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순창군 지역에 거주하는 70여 교회와 3,000여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사순절 기간과 종려주일을 보내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짊어지시기 위하여 고난을 받으시는 고난주간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에 함께 동참하시고 부활의 승리의 기쁨을 누리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 고린도 전서 1:18~25절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라고 했는데 그 말이 과연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 시대에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죄인 중에서도 가장 큰 죄인을 공개 재판을 통하여 십자가라는 형틀을 통해 잔인하게 처형하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관점에서 볼 떼에는 예수는 분명 나사렛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증거가 확실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자신들이 섬기는 하나님의 신성을 모독하는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신성을 모독한 죄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던 것입니다. 그 예수를 우리의 죄를 담당하고 죽으신 구세주라고 하니 예수를 믿지 않는 자들의 눈으로 바라볼 때는 미련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을 얻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능력인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도 교회에 다녀서 손해 보는 건 없지 좋은 소리도 듣고 종교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것도 괜찮지 라는 정도로 기독교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좋은 소리를 들으려고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요. 하나의 종교를 갖기 위해서 믿는 것도 아닙니다. 영원히 살려고 믿는 것입니다. 세상의 지혜는 이 땅에 사는 동안 돈과 명예를 가지고 부귀영화를 누리며 사는 것에 최종 목적을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표적을 구한 유대인
유대인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표적을 구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적이 무엇입니까? 그들은 능력과 이적을 나타내고 죽은 자를 살리는 예수의 능력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은 이와 같은 표적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보기에 예수는 분명히 나사렛에 사는 목수의 아들이라는 호적의 법적 증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유대인은 메시야가 오시면 순간에 지긋지긋한 식민지 생활을 해결하기 위하여 로마를 정복하고 천하의 표적은커녕 정치적으로 아무런 능력이 없는 사람으로 보일 때 그들은 예수가 자기들의 메시야가 아니라고 일축해 버렸던 것입니다.
지혜를 구한 헬라인
헬라인은 지혜를 구했습니다. 헬라인은 다른 모든 종교를 철학으로 이해했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도 역시 철학으로 이해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논리적으로 유대인의 종교법 상 신성을 모독한 죄로 죽여야 된다고 철학으로 정의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지혜로 보지 않습니다. 즉 구세주의 실존을 믿기 보다는 종교적인 이해로 자기들의 철학적 정의를 나타내려 했던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사람의 지혜인 철학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지혜와 지식 안에서 체험으로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숨겨진 비밀
하나님의 지혜는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자신의 섭리며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나사렛에 숨기셨고 모든 유대인들이 나사렛 사람으로 알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기까지 자기 백성이 알지 못하도록 숨기셨던 것입니다. 세상은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를 사대 성인의 한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지혜와 철학이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오해인 것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도다.(시 53:5~6)
<순창군 기독교연합회 회장 설동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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