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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섬진강 수계 명소 탐방(재첩과 화개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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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5월 22일(수) 09:29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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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닿는 곳마다 그림이 된다’는 경남 하동과 매화마을로 유명한 광양시는 섬진강이라는 천혜자원 덕을 가장 크게 보고 있는 도시이면서 또 동시에 피해도시이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광양시와 하동군은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전라도와 경상도로 나뉘어져 있다. 섬진강을 건너 전라도와 경상도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게 만들어진 ‘남도대교’는 DJ정권 때 만들어졌다. 광양시와 하동군의 섬진강 주변 주민들은 섬진강을 둘러싼 시군간 이권이나 사업권, 책임소재 등의 마찰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고 한다.
주민들은 주민들끼리 재첩을 서로 더 많이 채취하기 위해 다퉜고, 행정기관은 기관대로 사업권에 따르는 책임소재를 서로 떠맡지 않기 위해 마찰을 빚는 등 강 하나를 사이에 둔 광양시와 하동군의 갈등이 한때는 컸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지금은 상생을 위한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 마찰과 갈등보다는 지역발전을 위한 화합을 길을 모색, 상생과 발전이라는 모토로 나아가고 있다.
섬진강 매화마을로 유명한 광양, 섬진강 화개장터로 유명한 하동은 섬진강 수계권 10개 시군 중 섬진강의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리고 있는 지역임과 동시에 ‘염해피해’ 지역이기도 하다.
섬진강변 재첩과 화개장터
‘부추재첩국’은 속풀이에 최고
우리나라 봄 꽃 축제의 서막을 알리는 매화마을 꽃축제로 인해 지난 3월 중순 매화마을과 4월 초순 화개장터에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백반이나 삼겹살, 갈비를 파는 식당들은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숙박업소들의 바가지 요금에도 불구하고 숙박업소 또한 특수를 만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첩요리 식당은 큰 호황을 누리지 못했다. 보통 재첩요리는 국과 회무침 정도였는데, 좀 더 다양한 요리 개발이 필요해 보였다. 시원한 ‘재첩국’은 저렴한데 반해 ‘재첩회무침’은 한 접시에 3~4만원을 웃돌아 맛에 비해 가격이 높다는 관광객들의 평가를 받고 있었다. 관광객들은 또 재첩은 독특한 흙냄새를 풍기기 때문에 한 번에 많이 먹기보다는 ‘맛’으로 먹는 음식이라, 양을 적게 하고 가격을 낮추는 것이 손님잡기에 수월할 것이라는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회무침에 비해 재첩국은 인기가 많았다. 특히 ‘부추재첩국’은 속풀이에 최고로 알려져 있다. 하동에서는 재첩을 강에서 나는 조개라 해서 ‘갱조개’라 부른다. 섬진강에서 나는 대부분의 재첩은 섬진강의 모래섞인 진흙에서 살기 때문에 흑색을 띄는게 대부분이다. 섬진강 재첩은 크기는 작지만, 바지락보다 영양면에서 3배가 높으며, 별도의 양념없이 소금과 부추만으로 맛을 낸다. 기호에 따라 청양고추로 매콤한 맛을 내기도 한다.
재첩은 굵은 소금을 넣고 바락바락 주물러 씻어 3~4시간 정도 해감을 시켜 뻘을 빼낸다. 재첩에 모래가 섞여 지금거리면 아무리 맛있어도 먹을 수 없는 음식이 되고 만다. 해감이 된 재첩은 물을 넣고 끓여 거품이 올라오면 거품을 걷어내고 부추만 넣으면 뽀얀 속풀이 해장국이 된다.
재첩은 다른 음식과 먹어도 전혀 부작용이 없으며, 눈을 맑게 하고 피로를 풀어주는 효능이 있다. 특히 ‘강장제’로 알려진 재첩은 간기능을 개선하고 황달을 치유한다. 위장을 편하게 하고 소변을 맑게 해 당을 조절하는 효능이 있으며, 몸의 열을 내리게 하는 특효가 있는 것으로 동의보감은 전한다.
섬진강 하류에서 많던 재첩이 상류에서도 잡혀
유수량 부족으로 바닷물이 상류까지 올라와 ‘염해피해’
재첩은 민물과 바닷물이 교차하는 곳에서 서식한다. 때문에 민물과 바닷물의 교차지점에 서식하는 재첩이 가장 맛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닷물이 교차하는 섬진강 하류에서 많이 잡히던 맛있는 재첩이 지금은 상류에서도 잡힌다. 유수량 부족으로 바닷물이 상류지역까지 올라오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물보다는 바닷물이 많아져 재첩 등이 ‘염해피해’를 입었다.
이에 대해 섬진강 하류의 하동이나 광양의 농어민들은 수자원공사가 주암댐과 수어댐, 다압취수장 등을 건설, 운영하면서부터 문제가 생겼다고 주장하고 있다.
섬진강 하구의 어민들은 지난 2005년 3월부터 섬진강에 유입되는 수량이 줄면서 염도가 높아지고, 적조가 발생하는 등 어업피해가 발생했다고 밝히고 있다. 섬진강 하류로 흘려보내는 수량이 부족해 섬진강 재첩이 집단 폐사하고 잉어나 붕어, 장어 등이 사라지는 등 어민생계에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농어민들은 수년간 피해조사를 요구했고 최근 국민권익위 진정 등으로 중재와 합의를 이끌어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유명작가 김훈 씨는 재첩에 대해 ‘세상의 가장 작은 조개가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진한 국물맛을 낸다’고 말했다. 재첩국은 자연적인 조개원액의 맛이다. 양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재첩에서 우려낸 국물에는 소금밖에 넣지 않는다. 어떤 것을 넣지 않아도 되는 국물맛인 것이다.
하동에는 재첩과 관련 강씨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재미있게 구전되고 있다. 번식이 유난히 빠른 재첩이 강장제로 불리는 이유의 하나다.
섬진강 하구의 신기마을에는 강씨 할아버지가 살았는데, 강 씨 할아버지는 아내되는 할머니 말고도 일주일이면 두 세 번 씩 바람을 피고 돌아왔다고 한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강 씨가 옥류봉에 조상묘를 써서 그런거 아니냐’며 부러워했다. 하지만 강 씨 할아버지의 바람기는 장마철과 2월 추울 때가 되면 주춤했다. 그러던 어느 한 해 물난리가 나자 마을 사람들은 재첩을 잡지 못했다. 재첩을 먹지 못한 강 씨 할아버지는 그 해 바람피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때문에 신기마을 사람들은 ‘재첩을 먹으면 하루에 3대를 본다’며 재첩을 다 잡아먹었다고 한다.
재첩은 종패를 뿌려 6개월을 놔두면 알맞은 크기의 맛있는 재첩으로 자란다.
400~500년 전 세계적인 무역 항구도시였던 화개장터
전국의 보부상들이 모이던 곳
검정 고무줄이나 ‘빤스‘, ‘동동구루무’를 곡물과 바꾸기도
5일장이던 화개장터 지금은 약재 상시장으로 변신
화개장터는 박경리의 ‘역마’와 조영남의 ‘화개장터’노래로 더욱 유명해졌다. 하지만 화개장터는 400~500년 전 세계적인 무역의 항구도시였다. 그 당시에는 아주 귀했던 소금 등이 거래되던 큰 장터였다.
화개장터 뒤로는 지리산이 있고, 지리산 자락에 살던 사람들은 화개장터에 나와 물물교환을 해 먹을 곡식 등을 바꿔갔다. 지리산 자락에는 화전민들이 많았다.
화개장터는 또 전국의 보부상들이 모이는 곳이기도 했다. 검정 고무줄이나 ‘빤스‘, ‘동동구루무’를 가지고 온 보부상들은 지리산 자락에서 나온 곡물과 바꿨다는 것.
화개장터는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에 있으며, ‘5일장의 젖줄’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하동군에서 장터를 재정비해 임대를 주고 있으며, 상시 운영되고 있지만, 그 옛날에는 5일장이었다.
구전에 의하면 ‘5일장’의 개념이 처음 성립된 것은 변절의 대명사인 ‘신숙주’라는 인물에 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물길 따라서 장이 열리고 섰으며, 물 때에 맞춰 장이 서고 파장하던 화개장터는 신숙주가 왕에게 주청하면서 5일장이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1일자, 6일자로 장이 서던 화개장터 5일장은 지금은 각종 국내산 약재를 파는 상시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하동군청은 국내산 약재 판매를 위해 상시 점검을 하면서 철저한 관리를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365일 개장되고 있는 화개장터
‘화개장터’나 ‘섬진강’, ‘화개아리’‘, ‘하동 80리’같은 노래 외면
섬진강 옛날식 배 체험 프로그램 등 관광객 주문
화개장터는 365일 개장해 관광객들을 맞고 있다. 역사와 전통을 가진 화개장터가 현대적인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 1년 내내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관광객들이 물밀듯이 밀려드는 화개장터에도 개선을 필요로 하는 항목들이 눈에 띄었다. 화개장터 내에 울려퍼지고 있는 각설이타령의 유행가는 화개장터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화개장터 노래로 유명해진 장터에 ‘화개장터’노래나 ‘섬진강’, 화개아리랑‘, ’하동 80리‘같은 장터와 어울리면서도 좋은 노래가 있는데도 장터 배경음악으로 각설이 유행가를 들려주고 있는 것에 주민과 관광객들은 ‘관광객들을 무시하는 처사’라는 말까지 하고 있는 상황이다.
화개장터는 바로 앞에 광활하게 흐르는 섬진강이 자원이 된 만큼 옛날 뱃길을 이용해 화개장터로 모여들던 보부상들을 재연하거나 섬진강에 배를 띄워 옛날식 배를 체험해보는 체험 프로그램 등이 필요하다는 관광객의 주문이 화개장터와 섬진강의 미래를 밝히고 있다.
한편 섬진강을 건너던 배는 ‘줄 배’로 새끼줄을 꼬아서 만들고 거기에 깡통을 달아 사공없이도 줄을 당겨 건너던 배라고 한다.
섬진강을 따라가는 박경리의 소설 ‘토지’길 31km의 1코스와 2코스가 만나는 지점이기도 한 화개장터는 ‘하동8경’중 제1경에 속한다. 금오산 일출과 다도해, 쌍계사의 가을, 평사리 최참판댁 등이 2,3,4경으로 유명하다.
화개장은 1726년에 번성기를 맞아 해방전까지 전국적으로 손꼽힌 시골장의 모습이었다가
교통과 유통구조의 발달로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쇠퇴할 줄 알았던 화개장터가 김동리의 소설과 조영남의 화개장터로 알려지면서 1997년 하동군은 4년간에 걸쳐 옛모습을 복원해 옛날 장터 모습을 선보이는데 성공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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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광양 매화마을 | ⓒ 순창신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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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지난 3월 중순 광양 매화마을 축제기간동안에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 매화마을을 구경했다. | ⓒ 순창신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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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지난 4월 초순 벚꽃이 만개한 화개장터 입구. | ⓒ 순창신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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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하동 화개장터. 지난 4월 초순. 화개장터는 상시장으로 운영되며, 해가 뜨고 지는 시간에 맞춰 장이 서고 닫힌다. | ⓒ 순창신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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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하동과 광양을 잇는 남도대교. | ⓒ 순창신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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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화 기자 “” - Copyrights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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