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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 국가문화재 충신리와 남계리 석장승 이전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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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개발행위와 서부우회도로공사 등 이전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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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3월 12일(화) 18:05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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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순창신문 | | 국가지정 중요민속문화재 제101호 ‘충신리 석장승’과 제102호 ‘남계리 석장승’의 이전 경위와 위치 변경지를 두고 주민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한 것으로 나타났다.
충신리와 남계리 석장승을 누가, 언제, 어떤 이유로 만들었으며, 왜 여러 차례 장소를 옮겼는지에 대해 지역 일각에서는 의문을 제기했다.
돌로 만든 신앙물인 장승을 왜 옮겼는지, 이전 장소가 적합한지에 의문을 갖는 주민들이 생겨나면서 본지는 두 석장승에 대해 이전 경위와 이전 장소의 적합성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두 석장승이 만들어진 시기는 고려말이나 조선초일 것으로 전문가들에 의해 추정되고 있다.
고려와 조선건국 사이에서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된 충신, 남계리의 석장승은 그 때부터 1960년대 까지 마을 주민들이 모여 음력 대보름에 당산제와 같이 장승제를 지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충신리, 남계리의 석장승은 국가문화재로 지정돼 있어 이전하려면 문화재청으로부터 이전 관련 행정절차를 거쳐야 한다. 따라서 관리주체인 군은 두 석장승에 대한 이전문제를 두고 문화재청으로부터 지난 2004년 8월과 9월 이전에 따른 ‘현상변경허가’에 대한 신청과 승인을 각각 받아 2004년 11월 5일 이설공사를 착공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인 석장승 중 충신리 석장승 상부에는 남자형상의 얼굴이 조각돼 있으며, 남계리 석장승은 190cm정도의 높이에 여자형상의 얼굴이 조각돼 있다.
둘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두 석장승은 제작 수법면에서 볼 때 같은 연대와 같은 사람에 의해 조각됐을 것으로 전문가들이 추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읍 남계리 178-25번지 일원에 세워져있던 충신리 석장승과 남계리 석장승이 남계리 226-13번지와 남계리 167-4번지로 이전됐다. 이전 사유는 복실리와 남계리, 순화지구의 경지정리 사업으로 인해 1976년에 이전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군관계자가 밝혔다.
이것은 제1차 이전으로, 2차 이전에서는 충신리 석장승을 남계리 226-13번지에서 순화리 58-1번지로 이전됐으며, 이는 1989년 7월에 주변 건축물 신축 등의 개발행위로 인한 이전이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두 번에 걸쳐서 옮겨진 충신리 석장승은 순화리 58-1번지에서 충신리 78-5번지로 다시 이전했다. 이전사유를 보면 문화재청의 승인을 얻어 이전된 것으로, 서부우회도로공사로 인한 불가피한 이전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마지막 제4차 이전은 남계리 석장승의 이전에 따라 충신리 석장승이 이전된 것으로, 남계리 167-4번지의 석장승이 관람객들의 교통사고를 유발할 위험이 있는 점과 도로인접구역으로 인한 석장승 파괴 위험 상존으로 남계리 966-7번지로 이전한 경우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충신리 석장승은 남계리 석장승을 따라 남계리 966-7번지로 이전됐으며, 문화재청의 승인과 문화재청 전문위원들의 실사와 의견에 따라 이전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한편 석장승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에 대해 전문가와 학계는 ‘순창에 들어오는 길목에 금산과 장덕산이 양쪽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그 사이에는 들판이 펼쳐져 있어 땅의 좋은 기운이 순창읍에서 감돌 수 없고, 그 기운이 북서쪽으로 유실되는 형국을 하고 있어 기의 유실을 방지코자 각시숲을 만들고 두 석장승을 만들어 세우게 됐다는 연구가 ‘순창마을입석’자료에 의해 고증된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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