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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래
여분산에서 동북쪽으로 솟아오른 산이 벌통산( 689m)이다. 이 산에서 기두하여 동남쪽으로 뻗어 내리면서 결인되다가 이울마을과 문치마을 사이에 해발 472m의 산이 솟아있고 다시 동남쪽으로 솟아오른 산이 장군봉(將軍峰, 444.8m)으로 이 봉우리에서 서남쪽으로 박환하면서 대간룡으로 뻗어 내려오다 구림천에 밀려 우뚝 솟아올라 머무르니 주삼봉(咮三峰, 360m)이다. 이 봉우리가 서남방 동남방 양쪽으로 개장되니 구림면의 소재지 마을인 연산(燕山)마을로, 면사무소, 학교 등 모든 기관이 있다. 연산시장이 형성된 마을이다.
이 마을의 주산인 주삼봉을 삼한시대에 홍성문(洪成文) 대사가 바라보면서 연소(燕巢) 명당이 있다고 하여 연산이라 하였다고 한 기록이 있으나 홍성문 대사는 조선조 중엽의 사람으로 타당성이 없으며 예부터 주삼봉이라 한 것은 새의 부리가 셋이 있는 것처럼 보여 삼봉이라 하였다. 그 봉우리 아래에 제비집의 형상이 있다는 데서 제비산, 즉 연산(燕
山)이라 하였다고 본다.
그 후 1935년 행정구역 개편 때 어떠한 연유에서인지 알 수 없으나 연산(燕山)이라 한자 표기되었다. 한자 표기의 편의에 따라 표기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또한 연산(燕山)이라 표기된 곳이 있으니 이것은 마을의 지형상이 연꽃이 물위에 떠있는 형상이라고 하는 연화부수(蓮花浮水) 형상이란 말에서 연산(蓮山)으로 표기하였던 것인데 현재는 연할 ‘연(連)’자 연산이 되었으니 시대의 흐름에 따라 형상과는 무관한 동명으로 변하여지고 있는 것이다.
구림면의 중심지로 5일장터(4일, 9일)가 치내마을 입구 다리와 연산마을 사이에 있었다.
남정동(南井洞)마을
구림면의 기두봉이라 말할 수 있는 여분산(如粉山, 774.3m)에서 동남쪽으로 뻗어내린 산맥이 해발 630m 고지에서 남쪽으로 박환하여 운항리 청룡등을 이루면서 결인되었다가 다시 동남쪽으로 대간룡을 이루면서 뻗어내려 정제봉이 솟아있고 다시 남쪽으로 내려오니 남정봉(南亭峰, 430m)이다.
이 봉우리에서 서남쪽으로 돌아 개장되어 취락이 형성되니 남정(南井)마을이다. 이 마을은 본래 무림면으로 무림면의 소재지 마을이었다. 또한 옛날에 남정굴이라 불렸으며 홍성문(洪成文)의 작사로 알려지고 있는 회문산가에 남정굴 뒷산 남정봉(南井峰)에 올라 현룡재전(見龍在田)을 바라보니 연무평(烟霧坪)에 서려있다고 한 것으로 보아 남정(南亭)리였지 않나 생각되나 용과 관계된 것으로는 정(井)일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에 남정리(南井里)로 기록되어 있으며, 옛날에 화재가 자주 발생하여 뒷산에 항아리 3개를 묻어 놓고 물을 부어 제사하고 화재를 면했다는 설화로 보아 샘 ‘정’자를 써서 마을 이름을 정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남정마을의 동북쪽에 잇는 마을을 운곡(雲谷)마을이라 부르고 있으나 옛날에는 방죽안이라 하였으니 마을 앞에 저수지가 있었기에 불렸다고는 하나 운곡이라고 한 것으로 미루어 현룡재전의 용의 형상과 연관되어 회문산가에 나타난 연무평(烟霧坪)과 연관되어 구름 골짜기라는 운곡(雲谷)으로 표기되었지 않나 생각한다.
또한 고려말경에는 운남리 101번지 산 부근에 마을과 절이 있었는데 어느 도승이 남쪽 가면 좋은 샘이 있을 것이니 그곳에 터를 잡고 살면 부자마을이 될 것이라 하여 현 남정골에 도착하여 보니 샘이 있고, 터로도 좋을 것 같이 이곳에 정착하였다는 설에 따라 남쪽 샘이라는 말에서 남정골이라고 하였다고 하는 설도 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연산, 남정, 운곡을 병합, 운남리로 개칭 현재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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