을 극복할 수가 없었다. 눈 앞에서 가족이 죽고 뙤놈, 왜놈에게 끌려가는 상황, 눈앞에서 아내와 딸이 겁탈을 당하고, 아버지의 팔이 잘리고 다리가 달리고, 눈이 뽑혀지는 상황들을 겪으면서 인간이 그러한 고통들을 이겨낸다는 것이 가능했을까?
그러한 고통 속에서 가족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는 수단이 되고 목표가 되었던 신들에 대한 숭배감과 기원의 행위는 인간의 모습을 가진 탈자연적인 존재와 한 맺힌 영혼의 결합이라는 귀신의 존재를 만들어 냈다.
특히 사람을 좋아해 사람과 함께 어울리기를 좋아했던 도깨비는 우리나라 귀신 문화의 원형이랄 수 있다. 도깨비는 만화를 통해 우리에게 더욱 친숙해져 사람이 착한 일을 하면 신비한 힘을 주고 사람을 도와주는 사람같이 친근한 존재로 남아있기도 하다.
이렇듯 사람들에게 친근한 도깨비에서부터 극도의 공포감을 주는 악귀까지 이것들은 모두 우리의 삶에 반영된 민속신앙이었다. 민속신앙은 우리 삶에 투영된 하나의 가치를 형성했으며, 이 가치는 ‘문화’라는 틀 속에서 자리매김됐다.
귀신의 종류만 해도 수도 없이 많다. ‘여자가 한을 품고 죽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처녀귀신에서부터 총각 귀신, 동자 귀신, 몽둥이 귀신, 싸리빗 귀신 등 사람의 모양을 딴 귀신은 물론 동식물의 모양을 딴 귀신에 이르기까지 우리 문화 속에 담긴 귀신의 형태만 해도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귀신을 소재로 영화나 만화, 드라마가 만들어져서 성공하지 못한 일이 없을 정도다. 그만큼 귀신의 존재는 호기심의 존재이며,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다. 또한 사람을 끄는 흡인력이 그 무엇보다 크다.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아직까지 ‘귀신문화’를 소재로 관광지를 만든 곳이 없다. 지방자치 시대가 되면서부터는 어떤 사업이든 선점하는 것이 성공의 비결이다. 우리지역이 만약 고추장 사업을 선점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고추장으로 유명한 곳은 우리 지역말고도 많이 있다. 하지만 고추장 하면 순창이다. 선점했기 때문이다. 건강장수 사업도 마찬가지다. 구례와 장수를 기획취재할 때 들은 말이 있다. “장수 노인이 구례에 더 많다”와 “장수정책을 장수에서 더 먼저 시작했다”는 것들이었다. 관계기관의 행정담당들의 부러움이고 아쉬움이었다.
한여름 귀신 체험관에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것이며, 설공찬전 역사 문학관에는 전국의 중고등학생들의 관람이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처녀귀신에서부터 몽둥이 귀신 등의 수많은 귀신 코스프레는 가족단위의 관광객이나 연인들에게 신기한 체험을 제공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설공찬전에 나오는 인물들과 무덤 등은 공포를 극대화할 수 있는 장소로 충분 할 것이다. 귀신을 형상화한 옷이나 학용품, 마스코트 등은 인기 상품이 될 것이다.
문학관을 운영하고 체험관을 운영하면서, 마을 전체가 하나의 체험관이 되면서 주민들은 일자리를 찾을 것이고 마을은 활력을 되찾을 것이다.
금과면 매우리의 설공찬전이 문화사업으로 조성된다면 말이다. 문화사업의 밑그림이 그려지는데도 행정에서는 관심이 없다. 지각있는 주민들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조선조 최초의 금서였다는 엄청난 역사성에도 불구하고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행정은 도대체 무엇을, 누구를 위한 행정을 하고 있는 것인가?
이제는 더 이상 귀신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의 역사, 우리의 문화다. 문화를 찾지 못하는 도시는 죽은 도시다. 우리지역의 문화는 바로 우리 자신이며, 나와 우리를 표현해주는 정체성의 총체이다. 문화는 곧 예술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되는 부분이다.
무더위에 귀신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힐링을 하는 것이 바로 우리 민족, 우리 국민이다.
무서운 것이 힐링이 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엄청난 역사성과 지역성, 예술성을 한아름 담고 있는 금과 설공찬전의 자원 방치는 지역문화말살 정책으로 봐야하며 후대에서는 이를 두고 지금보다 더한 혹평을 하지 않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금과면의 정체성을 살린 컨텐츠는 예술적 가치로 ‘최고’
금과면 내동리 연화마을은 장판개(1885~1937) 명창이 태어난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고인이 된 장 명창은 타고난 소리꾼으로 전해진다. 천재적인 소리꾼 장명창의 소리는 고음과 저음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소리의 미려함이 특히 뛰어나 판소리계의 독보적인 존재였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는 또 거문고와 대금, 피리 등에도 능해 그 이름이 전라도와 충청도, 경상도를 일컫는 삼남일대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고 전한다. 1904년에는 고종앞에서 판소리를 해 고종이 크게 감명을 받았던 것으로 역사는 전하고 있다.
그는 살아생전 후진양성에도 힘을 쏟았으며, 배설향 명창을 제자로 두고 적벽가에 특히 능했다. 1938년 8월에 타계, 금과면 내동리에 안장됐다가 2010년 7월 금과들소리 전수관 양지바른 곳으로 이장됐다.
금과들소리전수관은 2008년에 12억원의 예산을 들여 준공한 것으로, 우리고장의 들소리를 전국에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들에서 모를 심으며 부르는 금과들소리는 판소리에서 사용되는 두 개의 중요한 악조인 우조와 예민조의 음계와 선법이 고루 섞여 두 악기의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금과들소리는 동편제 판소리의 거두였던 김세종 명창과 장자백, 장판개 명창 등을 배출한 순창의 소리이며, 서편제 판소리의 비조였던 박유전 명창이 태어난 곳도 순창이다.
금과면은 금과들소리를 비롯해 판소리, 설공찬전 등의 예술적 가치를 다량 보유한 예술의 중심지였다. 후대 사람들이 이러한 예술적 가치를 평가하지 못하고 방치하고 있는 것은 문화말살의 수준이라 아니할 수 없다.
전국을 강타하고 있는 금과 들소리의 농요에서부터 판소리 동편제와 서편제의 고장이 금과라는 점이 간과되어서는 안되며 더욱이 설공찬전의 역사적, 문학적 가치는 더욱 높고 크다.
판소리의 예술적 가치와 금과들소리의 농요, 설공찬전의 문학사적, 역사적 가치, 금과면 마을 곳곳에 세워져있는 입석과 청동기 시대의 지석묘, 호치리에 있는 700년 수령의 당산나무, 송정마을 앞들에 있는 두 개의 벼락바위, 용이 미처 승천하지 못한 새끼 용과 용알들이 돌로 변해 어미용을 기다리고 있다는 전설의 용바위 전설, 정유재란 때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팔을 대신 내놓은 효자 최충길의 이야기, 금과면 매우리 서쪽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삼외당, 남파 설진영 서실 등 역사적, 예술적 가치를 가진 유적과 유물을 포함한 우리지역의 문화가 아직도 살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귀중한 문화유산인 지역문화가 그 이름뿐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은 지역의 손실이다. 지역문화를 갈고 닦고 활용할 방안을 찾는 것이 후대가 해야 할 일이며, 보존과 전승은 이름만 있다고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남아있는 것은 세월이 지나면 잊혀지기 마련이라 영원할 수도 보전될 수도 없다. 매일같이 사람들이 찾아주는 곳, 조상들의 정신이 전해지는 곳이 있어야만, 문화적 가치를 발휘할 수 있는 관광자원이 돼야만 비로소 후대에 영원히 기억될 수 있다.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의병이 돼 나라를 구하고자 했고 한일합방이라는 국치 앞에서 오직 나라를 되찾기 위한 인재양성에 힘을 쏟다가 창씨개명의 강압 앞에 의롭게 몸을 던진 금과면 동전리의 설진영 독립투사의 절개가 지역문화유산으로 살아 숨쉬고 있다.
역사적, 예술적, 문학적 가치가 살아있는 지역문화유산을 찾는 일은 살아있는 나를 찾는 길이며, 나와 우리를 이어주는 지역공동체를 되찾는 일이다. 지역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은 곧 예술로 이어지는 참된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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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새색시귀신 자료사진 | ⓒ 순창신문 | | | 
| | ↑↑ 드라마로 만들어진 아랑사또전 화면 자료 | ⓒ 순창신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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