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쥐불놀이와 오곡밥, 정월 대보름 이야기
|
|
2013년 02월 26일(화) 22:29 [순창신문] 
|
|
|
정월 대보름은 설날을 보름 지낸 날로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다양한 세시풍속이 행해지는 날이다. 정월 대보름은 가장 큰 보름으로, 큰 달을 만날 수 있는 날이다. 예로부터 정월대보름은 설, 단오, 추석과 더불어 4대 명절로 꼽혔다.
대보름 이틀 전을 까치보름이라고 하는데, 까치보름 아침에는 오곡밥을 해먹고 장독대에 까치나 까마귀밥을 놓아두는 풍습이 있었다. 또 까치보름 낮에는 짚신 1죽을 만들어 마을에 올리고 수수대로 오곡형상을 만들어 풍년을 기원했다.
정월대보름 필수 부럼깨기
| 
| | ⓒ 순창신문 | | 정월대보름 아침에는 어금니로 견과류를 깨는 풍습이 있다. 날밤이나 호두, 잣, 콩 등의 견과류를 어금니로 깨물면 한 해 동안 각종 부스럼이 예방되고 이가 튼튼하게 된다고 믿었다. 이런 견과류를 ‘부럼’ 또는 ‘부름’이라고 일컫는다.
정월대보름과 쥐불놀이
| 
| | ⓒ 순창신문 | | 정월대보름 날 농가에서는 들판에 쥐불을 놓는다. 쥐불을 놓으면 겨울을 지낸 들쥐나 메뚜기, 해충의 번데기 등의 병충해가 사라져 다음해 농사를 짓는데 좋다고 한다. 쥐불을 놓은 들에서는 아이들이 그 불을 깡통이나 통에 담아 달 모양처럼 둥그렇게 돌리곤 했다. 그것을 ‘쥐불놀이’라 일컬었으며, 정월대보름의 쥐불놀이는 정월대보름 놀이의 하나로 그 모습은 장관으로 비취지기도 한다.
정월대보름과 오곡밥, 세성받이밥-백가반
| 
| | ⓒ 순창신문 | | 정월대보름날 오곡밥을 얻어먹는 풍속은 아이들의 한 해 운수와 건강을 위해 이어져 내려왔다. 보름날 아침이면 아이들이 조리나 작은 소쿠리를 들고 이웃집을 돌아다니며 오곡밥을 한 숟갈씩 얻어먹는 것으로, ‘세 성 받이 밥’이라는 이름이 붙기도 했다.
그같은 이름이 붙은 이유인 즉 김 씨, 이 씨, 박 씨 성을 가진 집에서 밥을 얻어야 그 해의 운이 좋다는 이유에서였다.
따라서 지방마다 차이는 있었으나, 백 집의 밥을 얻어서 먹는 것이 좋다는 설에서 백가반이라 하기도 했다.
조선후기의 연중행사와 풍속을 정리한 ‘동국세시기’를 보면, 봄을 타서 살빛이 검어지고 야위는 아이는 백가반을 빌어다가 절구에 올라타 개와 마주앉아 개에게 한 숟갈 먹인 다음에 자기도 한 숟갈 먹으면 다시는 그런 병이 도지지 않는다는 기록이 하다.
정월대보름에 해서는 안 되는 금기가 있다?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에게는 정월대보름날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었는데, 바로 찬물을 먹지 말라는 것이었다. 대보름에 찬물을 마시면 여름내 더위를 먹고 사람들이 일을 하려고 할 때마다 소나기가 온다고 믿어 찬물을 마시지 않았다고 한다. 따라서 물 대신 챗국이나 맑은 콩나물국을 마셨다고 한다. 또 비린 것을 먹지 말라는 것도 있었다. 생선과 같이 비린 것을 먹으면 여름에 파리가 많이 꾀고 몸에 부스럼이 생긴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처럼 음식에 관련된 것 말고 또 다른 금기도 있었는데 대보름날 오전에는 마당을 쓸지 말라는 것이었다. 대보름날 오전에 마당을 쓸면 한 해의 복이 나간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혹 마당을 쓸어야 하는 경우에는 해가 중천에 솟은 다음에야 비로소 마당을 쓸었다고 한다. 또한 비질을 할 때는 마당 안쪽을 향하게 쓸었고, 쓰레기를 집 밖으로 버리지 않았다.
그 밖에도 대보름날에는 빨래를 하지 않는다던가, 맨발로 걷지 않는다는 금기사항이 있었는데, 이는 과학이 부재하고 의학이 보급되지 않았던 과거에는 재액을 대비할 만한 근본적인 대책이 없었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주술적인 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가에서는 정월대보름을 전후로 매해 반복되는 재액이 다시는 찾아오지 않게 하기 위해 금기해야 할 것들을 지키려고 한 것이었다.
|
|
|
|
이정화 기자 “” - Copyrights ⓒ순창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
|
|
순창신문
기사목록 | 기사제공 : 순창신문
|
|
|
|
|
|

|
|
|
|
실시간
많이본
뉴스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