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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문경 찻사발 축제와 도자기 문화의 개발 효과

2013년 09월 24일(화) 13:53 [순창신문]

 

↑↑ 문경 망댕이 전통가마

ⓒ 순창신문

↑↑ 사발의 종류에 맞게 성형된 전통 찻사발

ⓒ 순창신문

문경 찻사발 축제는 어떤 축제인가?

문경 찻사발 축제(이하 찻사발 축제)는 지난 5월 15회째의 막을 내렸으며, 문화관광 최우수축제로 선정되기도 했다. 축제는 해마다 4월 말 경에서 5월 초까지 문경새재 오픈세트장 일원에서 열리고 있으며, 문경시는 찻사발 축제를 통해 찻사발 도자문화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의 찻사발 축제는 ‘찻사발에 담긴 전통, 그 깊은 울림’이라는 주제로 성황리 개최됐다. 찻사발 축제는 지역문화를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전통 축제로, ‘사토에서 찻사발까지’라는 캐치프레이즈를 통해 찻사발 도자기의 유무형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있다.
찻사발이란 차를 마시는 ‘사발’ 또는 ‘주발’을 말한다. ‘다완’ 또는 ‘차완’이라고 불려지고 있다. 도공들은 사발을 흔히 ‘소우주’라고 칭한다. 도공들에 의해 소우주가 된 사발은 우주를 담고 있는 철학과 사유가 서린 선의 결정체로 통하고 있다. 사발 바깥선이 하늘로 뻗쳐오르는 것을 마치 ‘용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 같다’하여 ‘용승선’이라고 부르는데, 이 용승선을 무한대로 이으면 무한대의 우주 공간이라는 것이다. 또한 사발인 이 ‘용승선은 굽은 삼라만상을 받치는 지구의 축’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예술적 가치를 부여한 사발 도자기를 대대손손 지키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문경 찻사발 축제’가 태어났다. 찻사발 축제는 조선 선비들의 숨결이 묻어날 것 같은 문경새재 도립공원 세트장 안에서 펼쳐졌다.
세트장 축제를 통해 도자기의 예술적 가치를 국내외에 알리고 있는 문경 전통 도요는 37개로, 문경 막사발의 전통을 이어왔다. 37곳의 전통도요들은 각기 독특한 모양과 문양 등으로 해마다 축제장을 장식하고 있다.
37곳의 도요지들은 전통방식을 고수하며 구워낸 도자기를 판매하는 판매장과 차를 마시기 위한 차도구나 말차 등을 판매하는 판매장을 갖추고 있다.
축제장 세트 안에서는 농산물 판매도 이뤄지고 있다. 문경 명품 농특산품은 새콤달콤한 맛을 내는 홍로사과와 오미자다. 문경에는 사발과 더불어 사과・오미자가 특히 유명하다. 찻사발 축제로 문경을 찾는 방문객은 한 해 무려 70만명이나 된다. 문경시는 찻사발 축제를 통해 문경의 농특산물을 널리 알리는 한편 찻사발 기대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속살이 단단하고 새콤달콤하기가 따를 곳이 없다는 문경 홍로는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워 군침먼저 넘어가는 특징이 있다. 또 알이 굵고 깊은 맛이 난다는 오미자는 찻사발 축제를 통해서 더욱 유명해졌다.
찻사발 축제는 문경새재를 전국적인 관광단지로 만들었으며, 문경새재 안에서 팔리고 있는 오미자 막걸리 등의 가공식품들은 평소에는 물론 찻사발 축제때 더욱 빛을 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찻사발 축제시 관광객들을 위한 체험관에서는 ‘도자기 빚기 체험’을 비롯한 ‘찻사발 탁본, 모자이크 체험’, ‘사랑 찻사발 콘테스트’ 등을 해 볼 수 있다.
또 축제 세트장에는 서민문화촌이 운영됐다. ‘활 만들기’ 등의 민속체험 부스와 널뛰기 같은 전통놀이체험, ‘다듬이, 도리깨질’ 같은 전통문화체험, 건어물이나 한약방 등이 있는 저잣거리 체험 등의 전통문화촌 체험 프로그램이 선보여졌다.
전통 한옥 건물들이 즐비하게 들어서있는 문경새재 세트장은 다른 지자체 축제장에 있는 몽골텐트가 보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차별화를 줄 수 있는 분위기를 갖고 있다.
사발을 통해 문경을 알리기 위한 찻사발 축제가 문경 도자기의 독특함을 만들어내는 전통가마인 ‘망댕이가마’를 전시하고 관광객들 앞에서 불을 지피는 특별행사는 사람들의 관심을 얻고 있는 프로그램의 하나다. ‘찻사발 깜짝 경매’와 ‘문경전통 발물레 경진대회’ 같은 특별 행사도 인기 프로그램 중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1960~70년대 출현했던 일본 사기그릇과 스텐레스에 밀려 전국의 도요지들이 문을 닫을 때 오지에 자리했던 이유로 그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문경 도자기는 생활도구로 쓰였던 옛날과는 달리 현재는 예술작품으로 변화돼가고 있다.
문경시는 문경도자기의 전통을 잇는 문경도요사 향토사료집 등을 발간하는 등 도자기 산업의 발전방향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문경도요사 향토사료집은 과거의 도요지를 조사하고 그 파편을 수집해 제조연대와 그릇의 질을 감정하면서 아울러 문경전통자기의 맥을 이어가는 등 도자산업의 앞날을 조명하고 있다.
찻사발 축제를 통해 문경시는 문경 도자기를 국내외에 알리는 한편 꾸준한 도자기 산업을 위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찻사발 축제가 주민들이나 관광객들에게 도자기와 친숙해질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되기도 했다.
또 축제 중 국제교류관에서는 도자기 국제교류에 참여한 외국 도예가들이 직접 도자기 작품 제작과정을 시연해 외국과 국내의 도자기 제작과정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해보는 등 문경 도자기 발전의 계기가 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축제에서는 체험을 돕기 위한 ‘축제 체험권’이 쿠폰형태로 판매돼 ‘도자기 괭물체험’, ‘찻사발스토리텔링’, ‘찻사발스쿨’, ‘찻사발그림그리기’ 등에 사용됐다. 체험권은 1만원과 3천원권으로 나뉘어 판매됐으며, 1만원권의 체험료는 관광들에게 ‘비싸다’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이용율이 저조했던 것으로 평가됐다.




문경 망댕이 가마는?

우리나라 특유의 칸 가마로서 ‘망댕이 가마’라 불리며 길이가 20∼25cm의 굵기를 하고 있다. 모양에 있어서는 사람의 장단지와 같은 진흙덩이의 망댕이와 흙벽돌로 만든 가마다.
망댕이는 가마의 웟부분이 반구형(半球形)이 되도록 이어 짜 올린 것으로 흙벽돌은 가마벽과 살창다리, 부뚜막을 만드는데 사용된다. 외형은 봉통, 요리칸에 이어 조금씩 규모가 큰 대 여섯 개의 칸으로 구성되는데, 요리칸으로부터 끝목칸에 이르기까지 단계적으로 15°정도의 경사로 이어져 있다.
각 칸의 연결부위에는 살창구멍이 있다. 살창구멍은 연기와 불꽃을 배출하기도 하고 열을 전달하는 불길의 통로 역할을 하는 7~12개의 구멍을 말한다. 각 칸에는 칸문이 설치돼 있어 그릇의 출입구 역할과 불창 역할을 한다. 바닥은 부뚜막과 불 바닥으로 구성돼 있다. 도수리구멍은 화도(火度)를 살펴 그릇의 익는 정도를 관찰하는 구멍이다.
가마 외벽은 짚을 섞어 두껍게 진흙을 바르고, 내벽은 진흙물로 매흙질을 한다. 가마위에는 비바람으로부터 가마를 보호하기 위해 초가지붕을 얹기도 하지만 오늘날에는 비를 막는 지붕을 설치했다. 문경은 이런 전통적인 가마 즉, 망댕이 가마로 돼 있으며 도공이 직접 만든 다.
가마에 불을 지피는 나무는 소나무를 쓴다. 문경 사람들이 전하는 얘기에 따르면 예전에는 도요지 근처에서 벌목해 가마에 불을 지폈지만 오늘날에는 강원도 등지에서 소나무를 사거나, 제재소에서 쓰다 남은 피죽을 구입해 쓰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문경 사발을 널리 알리고 지키기 위해 시작된 찻사발 축제는 문경만의 특유한 전통가마의 형식을 지켜왔다. 흙으로 빚어 사발을 완성하기 위해 불을 때는 가마는 전통적인 방법만을 고수하며 지켜가고 있다.
15°정도의 경사로에 5~6칸을 쌓아 만든 망댕이 가마 주변에는 작업장, 디딜방아, 땅두멍, 괭 등 일련의 도자기 생산시설을 함께 갖추고 있다.
문경읍 관음리에는 180년전에 만들어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 망댕이 가마가 지금도 남아있다. 망댕이 가마는 단열효과가 뛰어나 불꽃의 변화와 움직임, 온도 등의 독특함으로 명품의 사발을 만들어 내고 있다.




문경 사발 도자기의 명맥

문경은 예로부터 도자기가 많이 생산된 고장의 하나였다. 고려청자와 조선백자가 유명했듯이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도자기는 사대부 등의 부유층에게는 도자기로, 예술품으로, 일반 백성들에게는 생활용구로 인식돼 왔다.
사발은 도자기로서보다 생활용구로서의 기능을 다하며 오랜세월 조상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러다 임진왜란이 터지고 왜놈들은 생활 속에서 막쓰고 있던 막사발 등의 도자기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했다.
생활 속 아무렇게나 쓰여졌던 막사발이 왜놈들을 통해 도자기가 된 것이다. 우리에게는 막사발이었던 용승선이 왜놈에게는 명품 도자기, 예술로 승화된 도자기였던 것이다.
조선의 도자기를 예술적 가치로 평가한 왜놈들은 임진왜란을 계기로 수만에 가까운 조선 도공들을 일본으로 끌고 갔다.
일본에 끌려간 수만에 가까운 조선의 도공들 중 조선에 다시 돌아온 도공은 불과 몇 천에 불과했다. 끌려간 도공들은 도자기를 예술로 평가해주던 왜놈들의 대우에 스스로 일본을 선택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다 세월이 흘러 일본이 또다시 이 강토를 유린하게 된 일제시대에는 도자기와 비슷한 사기그릇을 대량으로 찍어내기 위한 사기공장들이 전국에 들어섰다.
왜의 사기그릇 공장이 곳곳에 생기면서 전국의 전통 도자기공장들은 대부분 문을 닫았다. 왜냐하면 왜의 사기(沙器)는 공장 대량 생산으로 가격이 저렴하고 디자인이 화려해 우리의 도자기시장을 점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시대상황에서도 문경의 도자기공장은 그 명맥만은 유지되고 있었다.
이유는 문경이 오지라는 점이었다. 조선시대에는 문경새재가 교통의 요지였지만 조선후기를 거쳐 일제강점기가 되면서부터는 문경새재가 오지가 됐던 것이다. 곳곳에 신작로가 생기면서 새재길을 통한 교통은 활발치 못했다. 이렇게 되면서 왜의 사기공장이 문경에 들어오지 못했다.
당시에도 벌목은 전국적으로 금지되었으며, 오지였던 문경은 벌목감시원이 없는 틈을 타 벌목이 수월한 환경적 요인을 갖고 있었다. 때문에 오지 중에서도 오지에 자리잡고 있던 문경의 도요는 왜사기의 영향권에서 멀어지면서 그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망댕이가마라는 전통 가마가 아직도 우리 곁에 남아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른 지역은 벌목금지령에 의해 전기나 가스를 이용한 가마가 성행했지만 기술의 전수가 늦고 벌목이 수월했던 문경에서만은 전통가마인 망댕이가마가 계속 전수될 수 있었다.




문경에서는 왜 찻사발을 택했나?

도자기하면 떠오르는 지자체는 사실상 강진이나 이천이었다. 강진이나 이천 또한 도자기 축제를 통해서 전국적으로 알려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문경 역시 도자기를 통해 전국에 알려진 것은 마찬가지다. 청자도요지인 이천, 광주 등의 경기지역의 도자기와 구별짓기 위한 문경 도자기는 사발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문경 도자기가 사발에 주목하면서 막사발은 찻사발로 변모됐다. 서민들의 생활자기였던 막사발이 말차를 마시기 쉬운 찻사발로 변신할 수 있었던 것이다.
민요(民窯)였던 문경 도자기는 술을 담으면 술 그릇, 밥을 담으면 밥 그릇, 이가 빠져 못쓰게 되면 개밥그릇으로 사용되던 것으로, 가격 대 또한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었다. 그러던 도자기가 한일 정상회담이 이뤄지고 70년대 초반 차 문화의 발달을 이룬 일본인들이 문경의 막사발을 최고급 다완으로서 주목하면서부터이다.
말차를 주로 먹는 일본인들에게 주둥이가 넓은 문경의 막사발은 그야말로 제격이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80년대 이후 차에 대한 선풍적인 바람이 불면서 문경의 막사발은 찻사발로 새롭게 태어나게 되는 계기가 만들어졌다.
이후 문경의 도자기는 더 이상 식기시장의 찬밥신세였던 막사발이 아니라 국내외에서 주목받는 예술성이 가미된 찻사발이 됐다. 엽전 몇 닢과 곡식의 교환수단이 아닌 값을 알 수 없는 명품(名品)인 된 것이다.
문경의 도자기가 구워지는 날이면 보부상들이 와서 엽전 몇 닢 주거나 곡식으로 물물교환이 이뤄지던 시대가 막을 내렸던 것이다.

↑↑ 찻사발 축제장의 전통놀이.

ⓒ 순창신문

↑↑ 찻사발, 도자기 전시

ⓒ 순창신문





찻사발과 차의 만남-문경 칠석 차 문화제

한국차인연합회가 1981년 5월 25일을 ‘차의 날’로 선포하고 매년 전국적인 행사를 갖고 있는 가운데, 문경에서는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칠월 칠석에 ‘문경칠석차문화제’를 해마다 열고 있다. 문경칠석차문화제는 올 8월 17회를 맞으며 찻사발과 차의 만남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차와 친근하게 하는 등의 차문화 보급에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차를 끓이면서 예절을 익히고 심신을 수련하는 ‘다례’를 중요시 해왔다. 차는 단순히 마시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차를 마시면서 인생의 멋과 맛을 함께 느껴보는 ‘다도’를 차 문화의 소중한 요소로 삼았다.
차문화제는 특히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정서함양과 인내심, 예의범절의 중시를 강조하는 전통문화축제로 자리매김해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칠석 차문화제에서는 올해로 제10대의 견우직녀를 선발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선발 조건은 견우와 직녀처럼 금슬이 좋은 부부가 대상이 된다.
‘차 한 잔은 목과 입을 축여주고, 두 잔은 마시면 외롭지 않고, 석 잔째는 가슴이 열리고, 넉 잔은 가벼운 땀이나 기분이 상쾌해지고, 다섯 잔은 정신이 맑아지고, 여섯 잔은 신선과 통하며, 일곱 잔엔 옆 겨드랑이에서 맑은 바람이 나온다‘고 한 것처럼 차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인생이고 예의이며, 심신 수련의 방법으로 통한다. 따라서 차는 다양한 문화를 흡수해 함께 어우러진다.
우리나라에서의 차의 기원이 된 것은 가야국시조 김수로왕의 부인 허황옥(인도 태양왕조 아유타국 공주)이 서기 48년 7월 27일 인도에서 금,은, 보화 등과 함께 차를 가져왔다는 설로부터 유래한다. 또 삼국유사가락국기에는 661년 3월 제사에 술과 단술을 빚고 떡과 밥, 차, 과일 등의 음식을 차렸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삼국시대의 고구려에서는 옛 고분에서 전차(錢茶)가 발견되고 차를 끓이던 이동식 화덕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으며, 백제는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중국과의 교역이 가장 왕성했던 점을 볼 때 차를 마시던 풍속이 성행했을 것으로 학계는 짐작하고 있다.
또 신라의 삼국사기에 의하면 흥덕왕 3년(828년)에 ‘당나라 사신으로 갔던 김대렴이 찻씨를 가져와 이를 지리산에 심게 했다’라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차가 신라에 보급된 것은 흥덕왕 훨씬 이전인 선덕여왕(632 ~ 647) 때부터 성행했던 것으로 기록은 전하고 있다.
경주 안압지에서는 다구(茶具)로 쓰인 토기류들이 발견된 바 있으며, 설총의 ‘화왕계(花王戒)에는 술과 차로 정신을 맑게 해야 한다(酒茶以情神)는 신문왕 진언 기록이 있다.

↑↑ 문경시는 특산품인 오미자로 가공식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 순창신문

↑↑ 문경새재 한옥마을

ⓒ 순창신문

↑↑ 축제장에 있는 여러 곳의 초가주막은 인기 장소가 되고 있다.

ⓒ 순창신문

이정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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