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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논 물대기의 풍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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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9월 24일(화) 21:28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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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순창문화원장
김기곤 | ⓒ 순창신문 | 호미자루 낫자루는 한 뼘이고 괭이자루 두발에다 지게 목발은 한발이다.
이는 과거 농촌에서 대표적인 농기구의 자루 크기를 말하는 것이다. 괭이자루가 두발이라 함은 두 걸음의 길이란 뜻이다. 두 걸음이면 한 1m쯤 된다.
전대자루는 물대기 삽으로 길이가 8척이 넘는다. 모내기가 끝나면 긴긴 자루가 달린 물대기 삽을 들고 마을 어른들은 아침나절, 한나절, 저녁나절로 나누어 들판을 돌아다녔다.
벼가 잘 자라도록 가장 알맞게 논으로 물이 들고 나게 물고를 돌보기 위해서이다.
물고란 것은 벼를 심어 놓은 논으로 물이 들고나니 입구와 출구를 말한다. 모심기가 끝나면 벼논에 물 보기는 마을 어른들 차지였다. 젊은 일꾼들은 보리 밑거름을 하려고 바쁘기 때문이었다. 아낙네들은 밭일하느라 눈코뜰새 없고 노인네들은 들에 나가 물대기를 열심히 했었다.
물대기를 잘해야 벼가 튼튼하게 자라 벼 이삭이 제대로 펴서 잘 여무는 것이다. 요새처럼 비료와 농약을 뿌려 편안히 짓는 농사는 없었다.
그래서 지금은 농촌에서 물대기 풍습은 사라진지 오래이다. 그러나 물대기 정신만은 우리가 잘 간직해 주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대동정신의 본보기가 곧 물대기 풍속에 숨어있는 까닭이다. 벼농사에서는 물싸움이 빈번하기 싶다. 내 논, 네 논 따지게 되면 반드시 물싸움이 일게 마련이다. 물싸움이 나면 사람이 다치거나 심하면 살인까지 빚어지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 불상사를 미리 막고 한 들판에 있는 모든 논에 다 물 형편에 따라 고르게 물 배급을 해 주신 것이 곧 노인들이 하는 물대기 풍습이었다.
우리 어렸을 때 물대기에 (私)가 끼면 마을 농사를 망친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할아버지가 긴긴 자루가 달린 물 삽을 들고 나갈 때면 손자 녀석도 따라 나갔었다. 관계시설이 잘 된 평야 지대에서는 물대기 솜씨가 별로 필요 없을 터이다. 그러나 산중에서는 말이 들판이지 경사가 져 논두렁 높이로 논이 층층이 있게 마련이었다.
이런 층층이 있는 들녘에서는 물대기 솜씨가 무엇보다 중요한 농사짓는 기술에 속했었다. 물대기 삽으로 물고에 놓여있는 물돌을 잘 조종해서 낮에는 물이 많이 흘러들게 하고, 밤에는 물이 조금 흘러들게 하는 솜씨는 오랫동안 농사를 지어 본 경험이 있는 노인들에게만 있었다.
젊은 농사꾼은 물대기 솜씨가 서툴러 물싸움을 불러오는 법이다. 물대기 삽의 자루가 긴 것은 논두렁을 밟고 들어가지 않아도 들길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물고의 물돌을 조종할 수 있게 하려는 지혜였다.
한 들판에는 거의 하나의 보를 갖고 있었는데 보에 물이 많아야 그해 벼농사가 잘 될 수 있기 때문에 해마다 보를 막는 일은 게을리 하지 않았다.
마을 노인들은 순서를 두고 돌아가며 물대기를 했었다. 물대기를 한 노인은 반드시 저녁이면 보를 둘러보고 봇물이 새는 틈이 생겼으면 그날 저녁에 젊은 일꾼들을 모이게 해 밤이 새면 즉시 가서 봇뚝을 다시 점검하게 했었다.
그러면 누구하나 군말 없이 다음날 새벽이면 함께 모여 물대기 노인의 지시대로 보막이 일을 튼튼히 했었다. 물대기 삽으로 물고의 물돌을 가로세로 움직여서 물이 알맞게 흘러 들어가게 했던 솜씨야 이제는 필요 없을 터이나 많은 사람들의 이해가 걸려 있는 일을 처리하는데 사가 끼어서는 안된다는 정신과 풍속을 잘 간직해야 할 것이다.
물대기 정신의 핵심은 무슨 일이 있어도 공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름다운 물대기 풍속은 이제 살아졌지만 그 풍속이 우리에게 공정을 일러주었기에 옛 물대기 풍속을 기록한다.
*참고자료 : 생활문화 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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